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상상력
예술적 상상력

오종우 | 어크로스 | 296쪽 | 17,000원

상상력과 창의력이 자본인 시대
가장 상상력 뛰어난 사람? 아이
아이들 창의성 이해 못하는 어른

경제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세 단계를 거쳤다. 노예제도에서 봉건제로, 다음은 자본제로 발전했다. 자본제는 경제의 바탕이 되는 힘을 가리킨다.

지금 그 힘이 바뀌고 있다. 자본 다음의 경제 원동력은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지금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자본이다. 문제는 어떻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상상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아이들이 상상력이 뛰어나다.

한 초등학교 미술 시간이었다. 평소 엉뚱한 상상을 많이 하던 아이가 도화지를 온통 검은색으로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당황했다.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고 치료를 권했다.

아이의 부모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지만 속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한다. 결국 아이의 치료를 위해 최고의 정신과 의사들이 모인다. 그들은 아이의 상태를 진단하며 다양한 테스트를 진행한다.

물론 아이는 여전히 말없이 도화지에 검은색을 칠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선생님은 우연히 그 아이의 책상에서 퍼즐 조각을 발견한다. 아이가 즐겨하던 놀이다.

그 순간, 생각 하나가 선생님의 뇌리를 스친다. 그 즉시 선생님은 아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달려간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아이가 칠해놓은 검은색 도화지들을 이리저리 맞추기 시작한다.

결국 아이의 퍼즐은 거대한 고래 모습으로 나타났고, 어른들은 아무 말 없이 아이를 바라본다. 이 광고는 일본의 창의성 협회에서 제작한 것이다.

그들은 아이들의 창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를 비판하기 위해 이 광고를 제작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지 못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 외에 뛰어난 상상력, 예술가들
예술, 모방 아닌 패턴 창조 조형 작업
상상력 근원, 예술이 문명 일으킨 비결

아이들 외에 가장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예술가들이다. 1924년 클레는 예나 미술관 전시회 개막식에서 예술이 창조 자체라는 점을 강연했다. 강연에서 그는 현재 눈에 보이는 세상이 유일한 세계가 아님을 설명했다.

“완성된 자연의 형태들은 자연의 창조 과정의 궁극적 실재가 아니다. 예술가는 완성된 형태보다 형태를 만들어내는 힘에 더 큰 가치를 둔다. 완성품보다 창조 자체의 이미지에서 우리는 깊은 감명을 받을 수 있다.”

거기에 덧붙여 그는 “예술은 가시적 현상에 영혼을 불어넣고, 숨겨진 시각을 가시화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이 대상의 노예가 되어 모방하는 일이 아니라 패턴을 창조하는 조형 작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예술가들의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오종우 교수는 이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 <예술적 상상력>이라는 책을 썼다.

저자는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수학했고 러시아 국립인문대학교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성균관대 러시아어문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예술 강의는 학생들에게 최고의 명강으로 꼽히며, 성균관대 티칭어워드를 수상했다. 그는 예술이 인류 역사에 단 한 번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깊이 탐구해 왔으며, 미래 세대를 위한 예술의 진짜 쓸모를 이 책에 담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상상력의 근원인 예술이 무엇이며, 그 예술이 어떻게 문명을 일으켰는지 말하고 있다. 예술이 무슨 모습으로 현실과 만나는가도 설명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본래 예술가이다
예술가적 상상력은 인격을 형상
예술가,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들

예술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예술은 나와 상관이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나와 무관한 전문적인 특정 영역으로 여긴다. 예술은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예술가들은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본래 예술가이고 예술적 상상력은 인격을 형성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특히 예술은 현실과 만나는 곳에 있다고 말한다.

“모든 예술은 꿈을 담는다. 험하고 고단하게 살면서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바란다. 그런데 예술이 꾸는 꿈은 망상과는 다르다. 현실이 혹독하다고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꿈은 아무리 그 바람이 멋지다 해도 이룰 수 없다. 꿈속에서 산다면 도리어 살아가는 세상이 더 곤란하고 가혹해질 뿐이다. 현실을 잊고 도피하려는 꿈은 망상이 되어 삶을 마비시킨다.

예술은 가을비 내리는 거리를 내려다보는 통창의 카페 안에 있지 않다. 예술은 겨울 바다와 멀찍이 떨어져 그저 감상에 젖는 안락한 실내에 있지 않다. 예술은 거리 청소부가 빗자루를 든 그 길에 있다. 예술은 차가운 바다 위 고깃배에 어부와 함께 있다. 그곳에서 예술은 현실을 진정으로 만난다. 그럴 때 꿈은 현실감을 띠고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이념으로 얼룩진 구호를 외치는 것은 예술이 하는 일이 아니다.

예술을 막연히 아름다운 일이라고 불러도 될까, 예술을 감상적으로 대하면 진짜 예술을, 치열한 예술가를, 위대한 예술작품의 진면목을 만나기 어렵다. 그것은 카페에 앉아 가을비 내리는 거리를 바라보며 따뜻한 실내에서 멀리 겨울 바다를 구경하는 모양을 닮았다. 감상에 젖는 일은 영혼을 침윤한다. 감정 과잉 상태인 감상은 허허롭기만 하다.”

예술은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 있지 않다. 예술가들은 감상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치열한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 치열한 삶의 현장 속에서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예술적 상상력
예술의 근간은 상상력, 창조 이루다
예술적 상상력, 모든 사람에게 필요
상상력, 지식 쌓이면 폭발하듯 나와

저자는 창조로 이어지는 진짜 상상력은 인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사라지지 않은 예술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예술의 근간은 상상력이고 그 상상력은 창조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곧 예술적 상상력은 창조의 토대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예술적 상상력을 이렇게 정의한다. “예술적 상상력은 보이는 것을 꿰뚫어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힘이며 삶을 고양하는 능력이다.”

예술적 상상력이 이런 것이라면, 예술적 상상력은 예술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통해서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예술적 상상력을 설명해준다. 겉모습만 보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작품들을 작가의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서 보니, 그 작품이 시사해주는 의미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명작이 그냥 명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예술 작품을 만나 현실을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말을 지식은 상상력보다 열등한 것으로 해석을 한다.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말은 그러한 뜻이 아니라고 말한다. 곧 상상력과 지식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은 지식이 쌓이면 폭발하듯 나온다는 것이다.

지식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어야 한다. 축적되면 폭발한다. 물은 100도가 되어야 끓는다. 곧 임계점에 도달해야 끓는다.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 99도에도 물을 끊지 않는다. 100도가 되어야 끊는다.

상상력도 마찬가지다. 지식이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폭발한다. 아인슈타인이 멍청하게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상대성 원리를 발견한 것이 아니다. 오랜 관심과 연구가 축적되고 폭발한 그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다. 상상력은 분명 지식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지식이 축적되고 폭발해야 상상력이 나온다.

그리스도인, 예술적 상상력 필요해
문자 아닌 의미 볼 수 있는 인사이트
분별 못하면 이 세대 따라갈 수밖에

그리스도인도 예술적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 예술적 상상력은 인사이트(Insight)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인사이트를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사물이나 현상의 특징 혹은 관계를 명백하게 파악하는 심리적 능력을 말한다. 다시 말해 ‘어떤 행동에 대한 원인을 파악해내는 능력’을 말한다.

인사이트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인사이트가 필요하다.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볼 수 있는 인사이트가 필요하다. 겉이 아닌 속을 볼 수 있는 인사이트가 필요하다. 문자가 아니라 의미를 볼 수 있는 인사이트가 필요하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적 인사이트가 필요하다.

바울은 이렇게 말씀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세상은 점점 더 혼탁해지고 있다. 참과 거짓이 무엇인지 분별하기 힘든 시대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하나의 진리는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기독교 외부에서만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적 인사이트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말씀하신다. 분별하지 못하면 이 세대를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인사이트를 가지고 바르게 분별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야 한다.

말씀을 읽을 때도 글자 자체만 읽는 것이 아니라, 영적 인사이트를 가지고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를 읽어내야 한다.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출저: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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