최더함 박사(Th.D/역사신학, 바로선개혁교회)
▲최더함 박사(Th.D/역사신학). ⓒ크투 DB
인류 역사에 있어 전염병 사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얼마 전만 해도 싸스와 메르스 사태를 겪은 우리였고, 20세기 최악의 재앙으로 기록한 스페인 독감은 무려 2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1817년에 인도에서 발발한 콜레라는 동아시아를 집어 삼켰고, 당시 조선에까지 전파돼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16세기에는 남미 대륙이 직격탄을 맞았다. 1520년 코르테스가 이끈 스페인 부대에 의해 남미 대륙으로 실려 온 천연두(두창)로 말미암아 인디오 마을들이 쑥대밭이 되었고, 아메리카 주민 2천만 명과 세계인구 1억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 역사에 있어 가장 끔찍한 전염병 사태는 14세기 유럽 전역을 강타한 페스트이다. 지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이, 이 페스트도 중국이 발원지였다. 당시 중국 인구가 1억 2,500만 명이었는데, 페스트가 흽쓸고 지나간 뒤 중국 인구는 9천만 명으로 감소했다.

이 페스트를 유럽으로 실어나른 장본인은 당시 패권주의에 눈이 멀어 있던 몽골 제국이었다. 이들이 개설한 중앙아시아 교역로(실크로드)를 통해, 페스트는 삽시간에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당시 페스트로 인해 생겨난 여러 현상들과 에피소드가 많다.

1346년경 일단의 몽골제국 군대가 흑해 연안의 작은 도시 카파(Caffa)를 포위 공격하고 있었는데, 완강한 저항으로 진전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몽골 군대의 진중에 페스트 환자가 속출하더니, 군사들이 시들시들 죽어갔다. 그때 한 책사가 아이디어를 내, 투척기를 이용하여 아군의 시체를 성 안으로 던져 넣어 승리했다는 전설이 있다.

몽골 군대에 의해 함락된 성을 버린 일부 귀족들이 배를 타고 급히 제노아 항구에 입항하려 했으나, 거절당하자 뱃머리를 마르세유로 돌려 입항했다. 그러나 그 결정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며칠 사이에 마르세유 주민 모두가 목숨을 잃었다.

뒤이어 페스트균은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을 집어삼켰고, 독일로 진출해 겨우 13곳을 제외한 17만 마을 전체가 파괴되었다. 이후 유럽 전체 인구의 1/3이 페스트로 인해 희생되었다고 한다. 역사상 가장 기괴하고 끔찍한 재앙이었다.

문제는 페스트 사태에 대한 해결책이었다. 프랑스의 국왕 필리프 6세는 파리 대학 의사들에게 하루속히 발병의 원인을 찾으라고 종용했다. 이에 의사들은 “뜨겁고 건조하고 습한 목성과 화성의 열기가 땅의 수증기를 자극하고 주변 공기를 오염시킨 것이 원인”이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당시 교회가 내놓은 대책은 무엇인가? 의약품이 없었던 당시 신자들에게 교황청은 회개의 눈물로 섞은 고약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다. 일부 신자들은 성인의 성상 앞에 매달려 기도하거나 성지를 순례하거나 스스로 고행자를 자처하며 자신을 학대하는 퍼포먼스에 몰입했다.

시중에는 전염병을 하나님의 진노이자 마귀의 시샘으로 돌리며, 광신도들을 자극했다. 지금의 과학 문명의 시각으로 보면 어처구니 없는 대책이다.

가장 사악한 대책은 전염병의 모든 원인을 하나의 희생양으로 몰아가는 것이었다. 1348년에 이르자, 갑자기 전 유럽 사회에서 이 모든 원인이 유대인들이 몰래 우물에 독을 풀어 발생한 것이라는 괴소문이 나돌았다.

그러자 각국은 모든 죄를 유대인에게 뒤집어씌웠다. 그렇게 스트라스부르를 시작으로 단행된 유대인 학살은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이 악몽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훗날 히틀러 정권의 흉악한 유대인 학살로 이어진 것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두고두고 아픈 역사가 되었다.

이제 오늘 우리에게 엄습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생각해 보자. 먼저 어쩌다가 코리아가 코로나의 주범인 것처럼 호도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안타깝다. 정부 당국의 정책적 실수가 없었는지 사태가 안정된 이후라도 따져보아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런 사태를 맞이할 때마다 발병 원인을 찾아 해결책을 강구하기보다, 특정인과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아 그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들로 인해, 항상 일반 백성들의 피해가 막심했다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 정부 당국에서 벌이는 신천지 소탕 작전(?)을 보면서 그들로 인해 바이러스의 확산이 급증했고 그런 이단들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는 현상을 질타하고 비판함은 당연한 처사이지만, 동시에 정부가 좀 더 근원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 일에 더욱 매진해 주었으면 한다.

이단들의 불법적이고 이탈적인 사회활동을 제한하는 법령들을 제정하거나, 좀 더 철저한 세무조사 등으로 촘촘한 감시망들을 작동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자세가 더 중요하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어야 한다. 안타깝지만 한국교회가 이 사명을 잘 감당했는지 자문해 본다. 물론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는 기독교 정신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바른 지식을 가지고 충분히 이해하는 정도는 아니다.

언론은 교회가 늘 감당하는 대사회봉사와 헌신에는 눈을 감지만, 기독교회의 불법과 사역자들의 일탈 및 범죄 사실은 크게 호도하고 부풀려 보도하는 것이 습관적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일에 대해 주먹을 쥐고 악다구니를 쓰거나 무력으로 대항하거나 집단적 항의를 하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오직 이런 일에 대해 우리가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인식과 태도는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

의학적인 규명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면 된다. 그들에게 감사하고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사태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신앙하는 일에 대한 지침과 교훈을 이미 성경에 계시해 두셨다.

코로나19 사태를 마주한 우리에게 세 가지 메시지가 전해진다. 첫째, 회개 기도하는 일이다.

이는 먼저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며 이 자연 재앙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와 교훈을 살피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전 공사를 완공한 솔로몬에게 나타나 이렇게 약속하셨다.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대하 7:13-14)”.

둘째,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통치자들이며 하나님의 사자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법대로 나라를 통치해 주기를 기도하자(기독교강요 4권 20장).

셋째, 더욱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계명은 주님이 선포하신 말씀 그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일”이다. 나아가 “원수마저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마 5:44)”고 하신 말씀을 새기며, 더욱 사랑하는 일에 힘쓰기를 소망한다. 아멘.

최더함(Th. D.,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 바로善개혁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