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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4장 10-12절

본문은 주님께서 유능한 전도자의 면모를 보이시는 모습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시면서, 인격적 접촉을 시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면서 여인의 마음을 열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데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호의를 베풀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탁월한 전도 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이를 중심으로 ‘야곱의 우물과 생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생명의 선물이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네게 ‘생수’를 주었으리라(10절)”.

야곱의 우물에서 주님은 이제 ‘생수’를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개념을 드러냅니다. 이는 주님께서 점진적인 주제 발전의 원리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자연적인 물에서 ‘생수’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면서 여인의 영적 호기심을 발동시킵니다. 일반적인 물에서 보다 차원이 높은 생수로 연계시킨 것입니다.

물론 이 생수는 물의 특성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추상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이런 경우 생수는 더 고차원적 의미 부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점진적인 주제 발전의 원리로 일반적인 물에서 ‘생수’를 끌어오는 것을 두고, 철학에서는 ‘양상 개념의 논리적 의미론’이라고 합니다. 적절한 가정을 추가함으로써 동의어와 의미를 포착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과 ‘생수’라는 말은 동일한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생수’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보조 개념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란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영생을 가리킵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선물’과 ‘생수’는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구원은 성령을 받는 표시로 드러납니다. 이는 우리가 물을 생각할 때마다 영원한 생명의 물인 생수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2. 주님은 ‘생수’의 원천이시다

10절을 보면, 주님은 여인에게 생수가 있다고 호기심을 갖게 하신 후, 생수를 주시는 주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는 주님 자신이 생수의 원천임을 암시하시는 부분입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우리는 점진적인 과정이라 말합니다. 이때 주님은 초청의 원리를 사용하셔서 여인을 ‘생수’의 원천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주님 자신이 생수의 원천임을 암시하시면서, 주님 자신이 주체임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사마리아인의 유일한 경전이었던 모세오경 민수기 21장 17절을 연상시키듯, 자신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라고 초청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매우 역설적인 상황은 여인이 지금 생수의 원천인 주님을 만나면서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눈이 감겨 있기에, 오로지 눈에 보이는 야곱의 우물물만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변하기 쉬운 인간을 증인 삼기보다, 언제나 변함없는 우물의 언약에서 오히려 영적인 의미를 찾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여인의 한계입니다.

영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단순히 눈에 보이는 외모만 보고 주님을 유대인으로 판단하여 적대감을 갖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마리아 여인은 영의 눈을 열어서 생수의 원천이신 주님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3. 주님은 ‘생수’를 주시는 분이시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니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11-12절)”.

사마리아 여인은 지금 주님을 야곱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이때 사마리아 여인은 조상 야곱을 내세우며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본래 사마리아는 여호수아 시대에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배당된 지역이었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요셉의 두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족장 야곱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 우물은 사마리아의 수가 마을에 이스라엘이라는 정통성을 이어주는 매우 중요한 표징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감히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성을 가지고 유대인 남자에게 당당히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이 윤리적으로 손가락질을 받을 삶이라 해도, 속에는 야곱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깊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겉보기에 보잘 것 없을지라도, 조상이 야곱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고 단순히 사회적 통념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한계입니다.

이 여인에게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아쉬움이 있을 뿐입니다. 주님은 생수를 주시는 분이심을 못 알아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수를 주실 수 있는 주님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이 안타까움을 우리는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정리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만 집착하며 좁은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 눈을 들어 영원한 것을 생각하면서 드넓은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눈을 열어 복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생명의 선물을 받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주님은 ‘생수’의 원천임을 깨닫게 하소서, 더 나아가 주님은 ‘생수’를 주시는 분임을 알게 하소서, 주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