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만 데려오면 끝? 장애인들도 신앙적 욕구 있어
무조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여기기 쉽지만,
가르칠 능력 있는데 기회 안 주어지면 차별감 느껴

박성철 밀알복지재단
▲박성철 소장은 “교회들이 하나님 나라 차원에서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공동체를 꿈꿀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교회는 ‘장애인 사역’에 대해, ‘장애인들이 교회만 잘 나오면’ 되지 하는 정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1993년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돼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통합을 목표로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지원하고 있는 밀알복지재단(이사장 홍정길 목사)에서는 사역의 전문화를 위해 지난해 ‘밀알 디아코니아연구소’를 개소했다. ‘자선과 구제’를 의미하는 디아코니아는 케리그마(말씀 선포), 코이노니아(교제)와 함께 교회(에클레시아)의 3대 기능으로 불렸다.

밀알 디아코니아연구소는 기독교 사회복지의 바람직한 방향과 자세를 제시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기관으로, 국내외 교회 및 기독교 단체들과 협력해 미래를 함께 열어가고자 힘쓰고 있다. 소장 박성철 박사(횃불트리니티대)로부터 교회의 장애인 사역의 오늘과 내일에 대해 청취했다. 그는 장애인 사역을 하다 독일 유학을 거쳐 교수로 봉직하면서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요즘 교회의 사회복지와 장애인 사역은 어떻습니까.

“예전에는 단순한 형태의 복지 서비스만 제공해도 장애인들이 교회에 나왔지만, 2000년대 들어 한국 사회가 복지사업에 투자를 늘리고 관심을 가지면서 변화가 생겼습니다. 기독교 장애인 복지단체들이 여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저도 유학을 다녀온 후 어영부영 10여년 가까이 왔는데, 1세대는 은퇴하고 있고, 젊은 친구들과 1세대를 연결시켜야 할 사람들이 적은 편입니다. 저희 또래들이 과거 1세대들처럼 확실히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현실적 이유로 많이 떠났습니다. 그래서 어려움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복지는 지속성이 필요합니다. 기독교 사회복지는 돈만으로 되는 건 아니니까요. 교회는 우리나라 사회복지 제도가 부족할 때부터 복지에 많이 참여해 왔습니다. 돈이 있으면 더 좋은 복지가 되겠지만, 복지의 마지막은 사회통합,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애인들에 대한 교육뿐 아니라, 비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애인 관련 교육도 필요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은 중요한 화두 같습니다.

“당위성만 설파한다고 되는 게 아니기에, 비장애인들이 함께할 수 있는 쪽으로 설득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밀알복지재단도 작년부터 제대로 연구해 보자는 차원에서 연구소를 만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이런 부분에 아직 관심이 적은 편입니다. 한국디아코니아연구소 정도가 있지만, 주류 교단 쪽은 투자와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민이 많습니다. 인프라도 없고 연구자도 적은데, 교회도 줄어들고 지원받기도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꼭 필요한 사역이기에 지속적으로 해 나갈 것입니다. 이제 6개월째이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사들에게 유익이 되는 방안도 찾고 있습니다.”

-해외 디아코니아 연구기관에는 어떤 곳이 있나요.

“독일 디아코니아 연구소 본부가 베를린에 있고, 학문적으로는 하이델베르크 디아코니아 연구소가 가장 유명합니다. 해외 사례 연구를 위해, 올해는 이곳들을 방문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디아코니아학과가 있는 신학대도 있지만,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하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연구를 통해 한국교회에 도움을 주고 싶은데, 아직은 힘이 잘 모이지 않습니다. 한꺼번에 다 되진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장애인 사역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고 보면 되는지요.

“당장은 재정을 지원하는 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항상 말씀드립니다. 교회들이 처음 장애인 사역할 때는 밥 주고 하면 다 모였습니다.

그런데 장애인복지법이 2차 개정돼 기본 생존 문제를 국가에서 책임지면서, 장애인들이 교회 모임에 나오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몇몇 대형교회들에서 장애인 부서를 만들고, 사회 적응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복지 서비스를 함께했습니다. 그런 교회들이 성장했습니다.

서구에 비하면 고칠 점이 아직 많지만, 우리나라 복지 시스템도 발전돼 장애인들이 예전처럼 생존 문제 때문에 고민하지 않습니다. 풍요롭진 않더라도, 기본적인 물질은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단순한 복지 서비스 제공만으로, 장애인들이 기독교 복지시설에 나오진 않습니다. 그들의 욕구나 고차원적 정신적 필요를 채워줘야 합니다. 이것은 돈으로 되는 게 아니라, 연구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특히 젊은 장애인들, 그리고 앞으로 장애인 문제를 직접 해결해 나갈 이들에 대한 교육이 시급합니다. 그들에게 좀더 기독교적 가치 속에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거나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한계를 느낄 것입니다.”

-교회가 장애인 사역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한국도 일본이나 독일, 프랑스처럼 현금보다는 질적으로 높은 복지 서비스를 할 때입니다. 휠체어 밀어주는 사역을 넘어서서, 그들이 동일한 인격체로서 비장애인들과 문화적·종교적·사회적 측면에서 동일한 욕구를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당장 돈이나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는 분들에게, 장애인들의 변화하는 욕구에 대해 여쭤보면 잘 모르십니다. 기존에 익숙하게 해 왔던 도움을 주실 뿐입니다. 그러면 사역에 한계가 느껴지고, 곧 한계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복지 쪽에 점점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은 좌우 이데올로기를 넘어 요청되는 부분입니다. 사회적 분위기도 변하고, 장애인들도 변하고 있습니다.

돈이 우선이라는 분들은 장애인들의 욕구가 멈춰져 있고, 이를 채워주기 위해 돈이 그만큼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장애인들이 동등한 인격으로 취급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 욕구가 표출되지 못한 것뿐입니다. 복지 서비스가 좋아지면 동일한 욕구를 갖게 되고, 그에 따라 복지 서비스의 질도 높아져야 하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차차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익숙한 방식이고 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 ‘하던대로’ 투자한다면, 미래에는 장애인 복지를 책임지기 힘들게 됩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기독교 단체들이 장애인 복지에 있어 앞서갔습니다. 그러나 계속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일반 사회복지나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하는 복지 시스템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가톨릭이 선방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은 연구도 자본도 중앙집중적이라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반해 기독교는 과거에 장애인 복지사역을 많이 해 왔고 지금도 60% 이상 담당하고 있지만, 변하고 있는 흐름에 둔감합니다.

다들 ‘지금 뭔가 엄청나게 변하고 있다’고 말씀은 하십니다. 하지만 유독 기독교 내 사회복지나 재정 담당자들의 생각이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좋다 나쁘다의 문제를 떠나, 어떻든 ‘기독교 사회복지’라는 영역이 계속 남아 있으려면 연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성서적·신학적 가치로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끊임없이 연구해야 합니다. 교회가 못하는 그 일을 저희 연구소가 제시하겠다는 꿈으로 시작한 일입니다.”

-한계를 느낄 때도 있으시지요.

“교회를 찾는 장애인들의 욕구를 파악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당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서비스 또는 만족을 느낀 서비스가 무엇인지’ 설문을 하고 싶은데, 각 교회들은 부담을 느끼십니다. 부정적 이야기가 나올까봐서 그렇겠지요. 저희는 특정 교회를 언급하려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장애인들의 영적 욕구와 종교적 욕구,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실질적 연구가 필요한데, 그런 것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어 쉽지 않습니다. 저희가 필요한 것은 특정 교회 표본 집단이 아니라 지역 교회들에 대한 포괄적 연구입니다.

철학적 연구와 표본에 의한 질적·양적 연구가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제한 집단 연구는 가능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런 통계가 없다 보니, 경험한 것까지만 이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도 현실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작년에 SCI급 논문을 3-4개 썼지만, 논문과 이상만으로 현실을 바꿀 수는 없겠지요.”

박성철 밀알복지재단
▲박성철 소장. ⓒ이대웅 기자
-현재까지 파악하신, 장애인들이 교회에 원하는 복지는 어떤 것인가요.

“장애인들이 있는 교회라면, 장애인들 역시 비장애인과 동일한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지만) ‘종교적(신앙적) 욕구’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장애인 복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에 왜 관심이 부족할까요. 장애인들이 우리 교회 나와서 대예배 한 번 나와서 예배드리는 정도로 만족하시기 때문입니다. 일반 성도들에게는 소모임을 엄청 강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장애인들도 그런 필요에 대해 많이 말씀하십니다. 비장애인들은 사회에서도 여러 만남들을 가지면서 교회 모임을 한다면, 장애인들은 오직 교회에서만 그런 모임을 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들은 특성상 ‘관계’를 맺기 위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장애인들은 교회에서 그러한 욕구들을 채우길 원하지만, 교회들은 거기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장애인들에게 별다른 성경공부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신체가 불편한 그들에게는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것 자체가 필요합니다. 보이지 않는 분들을 위해선 점자성경이나 점자성경 자료를 비치해 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교회 차원에서는 한 명의 장애인을 위해 굉장히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 결과가 생깁니다. 현실적으로 그러기 어렵다는 걸 이해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일이지만, 재정의 한계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장애인들과 좀 더 함께할 수 있는 교회 공동체를 꾸려갈 수 없는지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현실적 문제를 말씀하시는 분들에게는 ‘그렇게 하면 좋습니다’만으로는 안 됩니다. 말 그대로 신학 교육에서부터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연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장애인 한 명만을 위해 예산을 사용하려면 합의가 필요합니다. 목사님들뿐 아니라 제직의 동의도 필요하지요. 제직이 동의해도 공동의회가 동의하지 않으면 지속성이 결여됩니다.

이처럼 장애인 성경공부라는 하나의 변화에도 굉장히 많은 단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굉장히 절실한 욕구이기에, 교회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현실적 문제 때문에 망설여지지만, 그래서 궁극적으로 신학적 접근이 필요한 것입니다.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교육을 통해 인식이 변해야 합니다.

지금 교육을 안 하면 더욱 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관심이 적더라도 왜 장애인과 함께해야 하고 왜 이것이 성경적인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섬김의 의미에 대해서도 교육해야 합니다. 당장 안 되더라도, 지속적으로 바꿔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위해 저희도 더욱 연구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또 장애인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채우길 원하는 욕구가 있을까요.

“제일 많이 접할 수 있는 지체장애인들의 경우,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어하는 욕구가 많습니다. 장애인들은 무조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사회적 통합은 편하게 예배드리고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르칠 능력이 있는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에도 차별을 느낍니다.

모임을 위해 다양한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비장애인들과 가장 잘 어울릴 수 있는 지체장애인들조차, 교사로 섬기기는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장애인들이 그런 말씀들을 많이 하십니다. ‘우리 교회는 참 잘 해줘요. 하지만 저도 이런 걸 할 수 있는데, 요구하지 않아요.’ 이것도 장애인들과 교회를 통합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도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주는 자로 세워줄 수 있는 것, 이런 인식이 부족합니다.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는 건 인식하지만, 장애인들도 도움을 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고 하면 ‘왜요?’라고 합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들의 욕구가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돕기 위해 연구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그런 측면에서 안타깝게도 변화에 둔감한 편이지요. 장애인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더욱 그럴 것입니다.”

-사회복지 종사자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네요.

“복지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지는 돈이 하는 게 아닙니다. 돈을 무시하진 않지만, 돈은 사람에게 지급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돈은 사람을 움직이기 위한 동기이자 도구에 불과합니다. 돈을 많이 준다고 관계가 잘 형성되는 것도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복지를 높은 수준으로 올리려면, 관련 교육을 받고 복지 환경에 익숙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곳의 환경 자체가 석사까지 한 뒤 받는 월급 치고는 높지 않습니다. 물론 열정 때문에 왔지만, 가정이 생기고 하다 보면 결국 좀 더 좋은 환경을 찾아 떠나게 됩니다. 무조건 뭐라 할 수도 없습니다.

밀알복지재단 차원에서도 저희 연구소를 통해 사회복지사들이 지금보다 안정적인 조건에서 내적 동기를 찾고, 동기부여를 통해 소명을 찾아서 일할 수 있다면 서비스를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재단에서 주로 하는 일은 장애아 의료비 지원이지만, 그것은 사실 작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장애인들과 만나고 함께하는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직접적인 소명의식을 가진 분들을 설득하고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연구들이 지속된다면, 더 발전된 사역이 가능할 것입니다.

나아가 한국 사회 중 60% 이상 차지하는 기독교 계열 복지단체 종사자들과 기독교 사회복지사들이 신앙 따로 사역 따로가 아니라, 직업 속에서 신학적·신앙적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고민할 것입니다.”

-독일에서 유학하셨는데, 독일 교회들의 사회복지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신학교에서부터 디아코니아학을 듣게 돼 있습니다. 석사 과정을 끝내려면 관련 학점을 이수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이론을 공부하고, 지역별 디아코니아 사무실에서 실전을 배웁니다. 교회에서 이뤄지는 사회적 봉사이기 때문에, 교구별로 사무실이 다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복지를 너무 크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독일은 작은 교구라도 상담소 하나 설치하고 ‘디아코니아’ 활동이라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교구 목사가 당연히 디아코니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학부나 신대원 과정에서 디아코니아를 접할 일이 없습니다.

교회 사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학생이나 목회자 개인적 차원에서 공부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이지만, 학제적 차원에서 디아코니아를 먼저 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주변에 장애인이 있는 분들은 장애인 사역에 적극적이지만, 그게 아닌 경우에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사역’이 되고 있습니다. 사역 자체는 많이 하시지만, 수시로 콘텐츠가 바뀌고 있습니다. 가톨릭처럼 몇십 년씩 섬겨서 전문성과 깊이를 가진 곳이 많지 않아 조금 아쉽습니다.”

-장애인들을 위한 ‘사랑부’를 두고 있는 교회들이 실천할 수 있는 사역이 있다면.

“좀 이상적인 내용인데, 교회가 자신의 교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 밖을 위해 작은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엄청나게 큰 일이 아닙니다. 공사 관련 일하시는 성도님들과 1년에 장애인 가정 3-4채에 ‘뽁뽁이’를 붙여주거나 이중창을 달아주는 일 정도입니다. 많은 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해 작은 서비스라도 제공하자는 의식을 담임목사와 제직들이 가져야 합니다.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걸 한다 해서 당장 전도가 되거나 찾아와서 고맙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확신이 있습니다. 교회가 지역사회에 사랑을 베풀고 긍정적 가치를 선포하면, 당장은 아니라도 궁극적으로는 도움이 되면 됐지 결코 피해를 주지는 않으리라고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공유하기는 어렵습니다.

잘 하고 있는 교회들뿐 아니라, 하나의 지역 교회라는 정체성을 갖고 모든 교회가 나선다면,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변화될 것입니다. 그런 작은 활동들 속에서 인식이 바뀌지, 대규모 집회나 행사로 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성장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잘 하고 있는 교회들에 대해서도 ‘교회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분위기가 돼야 합니다. 말씀드렸지만, 독일 교회의 디아코니아가 엄청난 것이 아닙니다. 각 지역마다 여기는 약물 상담소, 저기는 미혼모 상담소 등 규모에 맞게 각자 하고 있습니다.

아주 좋은 시스템이 아니라도, 교회가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상담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복지와 연결된 부분을 맡을 수 있다면, 그것이 디아코니아의 확산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디아코니아 하면 복지관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게 디아코니아의 전부일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 다소 아쉬움도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