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두레수도원
▲동두천 두레수도원.
어제는 주일이면서 3.1 만세운동 101주년이었습니다. 주일이면서 3.1절인 경우가 드뭅니다. 주일과 3.1절이 같은 날인 것이 의미가 깊습니다.

한국교회는 지난 100년의 현대사에서, 민족사와 교회사가 흐름을 함께 하여 왔습니다. 지난 100년의 민족사에 있어 한국교회는 민족의 영욕과 맥박을 함께 하여 왔습니다.

1919년 3월 1일 일어났던 3.1 만세운동은 비록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운동이었지만, 우리 민족사를 빛내는 값진 운동이었습니다. 만일 3.1 만세운동이 없이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았더라면, 우리 겨레는 부끄러운 해방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알아야 할 것은 3.1 운동에는 크리스천들이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919년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전체 인구에서 불과 1.7%였습니다. 국민 1,000명 중 17명이었습니다. 그러나 3.1 만세운동을 대표하는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역들에서 70% 이상이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3.1 운동이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사실을 알게 하여 줍니다.

3.1 만세운동이 조선 땅에서 일어나 많은 희생을 치르고 실패로 끝난 운동이긴 하지만, 그 영향력은 아시아 전체는 물론 세계적인 범위에서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3.1 만세운동은 성공한 운동이었다 하겠습니다.

대표적인 영향이 중국의 5.4 운동의 경우입니다. 중국 5.4 운동은 중국 역사를 근대와 현대를 구분하는 뜻깊은 운동이었습니다.

5.4 운동은 1919년 5월 4일 베이징에서 시작돼 중국 전체로 퍼져 나간 운동이었습니다. 조선에서 3.1 운동이 일어나 선량한 백성들이 맨손, 맨몸으로 일본의 총칼 앞에 당당히 맞서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짖는 소식을 듣고, 중국 지식인들이 자극을 받았습니다.

작은 나라 조선의 백성들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서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짖는데, 중국의 지식인들이 가만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반성에서 북경대학을 중심으로 시작된 운동이 중국의 5.4 운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