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 연애는 다큐다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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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 때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부부 간의 잠버릇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친구는 남편이 코를 골아서 각방을 쓴다 하고, 어떤 친구는 자기가 너무 예민해서 옆에서 뒤척이기만 해도 잠을 깨는데, 아내는 잠만 잘 잔다고 한다. 또 어떤 부부는 좀 큰 침대에서 베개를 반대로 두고 서로의 발치에서 자니 많은 문제가 해결됐다고도 한다.

실제로 주변의 부부들을 보면, 한 사람은 잠이 많고 한 사람은 잠이 없는 경우, 한 사람은 많이 뒤척이는데 한 사람은 죽은 듯이 자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생각난 것은, 둘 다 잘 잔다는 부부나 둘 다 코를 심하게 골거나 잠버릇이 고약하다는 사람들은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주 드물 것이고, 잠자는 부분이 비슷하다면 다른 부분에서 또 엄청난 극과 극의 사고와 행동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참 신기한 것은, 서로 면접을 본 것도 아닌데, 어쩌면 그리 반대인 사람을 만날까 하는 것이다. 서로 식성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사고의 체계 등등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어떤 때는 누군가 프로그램을 돌려서,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짝을 맞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사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일 것이다. 그 거대한 중매(?) 프로그램의 메커니즘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람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정반대편의 사람을 만나게 하신 것일까.

보통 연애를 할 때는, 서로 공통점이 많다며 좋아한다. 여기서부터 프로그램은 작동된다. 서로의 눈을 잠시 가리는 단계다. 안 그러면 만남의 성사가 쉽지 않다.

서로 잘 맞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일단 사랑의 묘약에 취해서, 제대로 볼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방이 어떻든 다 받아줄 아량과 용의가 있으므로 용납하고 이해하며, 감당하고 싶어진다. 심지어 반대인 것도 서로 채워주고 닮아가고 싶을 정도다.

물론 이 시스템은 결혼 후 대부분 깨지게 된다. 결혼 전에 연애를 아무리 오래 해도 알 수 없는 것들이 튀어나온다.

잘 맞는다고 생각한 몇 가지를 뺀 나머지 모두가 서로 다르다. 어떤 논쟁점을 두고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의 흐름이나 판단의 근거를 상대방은 지니고 있고, 내 생각과 판단을 이해하는 방법은 아예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안 보이던 것도 다 보이는데, 예전처럼 다 감당해 줄 넓은 아량과 애정은 식어간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끝내 그런 어그러짐을 끝내 감당하지 못하면, 두 사람은 갈라서게 된다. 많은 말을 함축한, ‘성격 차이’라는 사유로 말이다.

하지만 이럴 것을 연애할 때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세상에 속은 것이고, 자신에게 속은 거다. 살아온 시간과 문화가 다르고 배움과 경험이 다른데 어떻게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도 이해 못 하는데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부모님을 보아도, 세상의 모든 부부를 보아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는데, 왜 자신들은 예외일 거라고 생각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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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 모순처럼 보이는 프로그램의 설계자이자 실행자의 의도와 목적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일단 두 사람은 가장 큰 임무인 하나님이 맡기신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데, 한 가지 사고로 아이가 자라게 해서는 안 된다.

신앙이나 사고방식, 세계관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 부모다. 그래서 닮고 싶지 않아도 닮게 되는 것이니, 가능하면 균형 잡힌 다양한 생각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잘 맞지 않는 부모의 논쟁은, 다툼으로 번지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사고를 넓혀줄 수도 있다.

또 앞에서 잠자는 습관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둘 다 죽은 듯이 자는 스타일이면, 아기를 키울 때 누가 밤중에 일어나 분유라도 타 먹이겠는가.

식성도 그렇다. 한 사람이 마늘이나 파를 싫어하는 등 편식을 하면, 그 집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영양결핍에 걸리기 쉽다.

패스트푸드 마니아 동호회에서 만난 부부가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몇 번은 햄버거와 콜라를 먹이는 식이면 곤란하다.

둘 다 게임중독에 빠져 온라인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임을 함께 하던 부부가 친자식을 굶겨 죽인 일도 있었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서로 같은 취미가, 그리고 서로 같은 무개념이 불러온 참극이었다.

한 사람이 패스트푸드를 즐기더라도, 한 사람은 식성이 달라야 잔소리도 하고 식습관도 점차 나아지는 것이다. 한 사람이 역마살이 들어 늘 밖으로 나돌며 여행과 캠핑을 너무 즐기려 해도, 한 사람은 자리를 지켜야 집안이 돌아간다. 둘이 같은 취미를 갖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모든 면이 같은 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심지어 신앙 스타일도 같으면 한 마음이 돼서 좋겠지만, 너무 이견 없이 똑같으면 한 방향밖에 모르게 되어, 그릇된 길도 함께 걸어갈 수 있다. 서로 건전하게 토론하고 각기 다른 생각도 받아들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다. 획일적인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모든 일이 이와 같다. 한 사람이 주식에 빠지거나 쇼핑광이거나 일중독이거나 할 때, 배우자가 똑같이 그 일들에 빠진다면 그 가정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데도 “우리 부부는 너무 잘 맞아요” 하면서 좋아할 수 있을까?

성격도 마찬가지. 둘 다 급하고, 둘 다 분노조절을 못하고, 둘 다 답답하고 그런 식이라면, 자칫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운동경기에서도 각자의 포지션이 있고 특기가 있다. 축구에서 모두가 스트라이커나 모두가 골키퍼일 수는 없고, 야구에서도 투수만 있거나 포수만 있을 수 없듯, 다른 것은 곧 각기 적절한 역할이 필요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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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다른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일까. 물론 그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달라서 못 살겠다며 헤어질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상대방 때문에 괴롭다면, 우선 상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또한 이해하고 싶지 않을 만큼 미워서다.

사랑하면 용납할 일도, 이제는 봐주고 싶지 않은 상태이다. 밉다 보니 서로 노력하지 않게 된다. 감정이 상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서로 상처를 입고 또 되돌려주기를 반복하다 보면 더 미워진다.

달라서 괴로운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자체보다 서로 호흡이 안 맞아서 그렇다. 축구 경기의 스트라이커는 미드필더가 찔러주는 공을 받아 골로 연결할 때가 많다. 서로 다른 포지션이지만 손발이 맞아야 하는데, 사인도 안 맞고 도움을 주고 싶지도 않다면 성공적인 게임이 될 수 없다. 부부간에도 다른 것 자체로 끝나면 성공적인 결혼생활이 될 수 없다.

한편 우리가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진짜 다른 게 아니라, 상대적인 느낌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면이든 비슷한 사람끼리도 조금이라도 더한 사람이 있고 덜한 사람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둘이 다 취약하면 상대적으로 덜한 쪽이 나설 수밖에 없다. 아무리 둘 다 잠이 많은 맞벌이 부부라도, 그나마 나은 한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게 되는 식이다.

서로 다른 것은 어떤 의미에서 축복이고, 나에게 없는 것을 더 배우고 지경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이다.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고 삶의 전환점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상호보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끝내 배우자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삶을 마칠 것이다.

상대방이 내 부족함을 채워주기만 기대하지 말고, 내가 먼저 상대의 부족함을 보완할 수 있도록 살펴야 한다.

안 맞는다고 실망하지 말라. 그래도 조금은 맞는 부분들이 있지 않은가. 어쩌면 잘 맞는 것들 때문에, 이후 서로 다른 부분들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일지 모른다.

모든 면에서 안 맞는 커플은 없다. 만일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 누구와도 맞추며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맞는 부분은 잘 이어가고, 안 맞는 부분은 다 이유가 있으려니 하면서 살면 될 것이다. 물론 범죄에 가까운 치명적 문제점들까지 단순히 안 맞는 것으로 분류해 참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나만 괴로운 것이 아니고, 상대방도 나 땜에 괴로운 상황일테니, 서로 인내하고 살다 보면 어느새 닮아 있는 서로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왜 이토록 기어코 반대의 사람과 살게 하셨는지 그 이유를 깨닫는 날도 올 것이다.

이 땅에서 영영 모르면, 나중에 하나님이 알려주시리라 믿는다. 그제야 우리는 ‘그 거대한 매칭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을 깨닫게 될 것이다.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30여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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