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식
▲김명식 교수. ⓒ크리스천투데이DB
‘오직 예수’ ‘예수 예수 예수’ ‘주를 기뻐해’ 등의 찬양으로 잘 알려진 김명식 교수가 20년만에 컨티넨탈싱어즈의 대표를 다시 맡는다.

김명식 교수는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20년만에 컨티넨탈싱어즈의 대표를 다시 맡게 됐다”며 “컨티넨탈싱어즈는 ‘컨티넨탈 미니스트리’로 다시 태어나게 되며 법인화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컨티넨탈싱어즈를 만나고, 미국 투어를 하고, 지휘자, 대표가 되는 과정에서도 늘 묻고 또 물었던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었다”며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컨티넨탈싱어즈는 내 인생의 가장 커다란 흔적”이라고 했다.

이어 “거기서 꿈을 키우고 평생 동지들을 만나고 울고 웃었다. 한국, 미국, 피지, 뉴질랜드, 호주, 네델란드, 동독과 서독, 스위스, 오스트리아, 컨티넨탈과 더불어 다녔던 나라의 이름이다. ‘광야로 가라’ 이끄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컨티넨탈에 머물렀고, 아무 것도 모르던 이십대 후반에 지휘자가 되고 대표가 되었다”고 회상하면서 “사무실도 없고, 악기와 기재도 없고, 스텝도 없던 시절, 맨 땅에 헤딩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다”고 했다.

김명식
▲김명식 교수가 지난 날을 회상하며 게시한 사진. ⓒ김명식 페이스북
그러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누군가 이끌어주길 바랐을 때 아무도 가르쳐주는 이가 없었지만, 같이 무모한 여정을 감내하던 멋진 동생들이 있었고 주께서 때마다 지혜와 용기를 주셔서 무거운 책임들을 감당했다, 아주 오랜만에 이십여년 전 영상들을 돌아보니 스스로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제 그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1년 동안 컨티넨탈을 떠날 준비를 하고 대표직을 내려 놓았다”고 했다.

그는 “떠나던 때에는 그래도 꽤나 넓은 사무실이 있었고, 간사도 몇 명 있었다. 그 당시 개인적으로 협찬받았던 악기들과 스피커, 믹서 등을 다 두고 따로 볼펜 하나도 안 챙기고 떠났다. 아주 멀리 떠나 지켜보기만 했다. 그 어떤 말이라도 부담이 되고, 잔소리가 되었을 테니까 모른 척 무심한 척 하고픈 말들을 삼키곤 했다”며 “그리고 컨티넨탈의 대표직을 내려놓은 지 이제 이십년 만에 제가 다시 컨티넨탈 싱어즈의 대표직을 맡기로 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여전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날마다 하나님께 갈 길을 묻는 중년의 사역자에게 무거운 짐이 지워졌다, 낯설고 실감이 안 나면서도 돌아와야 할 제자리에 다시 돌아와 선 듯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며 “다시 이 자리로 이끄신 주님께서 힘과 지혜와 동역자들을 붙여 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향후 3년을 통해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 거라고 본다. ‘Go!’일지 ‘Stop!’일지는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겠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 뜻을 물으며 애쓸 것”이라며 “우선 ‘컨티넨탈싱어즈’는 ‘컨티넨탈 미니스트리’로 다시 태어나게 되며 법인화하게 될 것이고, 지난 30여 년의 사역기간을 통해 제 개인에게 부어 주셨던 여러 비전들이 컨티넨탈과 어우러져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했다.

또 “군무를 추는 아이돌이 전무했던 시절에 우리는 군무를 추었고, 교회에 피아노와 오르간 말고는 악기가 거의 없던 시절에 세 명의 건반주자와 드럼 베이스 일렉기타에 바이올린, 플륫, 프렌치 혼이 어우러지는 파격의 연주를 했었다. 랩이라는 쟝르도 낯설던 시기에 ‘여리고’를 통해 보였던 충격의 편곡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탁월한 구성의 ‘꿈의 사람 요셉’은 이후 수많은 교회들에서 재해석된 공연으로 올려졌다”고 회상하면서, “하지만 외형적인 그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은 꿈꾸는 청년들이 나아와 눈물로 자신의 삶을 고백하며 더불어 춤추고 노래하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자신의 사명을 찾아가고 동역자들을 얻었던 일”이라고 했다.

그는 “공연 전 아무런 악기도 없이 진행되던 기도회의 떨리던 영적 울림은 우리 평생의 자산이 되었고, 때론 유명한 대형교회에서, 무대에 선 이들보다 성도들이 작은 교회에서, 북한이 내려다 보이던 전방의 산 꼭대기 교회에서 때론 교도소에서, 때론 고아원에서, 때론 양로원에서, 어떤 날은 폐병에 걸린 분들의 요양병원에서, 부산 태종대에서, 수백미터씩 기재를 들고 나르기도 하며 치렀던 수많은 집회들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이끄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어서 너무도 기쁜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 한 해 우리는 우리의 사명과 핵심가치를 돌아보며 컨텐츠를 재정비하고, 조직을 재정비한 후, 교회와 기업과 개인들로 후원회를 구성할 것이며, 30주년에 해당하는 몇 가지 이벤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선 그 동안의 사역을 가장 잘 담아낸 대표적인 30곡을 엄선할 생각”이라며 “그 곡들을 잘 소화해서 언제라도 연주하고 노래할 수 있는 특별한 팀을 위해 기도한다. 당연히 컨티 OB가 주가 되겠지만, 컨티넨탈을 사랑했지만 기회를 놓쳤던 다른 분들에게도 문이 열리게 될 예정”이라고 했다.

또 “그렇게 사람이 모아지고 기도로 준비되고 연습이 진행된 후에 ‘I’m so proudly present!!’할 만한 마음이 들 때쯤 소식을 알리고 집회를 시작하려 한다”며 “올 초가을 추석 이전에 컨티넨탈 투어에 참여했었던 OB들이 주로 참여하는 앙콜투어를 준비한다. 2주 정도의 기간 동안 4,5일 정도의 리허설 캠프를 하고 10일간의 전국 투어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밖에 “지난 30년의 간증과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은 책도 하나 만들어야 하겠고, 30주년 기념공연을 기도로 준비한다”고도 밝혔다. 이에 대해 “컨티 가족들과 컨티를 사랑했던 모든 분들이 함께 하는 잔치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그는 현재 닥친 어려운 일에 대해 언급하며, “현실은 만만찮다. 마치 벼랑 끝에 선 것과 같다. 하지만 우리가 연약할수록 더욱 위대한 능력으로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주실 하나님의 품을 기대한다. 예비된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 있을 꺼라 믿는다”며 “열정적인 기대와 뜨거운 기도로 동역할 교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노래들을 들으며 살아난 사업가들이 우리의 사역을 도울 것이다.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가난한 이들의 지갑에서 나온 만원 한 장들이 모여 놀라운 사역을 열어갈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기적의 중심에 설 것”이라고 했다.

이어 “단지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며, 우리가 붙잡고 불렀던 앞으로도 불러야 할 노래들에서 여전히 우리가 할 일이 있음을 보기에 무모한 것 같아 보이는 믿음의 여정을 시작할 따름”이라며 “태어나게 하신 분께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주시니 참 감사하다. 더불어 걸어가고 있는 여러분들이 있어서 참 기쁘다”고 했다.

끝으로 “첫사랑처럼 주께 하듯이 늘 한결같이 살아가겠다”며 “컨티넨탈 OB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고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