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김영민 | 사회평론 | 276쪽 | 15,000원


온고지신, 독서상우… 고전이 중요하지만
모든 것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아냐
해석가들, 고전을 과대포장해서 팔고 있어

고전(古典)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溫故知新)’는 공자의 말은 고전을 읽어야 할 이유를 한 마디로 간추려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 옛 사람들과도 벗이 될 수 있다(讀書尙友)’는 맹자의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신영복 교수는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는 역사를 읽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의 저자 데이비드 덴비도 고전을 읽어야 하는 으뜸 가는 이유로 ‘우리와 멀리 떨어진 시대, 우리와 사뭇 다른 문화와 사유의 소산’이란 점을 들고 있다. 문제는 고전의 중요성을 너무나 강조하다 보니, 고전이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고전 속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뿌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환경오염을 해결할 대안을 발견하기도 한다. 현대사회의 소외를 극복할 공동체를 발견하기도 한다. 물질적 퇴폐에 맞서 인간성을 회복할 정신적 가치를 발견하기도 한다. 노화를 위로할 신경안정제를 찾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고전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문제는 고전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마치 고전을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과대포장해서 팔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 칼럼 등을 통해 해학과 냉소가 교차하는 유려한 글 솜씨와 우리 시대의 이면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도발적 문제제기로 주목받는 김영민 교수가 이번에는 ‘논어’를 들고 나왔다.

김영민 교수는 ‘논어’가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주장한다. ‘김영민 논어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이라는 책은 '논어 읽는 법'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이다.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사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브린모어대 교수를 지냈다.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비교정치사상사 관련 연구를 해오고 있다. 저자는 칼럼 스타다. 이 책도 2017년에서 2019년에 걸쳐 한겨레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책으로 발간한 것이다.

공자의 <논어>, 동아시아 대표적 고전
담고 있는 내용 때문에 유명하기보다는
유명하다는 사실 때문에 유명한 텍스트

저자는 이 책에 ‘논어 에세이’라는 부제를 붙이면서, 이 책이 ‘논어’에 대한 저작의 시작임을 말하고 있다.

“이 논어 에세이는 내가 구상하고 있는 논어 프로젝트의 일부이다. 논어 프로젝트는 총 네 가지 저작으로 이루어진다. ①논어의 주제를 소개하는 ‘논어 에세이’ ②기존 논어 번역본들을 비관적으로 검토하는 ‘논어 번역 비평’ ③논어 각 구절의 의미를 자세히 탐구하는 ‘논어 해설’ ④‘논어 번역 비평’과 ‘논어 해설’에 기초하여 대안적인 논어 번역을 제시하는 ‘논어 새 번역’. 따라서 이 논어 에세이는 논어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 그 이야기로 안내하는 초대장이다.”

‘논어’는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고전이라고 불려진다. 하지만 ‘논어’가 원래부터 그토록 커다란 고전이었던 것은 아니다.

역사적 맥락을 중시하는 학자들은 공자에 관한 사료가 ‘논어’ 말고도 여럿이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왔다. 많은 고전을 영어로 번역한 중국계 학자인 라우는 일찍이 공자에 관련된 가장 믿을 만한 사료로서 ‘논어’만큼이나 ‘좌전’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공자를 논할 때 ‘논어’에 집중해 왔다. 그토록 관심이 집중된 텍스트인 ‘논어’는 사실 다양한 이들에 의해 기록된 파편들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취합된 불균질한 텍스트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오랫동안 ‘논어’의 각 부분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주목해 왔고, 그 중 어느 부분이 진짜이고 어느 부분이 가짜인지,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논어’들이 존재하다 결국에는 합쳐져 현행 ‘논어’로 수렴됐는지 탐구해 왔다.

‘논어’는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 때문에 유명하기보다는 유명하다는 사실 때문에 유명한 텍스트가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논어’는 어쩐지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할 것 같은 책, 그러나 아직 읽지 않고 있는 책, 어쩐지 한 권쯤은 집에 사다 놓아야 할 것 같은 책, 그러나 자기보다는 자식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책, 누구나 어느 정도 안다고 주장하고 싶은 책, 그러나 사실 잘 알지 못하는 책이 되었다.

<논어>, 고전 이전에 ‘역사 속 텍스트’
공자, 고독한 천재보다 고투한 지성인
논어 매개로, 텍스트 공들여 읽게 되길

이런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논어를 읽기 위한 좋은 길라잡이가 된다. 저자는 ‘논어’가 고전이기 이전에 역사 속의 텍스트라는 것을 강조한다. ‘논어’를 텍스트로 본다면 논어의 주인공 공자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혜안(慧眼)을 가진 고독한 천재라기보다는 자신이 마주한 당대의 문제와 고투한 지성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 책을 읽는 이들이 ‘논어’를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하지 말기를 호소한다. 서구 중심 사상의 대안으로 설정하기 말기를 제안한다. 동아시아가 가진 온갖 폐단의 근원으로 간주하기 말기를 제안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희망하는 것은 소박하다. ‘논어’를 매개체로 해서 텍스트를 공들여 읽는 사람이 되어보자는 것이다.

“무턱대고 살아 있는 고전의 지혜 같은 것은 없다. 고전의 지혜가 살아있게 된다면, 그것은 고전 자체의 신비한 힘 때문이라기보다는, 텍스트를 공들여 읽고 스스로 생각하는 덕분이다. 이 점을 확실히 할 때에야 비로소 ‘논어’는 독자에게 양질의 지적 자극을 주게 될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고전 텍스트를 읽는다고 해서 노화를 막거나, 우울증을 해결하거나, 요로결석을 치유하거나, 서구 문명의 병폐를 극복하거나, 21세기 한국 정치의 대답을 찾거나, 환경을 문제를 해결하거나, 현대인의 소외를 극복하거나, 자본주의의 병폐를 치유할 길은 없다.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이다.”

삶과 세계 ‘텍스트’, 읽을 줄 아는 사람으로
제대로 읽으려면, 콘텍스트 제대로 알아야
공자와 <논어>,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곧 저자는 고전의 텍스트를 제대로 읽을 줄 알 때, 삶과 세계를 읽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텍스트를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텍스트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콘텍스트’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고전은 이미 오래 전에 기록된 이야기이다. 현대와 맞지 않는 내용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고전이 기록된 콘텍스트를 알고 텍스트를 읽는다면 여전히 고전의 내용은 오늘날도 적용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논어’를 포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그대로를 투영하려고 한다. 공자를 포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공자에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이야기 하려고 한다.

“공자는 도대체 예상할 수 없었던 발언을 갑작스럽게 해낸 천재가 아니라, 이미 선례가 있는 입장이나 경향을 나름대로 소화해낸 사람이었다. 당대의 자료 속에 들어가 보면, 공자는 그가 속한 시대의 문제를 고민했던,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문제를 사유했던,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공자는 영생하는 신이 아니었기에, 괴력난신(怪力亂神)으로부터 거리를 둔 사람이었기에, ‘논어’가 전하는 이러한 공자의 페르소나는 실로 삶이라는 유일무이의 이벤트에 집착했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삶이라는 이벤트에서 끝내 욕망이 사그라들지 않았던 사람, 과잉을 찬양했던 사람, 노년에 이르러도 그치지 않은 배움이라는 긴 마라톤에 출전하기를 꺼리지 않은 사람, ‘논어’는 그렇게 분투한 사람에 대한 재현이다.

공자는 사채 빚 없이도 삶 속에서 분투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공자는 동시에 실패한 사람이었다. 정치라는 현실의 철로를 달리고 싶었으나 달리는데 실패한 사람이었다.”

성경 book 손때 책 영어
▲ⓒ픽사베이
그리스도인, 고전 중 고전인 성경 있어
고전은 인간의 말, 성경은 하나님 말씀
말씀, 지식에서 삶으로 이어질 때 변화

그리스도인에게는 고전 중에 고전인 성경이 손에 들려져 있다. 고전이 인간의 말이라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고전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지만, 성경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다. 곧 인간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이라는 텍스트를 읽기만 한다고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읽어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콘텍스트를 바로 알고 제대로 읽어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는데도 변화되지 않는다. 여전히 문제 속에서 헤매이는 경우도 많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읽되,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지식적 읽기를 넘어 삶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력이 있다. 하지만 그 말씀이 지식적인 앎으로 그치면 삶 가운데 선한영향력을 미치기가 어렵다.

그 말씀이 지식에서 삶으로 이어질 때, 삶 가운데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스도인이 최고의 고전인 성경의 텍스트를 제대로 읽어낼 때, 교회가운데 다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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