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

13일 OCN에서는 영화'타이타닉'을 방영한다. 영화 '타이타닉'은 실화를 바탕으로 1912년의 최초이자 최후의 항해 때 빙산과 충돌해 침몰한 비운의 타이타닉 여객선을 타룬 영화이다. 여객석 침몰로 승객 2,229명 중 1,528명이 사망했다.

영화 타이타닉은 11층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호화 기선이 최초 항해에 나선 지 며칠 후인 1912년 4월 14일 밤, 차디찬 북쪽 대서양 물을 헤치며 미끄러지듯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인간이 만든 최대의 이동 물체였던 이 배에는 수많은 서민들과 함께 국제적인 명사들, 거부들도 타고 있었다.

그날 밤 11시 50분경. 봄철이 되어 북극지방에서 흘러나와 표류하던 거대한 빙산 하나가 부딪쳐 와 배의 우현을 긁어버리고 갑판 위에다 얼음을 퍼부으면서, 동시에 아래 쪽 방수실 6개를 찢어 놓아 바닷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 배의 선장 스미스는 탈출 명령을 내리되, 혼란 방지를 위해 승객들에게 침몰이 임박하다고 알리지 않았다. 모든 승객들과 선원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누어주기 시작했으며 좌현에서는 2등 항해사 찰스 라이톨러가, 우현에서는 1등 항해사 머독이 구명보트를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승객 대부분은 배가 침몰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구명보트에 탈 생각조차 안했다. 2등 항해사 라이톨러는 선장에게 여자와 어린이를 먼저 태울 것을 건의했다. 배가 침몰했을 때 선원들의 통제가 안 먹히는 경우 여성과 특히 어린이들의 생존률이 매우 낮아진다. 급박한 상황에서 힘센 남성이 구명보트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타이타닉의 숨은 영웅들이 있었는데 침몰된 배에서 희생정신을 실천한 이들이 있었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 충분히 구명정에 탈 수 있었지만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한 이들이다.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구명보트에 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에 남았다.조타실 문을 잠그고 침수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는 설과 다른 선원들과 함께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 물에 휩쓸려 가라앉았다는 설 등이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목격되기 직전까지 구조에 힘썼다고 하며, 끝까지 배에 남았기에, 선장은 배와 운명을 함께한다의 모범적인 사례 중 하나가 되었다.

배의 설계자인 토머스 앤드루스는 승객들의 구명보트 탑선과 뜰 만한 물건들을 던지는 것을 돕다가 1등실 흡연실에 조용히 들어가서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이때 고귀하게 남기로 한 사람은 앤드루스 뿐만이 아니라 다른 승객들도 있었다. 어떤 승객들은 카드 게임을 계속했으며 당대 저명한 언론인이었던 윌리엄 T. 스티드는 조용히 독서를 하고 있었다.

기관장인 조지프 G. 벨을 포함한 많은 기관사, 기관부들과 화부들이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직전까지 배의 전기를 작동시키는 작업을 하며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상선사관들 중 항해사들과 달리 기관사들은 전원 순직했다.

월리스 하틀리가 지휘를 맡은 8명의 악단은 배가 침몰하기 불과 10분 전까지 곡을 연주했다. 생애 마지막까지 찬송가'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을 연주하며 남아있는 자들을 위로했다.

2등실 승객이었던 가톨릭 사제 토머스 바일스 신부는 구명보트 승선을 거절하고 사람들의 구명보트 승선을 도왔고, 구명보트를 타지 못하고 죽을 운명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갑판 위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다가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