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도 바울과 아브라함

권혁승
▲권혁승 박사(전 서울신대 구약학 교수) ⓒ권혁승 박사 블로그

바울의 활동지역은 팔레스타인을 벗어나 소아시아와 그리스로 확대되었다. 이것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같은 교회공동체 안에 공존했음을 의미한다. 바울의 선도활동 근거지가 되었던 안디옥교회는 유대인과 헬라인이 함께 모이는 최초의 공동체였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바울은 유대인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정통 유대인 배경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곧 그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베냐민 지파에 속하는 이스라엘 족속이며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으로 율법 준수에 열정적인 바리새파 사람이었다(빌 3:5).

그에게 일반 유대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 믿은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기독교인이 되는 것과 유대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양립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그것이 배타적이거나 갈등의 요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유대교를 버리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이 자신처럼 예수를 하나님의 메시아로 믿을 것을 간절히 원했다(롬 10:1).

바울에 의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운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으며, 아브라함과 같은 위대한 인물이 그들의 조상이고 그리스도도 육신적으로는 그에게서 나왔다(롬 9:4-5).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이 그런 혜택을 입고 있는 것은 아브라함을 포함한 그들의 조상들 때문이었다(롬 11:28).

바울을 괴롭혔던 문제는 기독교인이 된 이방인들에게 유대인들이 지키는 율법을 어디까지 적용시켜야 하는가이었다. 특히 유대교에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필수적으로 할례를 요구하였다.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할례를 받는 것이 심각한 갈등요인이었다. 바울은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내세웠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조상일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백성들의 조상도 된다. 당시 유대인들도 유대교에 입교한 개종자들의 아버지가 아브라함임을 앞세우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자녀를 낳거나 땅을 소유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조건 없이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창 15:6; 롬 4:22; 갈 3:6).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율법을 행함으로 얻는 의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길이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조건 없이 믿듯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롬 4:18-21, 24).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만이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으며, 그런 특권은 이방인 모두에게도 아무런 제한 없이 개방되어 있다(갈 3:7-8).

그러면 율법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점에서 율법은 구원을 얻는 일과는 무관하다. 바울은 두 가지를 들어 율법과 구원의 무관함을 설명한다. 하나는 율법이 아브라함 이후 430년이 지난 뒤에 주어졌으며(갈 3:17), 하나님이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에 맡긴 것으로 약속하신 자손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유효한 것이다(갈 3:19). 또 다른 하나는 할례와 관련된 것이다.

율법문제와 더불어 할례문제는 어느 것보다 심각했다. 당시 유대교로 개종하려는 이방인들에게는 할례를 받는 것이 엄격하게 실시되었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받았을 때에 그는 할례를 받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할례문제를 다루고 있다(롬 4:10). 할례는 아브라함에게 의롭다함을 받은 조건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는 자들의 조상일 뿐 아니라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 기독교인들의 조상도 된다(롬 4:11) (계속)

권혁승 박사(전 서울신대 구약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