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독립선언서 사진
▲2·8독립선언서. 2·8독립선언 100주년기념 학술 심포지엄 및 국민 대토론회 사진 전시 중. ⓒ크리스천투데이 DB
‘2·8 독립선언’이 3·1운동 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일본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을 담을 책 ‘미완의 독립선언’이 일본 도쿄에서 출간됐다.

‘2·8 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 일제 당시 일본의 심장부였던 도쿄의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선포됐다. 당시 조선인 유학생은 일제의 심장부에서 전 세계를 향해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한 정황과 폭력성에 대해 폭로하고 우리의 독립 의지를 밝혔다. 특히 2.8독립선언은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는 내용의 ‘기미독립선언서’와 범민족적 독립운동인 3.1운동의 기폭제가 됐다고 평가받고 있다.

재일본한국YMCA가 출간한 ‘미완의 독립선언’은 1부에서 ‘근대사 속의 독립선언과 3·1운동’에 대해, 2부에서 ‘기독교적 문맥에서 바라본 독립선언과 3·1운동’을, 3부에서 ‘역사 인식·교육과 식민지 지배 책임 등 기억의 계승과 한일 시민사회 과제’라는 주제를 다룬다.

책은 독립선언이 ‘대만의 탈식민지 자치 운동’과 ‘중국의 5·4 항일운동’에도 영향을 주었고, 일본 지식인들이 조선 지배 문제를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것을 강조한다.

재일본한국YMCA는 “2·8연구회가 2017∼2018년 8회에 걸쳐 한일 양국의 학자들과 진행한 세미나와 지난해 도쿄와 오사카(大阪)에서 열린 2·8 독립선언 10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의 주요 논의를 담아 일본어로 ‘미완의 독립선언’을 냈다”고 했다.

재일본동경조선기독교회 교회원들 사진
▲재일본동경조선기독교회 교회원들(1915). 2·8독립선언 100주년기념 학술 심포지엄 및 국민 대토론회 사진 전시 중. ⓒ크리스천투데이DB
오노 야스테루(小野容照) 규슈산업대 교수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유학 온 조선인 유학생은 일본인, 중국인, 일본 지배하의 대만인 등 아시아에서 몰려든 유학생뿐만 아니라 서구에서 온 외국과 자연스럽게 교류했다”며 “각국에서 온 지식인 간 글로벌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 반제국주의를 담은 독립선언의 배경이 됐다”고 했다.

오노 교수는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가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 교수를 중심으로 결성된 여명회(黎明會)가 1919년 3월 19일 모임에 독립선언 참가 유학생을 초청해 취지와 배경 설명을 들었다”며 “조선유학생과 일본 지식인 간 적대감 없이 교류하는 물꼬를 튼 계기가 됐다”고 한다.

2·8연구회 회장으로 책 발간을 주도한 이성전 게이센죠학원대 교수는 “한국어·일본어·영어로 쓰인 독립선언은 전 세계에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알렸고 일본 지식인들에게도 식민지배의 문제점을 각성하게 했다”며 “10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를 제대로 인식하고 진정한 우호를 구축해야 하는 역사적 책무가 있다는 판단에서 ‘미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