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한 방울 생수 구원 물줄기 청량
▲ⓒ픽사베이
본문: 요한복음 4장 9절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청하는 장면입니다. 평소 상종하지 않던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정말 목이 말라서 물을 달라고 하셨는지,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 물을 달라고 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물 달라는 간청에 응수하는 사마리아 여자의 답변에서, 우리가 묵상해야 할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어찌하여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마음의 빗장을 열어야 한다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9절)”.

주님이 물을 달라고 하는데, ‘어찌하여’라고 당돌하게 받아친 것은 여인의 순간적 거부 반응입니다. 이는 주님을 단순히 한 유대인 남자로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서로 친하게 지내지 않고 있는 민족적 관계를 드러낸 결과입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신앙적 이유로 오래도록 증오와 배척의 관계가 되어, 친하게 지내지 않은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래서 관계를 갈라놓고 있는 마음의 빗장을 열고 나서야, 물을 드릴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을 증오하고 멸시하여 상종하지 않는 만큼, 사마리아인도 유대인을 원망하고 저주까지 하며 배척했습니다.

당시의 굳어진 사회 통념(痛念)은 우리와 일본의 관계만큼이나 깊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켜켜이 쌓인 갈등의 앙금과 함께 너무 두텁게 깔려 있는 내력이 역사적 배경이었습니다.

같은 이스라엘 민족이면서도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두 민족이 갈라져 있는 형편입니다. 그 갈라진 상황이 그대로 오늘 우리의 남북관계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도 한 민족이지만, 남과 북이 갈라진 채 70년 이상 하나 되어 살지 못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이런 갈라져 있는 상황을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빗장이 모든 것을 순조롭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꼬이는 상황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께 마음의 빗장을 열고 나서야 물을 드릴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이유입니다.

2.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서로 갈라져 지낸 역사는 상당히 오래된 편입니다. 남왕국 유다가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돌아올 때 성전과 성읍 재건 과정에서 남왕국 유다에게 동맹을 제의했는데, 사마리인들이 거절을 당했습니다.

이에 앙심을 품고 사마리아는 유대인에게 가장 악랄한 방해세력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것이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구약의 제2정경이라는《집회서》에 이렇게 나옵니다.

“내가 마음으로 증오하는 민족이 둘 있는데, 셋째 번 것은 민족이라 할 수도 없다. 사마리아에 사는 주민들과 블레셋인들, 그리고 세겜에 사는 어리석은 자들이 그들이다(집회서 50: 25-26).”

“어찌하여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에는 서로 상종하지 않고 갈라져 있는 민족적 증오심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장벽’입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달라는데, 그 물 한 모금이 아까운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과의 ‘마음의 장벽’이 갈라져 있는 현실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제가 독일에 유학하던 시절,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그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살다가 이런 일도 있는가 하고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장벽은 언제나 무너질까에 대해 생각하면서 독일이 많이 부러웠습니다.

우리는 역사적 장벽은 어떻게 할 수 없다 해도, ‘마음의 장벽’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에 대한 교훈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문화적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문화’를 사전에서 찾으면,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문화란 사회 구성원에 의해 고유되는 생활 양식의 총체이고,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사회 구성원에 의해 공유되거나 전달되는 행동 양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문화 차이로 인해 갈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조금의 문화 차이로 갈라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실로 우리는 조금 다른 것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리나 격리를 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조금의 차이로 마음의 장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미국 대통령은 ‘세계의 대통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장벽부터 건설한, 이른바 ‘장벽 대통령’입니다. 그러더니 여러 동맹들 간에도 화합이나 연대보다 장벽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장벽 대통령이 무슨 노벨평화상을 받기를 원하는지, 그야말로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입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는 물음은 그 옛날 주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스스로 질문해야 할 반문일 것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정리

우리는 여러 장벽의 현실에서 살고 있습니다. 넓은 세상을 살고자 하면서도, 실제로는 이런 저런 장벽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그 장벽은 주변 환경이 만들어준 것도 있고, 스스로 만들어버린 것도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도 가급적이면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마음의 빗장을 열고 살게 하소서.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살게 하소서. 더 나아가 문화적 장벽까지도 허물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