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길 교수 (연세의대 명예교수)
▲민성길 교수(연세의대 명예교수)
성애화(erotization, sexualization)란 성적이 아닌 것을 성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탁기 광고에 섹시한 여성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장면이 당연해 보인다는 것은 우리 눈이 이미 성애화되었다는 의미이다. 현대사회 문화는 총체적으로 성애화되고 있다.

성애화(性愛化)는 특히 남녀 관계에서 성적 대상화(sexual objectification)로 나타난다. 이는 한 인간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본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사소한 무심한 언동을 성적으로 해석하는 것, 회사의 남녀 동료 사이의 사무적 관계를 성적 관계로 채색하는 것, 사제 간의 진지한 관계가 에로틱한 관계로 암시되는 것, 인간적 매력을 성적인 매력으로 대신 포장하려는 것, 어린 아이를 섹시한 성인처럼 치장하는 것, 종교적 그림을 에로틱하게 그리는 것 등이다. 동성 간 우정이 동성애로 암시되는 것 역시 성애화이다.

성은 강력한 행동유인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미디어(media), 즉 영화와 TV 드라마 그리고 상업 광고, 인터넷 게임, 뮤직비디오 심지어 예술에 섹스가 이용되어 왔다. 특히 성애화 중 성 상품화란 성적 특징을 이용하여 판매 수익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심한 경우 성 자체를 상업적 매매 대상(매춘, 포르노, 원조교제 등)으로 한다. 특별히 이런 현상을 성적 도구화( instrumentalization )라 한다. 성을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힘을 행사하거나 속이거나 조종하는 것, 성적인 학대나 성폭력, 어린이 성추행 등도 전형적인 성의 도구화에 해당된다.

이러한 현상은 향락산업의 급팽창과 더불어 성문화에 아노미 상태를 일으키고 있다. 더구나 영화나 뮤직 비디오, 바비 인형 등 여러 형태를 매개로 전해지는 세계화 (globalization)의 영향으로 성애화는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다.

이미 성애화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 주변으로 스며들어, 일회성 섹스(casual sex), 혼외정사, 성이 강조되는 게임 등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또한 교육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뮤직 비디오가 성애화되는 속도가 빨라, 노골적인 프리섹스의 가사들과 성적 묘사가 두드려진다. 그 결과 청소년들에게 자기 신체에 대한 불만, 성적 열등감, 왜곡된 성가치관 등이 조장되고 있다.

 우리사회의 성애화의 한 극단적 결과로 유치원 아이들 사이의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아마도 어린 아이들은 평소 주변의 성인세계에서 본 것을 그대로 따라한 것인데, 온 사회가 새삼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의 행동은 어른 탓이다. 아이들의 행동을 한탄하고 감시하려하기 전에, 어른들이 성애화를 조장해 온 것을 먼저 반성하여야 한다.

성애화가 퍼져나가면서, 그 반동으로 경계심도 커져가고 있다. 즉 신체적 완전성(body integrity)라는 개념이 발달하고 있다. 이는 개인의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과 신체의 불가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의 신체적 완전성을 침해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예를 들면 내 몸을 함부로 (성적으로) 건드리거나 언급하거나 쳐다보지 말하는 의미이다. 이렇게 성적 감수성(sensitivity)이 예민해 지다보니 친밀함(intimacy)과 에로티즘(eroticism) 사이의 경계가 애매해지고, 돌봄(케어 care)와 성추행 사이의 경계도 분별을 잃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무분별한 성애화는 자제되어야 한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미디어 독해력(media literacy) 교육을 함으로 사람들이 성애화에 대해 알고 경계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영화에 대한 연령별 등급을 두듯이 성적인 것과 비성적인 것 사이에 경계(boundary)를 만들고 분별하며, 한계를 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부모나 교사들은 자녀들이나 학생들에게, 광고, 영화와 드라마 또는 뮤직 비디오 속에 숨겨져 있는 성애화, 성의 도구화, 성혁명 내지 프리섹스의 코드를 “실례로서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경우에 따라 시청을 금지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토론을 통해 판별하고 비판하는 능력과 자제심을 기르도록 훈육(discipline)해야 한다. 미디어 독해력 교육의 핵심은 성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기르는 것과, 성애화 현상은 인간의 성을 도구화하고 상품화함으로 인격을 붕괴시킨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한편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 10;12)”고 하셨다. 부모와 교사와 미디어의 성교육도 자칫 성애화되지 않도록 경계하여야 한다. 교육과정과 교육자료 속에 스며들어 있는 성애화에 오염되어 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