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
그리스도인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

김형석 | 두란노 | 252쪽 | 14,000원

세계적 인문학 열풍, 교회 안에서만 예외
인문학을 인본주의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
인간 그리는 무늬 탐구, 이해하려는 학문
청교도, 인간 이해 중시해서 인문학 공부

전 세계적으로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인문학 열풍에 대한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다.

민주화 시대를 지내온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선진국 대열로 들어가는 단계에 필요한 학문이 바로 인문학이다. 다음 단계는 고고학과 인류학인데, 아직 한국 사회에서 고고학과 인류학이 발전하기란 어렵다.

이런 과도기적인 상황 가운데, 한국 사회에 인문학 열풍이 부는 것은 당연하다. 일반 사회에서는 이미 인문학 열풍이 불고, 인문학에 대한 공부들이 자리매김을 해가고 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는 여전히 반응이 시큰둥하다. 성도들보다 목회자가 더 그렇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인문학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인문학을 ‘인본주의’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고 살아가는 ‘신본주의’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신본주의’의 삶과 ‘인본주의’의 삶은 대치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문학은 ‘인본주의’가 아니다. 인문학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다.

모리모토 안리 교수가 쓴 ‘반지성주의’라는 책에 보면 청교도들이 목사를 교육하는 과정이 나와 있다. 하버드 대학교의 전신은 신학대학이다. 청교도들은 신대륙으로 건너가서 가장 먼저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웠다.

학교도 초등학교를 먼저 세운 것이 아니라 신학대학을 먼저 세웠다. 당시 하버드 대학교의 학위 취득과정은 교양학 학사, 교양학 석사, 신학 학사, 신학 박사였다.

철저한 신앙교육을 강조하는 청교도들이 신학 학사를 하기 전에 교양학 석사까지 공부를 시켰다. 왜 청교도들이 인문학 공부를 먼저 시켰겠는가? 인간 이해가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형석 교수, 100세 넘어서도 강연과 집필 활동
인문학, 인간과 역사에 나타나는 사상 연구 학문
나는 어디서 왔는가,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 바로 나 알아가는 것

앞서 언급했지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인문학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는 분이 아직도 많다.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다. 이들에게 답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라는 책을 김형석 교수가 발간했다.

저자는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났다. 일본 조치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시카고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의 연구 교수를 역임했다.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인 저자는 철학 연구에 대한 깊은 열정으로 제자를 길러냈다. 평생 동안 학문 연구와 집필에 심혈을 기울였다.

저자는 100세가 넘은 고령임에도 계속해서 방송과 강연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특히 사회의 정신적인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목회자들이 인문학에 관심에 없는 것에 대해 더더욱 안타까움을 호소한다.

저자는 인문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인문학은 인간과 역사에 나타나는 사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자연과학이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자연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사회과학이 인간의 사회적 삶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인문학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인간 자체를 연구하며 인간의 삶을 이끌어가는 사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어령 교수는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라 했다. 인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신(神)도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알아가는 것이다. 인간 자체가 어떤 존재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인문학은 넓은 의미에서 인문학을 휴머니즘의 학문이라고 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일차적 존재 의미로서는 ‘인간은 인간다워야 한다’는 대전제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휴머니즘을 배제하거나 거부하는 종교는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된다. 휴머니즘을 거부하는 종교는 신앙의 대상이 못 된다는 뜻이다. 그런 종교는 점차 정신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참 종교는 휴머니즘과의 공존성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휴머니즘의 학문인 인문학은 신앙적 신학과 공존해 왔다는 결론에 이른다. 휴머니즘 이하의 종교는 존재할 수 없고 초 휴머니즘으로서의 신앙을 갖춘 종교가 믿을 수 있는 종교가 된다. 그런 종교의 하나가 신약에 근거를 둔 기독교인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그 기초 위에 세워졌고 현재도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인문학, 오래 전부터 신학과 공존했다
신학이 인문학과 무관하다? 어불성설
인문학 명답이라면, 성경은 정답이다

철학과 종교의 근본적 과제는 인간 존재와 인간다움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절대자로서의 신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오래 전부터 인문학은 신학과 공존해 왔다. 앞으로도 당연히 공존해야 한다.

칼빈의 ‘로마서 5장 2절 주석’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현재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없고, 미래에 대한 지속적이고 분명한 확신이 없다면, 누가 감히 영광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연세대 철학 김형석 교수
▲김형석 교수. ⓒ김신의 기자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책에서, 김용규 작가는 이 부분을 이렇게 재구성했다. “현재를 사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분명한 인문학 지식이 없고,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속적이고 분명한 확신이 없다면, 누가 감히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말은 신학자 칼 바르트가 ‘한 손에는 성서, 한 손에는 신문’을 들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인문학을 하나님께>라는 책에서 한재욱 목사는 또한 이렇게 말했다.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학문이고,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다. 이 둘은 동행할 때 온전해진다. 신학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간에게 그 사랑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그런데 신학이 인간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과 무관하다고 한다면 어불성설일 것이다. 하늘의 이야기와 땅의 이야기는 사실은 형제인 것이다. 하늘 높이 날아올라 일반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신령한 말만 한다면, ‘그들만의 잘난 이야기’가 된다. 반면 예배와 기도와 성경 말씀도 없이 땅의 이야기로만 가득한 성도가 있다면 그냥 ‘속물’일 것이다.”

그러면서 한재욱 목사는 ‘인문학은 명답이고 성경은 정답’이라고 말한다.

<설교는 인문학이다>라는 책에서 김도인 목사는 설교가 인문학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중세 시대는 영적인 요소만으로 설득이 충분했다. 하지만 문화가 세상을 주도하는 21세기는 영적인 요소만으로 복음을 전하기가 턱없이 힘들다. 현대인들에게 다가가려면 그들에게 익숙한 언어 표현법을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설교자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목사님이 세상 너무 모른다? 인문학 공부 부족
그리스도인, 세상의 빛과 소금… 교회 바깥으로
만물 끌어안아도 생기는 틈, 하나님만이 메꾼다

성도들이 가끔씩 이런 말을 한다. ‘우리 목사님은 세상을 너무 모른다.’ 이 말은 달리 표현하면 목사가 인문학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것이다.

목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그 소임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청중에게 그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들려지지 못하게 했다면 그 책임은 목사에게 있는 것이다. 청중을 이해하고 청중에 들려지는 설교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인문학은 그리스도인들이 거부해야 하는 학문이 아니라, 꼭 필요한 학문이다. 그리스도인 자신에게도 필요하지만, 세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셨지, ‘교회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만 머물면 안 된다. 세상 속으로 나가야 한다.

이어령 교수는 인간관계뿐 아니라, 인간이 만물을 끌어안으려 해도 어쩔 수 없는 틈이 생긴다고 하면서, 이 간격은 하나님만이 메꿀 수 있다고 했다.

인문학은 한재욱 목사 말대로 인간에게 명답은 될 수 있어도, 정답은 제공해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 인문학이 줄 수 없는 정답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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