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정신
법의 정신

몽테스키외 | 하재홍 역 | 동서문화사 | 731쪽 | 12,000원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55)는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사상가다. 그는 1689년 보르도 시 근교의 샤토 라 브레드에서 귀족의 아들로 출생했다.

11세 때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12킬로미터 떨어진 쥐이의 기숙제 중등학교에 들어가 5년간 데카르트 학파의 철학과 수학을 배우고, 그 후 보르도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한 뒤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25세 때인 1714년 보르도 고등법원의 판사가 되고, 2년 뒤 백부가 사망하자 그 관직을 이어받아 원장으로 취임(1716-1726년)했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법은 사물의 성격에서 유래하는 필연적 관계다.”

이 유명한 정의로 시작되는 <법의 정신>은 몽테스키외가 20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쓴 필생의 대작이다.

진리·미덕·행복이 일체를 이룬다고 믿었던 그는, 법은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상태로 되돌려놓아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모든 도덕적·정치적·종교적 편견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운 정신과 깊은 식견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이 나올 때는 루이 14세가 세상을 떠난(1715) 후 프랑스 절대왕정의 쇠퇴기로, 사상의 통제도 강화됐다. 이 책은 절대왕정이 전제정치로 부패하는 것을 막고, 정치적 자유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을 그 중심적 테마로 하고 있다.

이 책의 초판은 사상적인 박해를 고려했기 때문인지 외국(제네바)에서 익명으로 출판되었다.

‘법의 정신’이란 말은 입법의 원리란 뜻을 가진다. 본서는 전체가 31편으로 돼 있다. 그 통일된 이해는 초판 이래 쟁점으로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크게 나눠 다음 두 가지로 분류하면, 하나는 방법의 견지에서 통일된 이해를 시도하는 것과 보다 내용적인 구성을 문제로 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일적으로 이해하려면, 보다 실질적인 내용에 의해서 그 구성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제2부(9-13편)는 정치적 자유의 실현을 문제로 삼고 있는데, 이것은 정치의 부패가 정치적 자유의 상실과 전제에의 타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국가는 정치적 자유를 실현시킬 사명을 가진다.

이어 제3부(14-19편)는 예속제, 즉 정치적 자유가 부정된 상태의 고찰로, 제2부의 문제를 이면으로부터 고찰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제4부(20-23편)의 중심 문제는 국가의 번영 혹은 국부의 문제다. “자유로운 국민은 인간이 보전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차라리 획득하기 위해 일하기 때문”인데, 동시에 이 국부를 추구하는 방법은 자유를 유지하는 문제 와 관련해서 검토된다.

제5부(24-26 편)의 중심 문제는 종교에 관한 것이다. “시민생활에서 생겨날 복리에만 관련시켜서 세계의 모든 종교를 음미해 보도록 하자”는 말과 같이, ‘사회의 복리’가 구체적인 정치적 자유의 문제와 관련되고 있다. 이상까지는 모두 세계사적 시야에서 비교 검토되어 있다.

그러나 제6부(27-31편)에서는, 게르만에서 기원해 게르만적 자유를 갖춘 프랑스 군주제 생성사가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까지 추구된다. 여기서는 이제까지 세계사적 시야로 고찰되던 것이 프랑스의 군주제로 그 관점이 집중된다.

본서의 중심 과제는 정치적 자유의 실현 문제인데, 그것이 각 민족의 정체·습속·풍토·상업·종교 등 특수한 조건과의 관련에서 추구돼 있다.

정치적 자유란 추상적으로 말한다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끔 강제받지 않는 것”을 뜻한다. “자유란 법이 허용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리”이므로, ‘법의 지배’가 정치적 자유의 첫째 조건이라 생각된다.

유일자가 모든 일을 자기의 수의(隨意)에 따라 영도하는 전제가 본질적으로 비자유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러나 군주제나 공화제도 본래부터 자유인 것은 아니다. 항상 전제로 타락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정치적 자유는 자기 마음대로는 성립되지 않으며,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는 인간의 신중한 생각과 영지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 또 풍토나 경제정책, 종교 따위에 의해서도 규정된다.

몽테스키외
▲몽테스키외.

본서 제11편 제 6장 ‘영국의 헌제에 관하여’에서 주장되고 있는 소위 삼권분립은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몽테스키외를 삼권분립을 주장한 사람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렇지 않다. 몽테스키외가 주장하는 것은 집행권. 입법권 및 사법권이 서로 통제해야 한다는 정교한 체계이다.

더욱이 그는 비록 삼권이 분립돼 있더라도 그것들이 동일한 사회 세력에 독점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전제정치와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왕, 귀족 그리고 ‘인민(부르조아지)’이라는 3개 사회세력에의 ‘권력 배분’과, 그것에 기본을 둔 이 여러 세력의 상호 억제, 이것이 정치적 자유의 한 조건이라고 생각돼 있다.

더구나 이 ‘권력배분’의 결과, 가장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은 귀족인 것이다. 본서의 또 하나의 중심 과제는각 민족의 정체·풍속·풍토 등에 적합한 법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왕제 하의 프랑스가 다른 나라의 법(로마법)에 의해서 지배돼 있다는 비판의식에서 나왔고, 또 프랑스군주제의 기원과 역사적 성격에 관한 당시의 역사학에서의 논점에 관계된다.

로마니스트는 프랑스의 국왕을 로마 황제의 권리 계승자로 간주하고, 절대 왕제를 옹호했다. 한편 게르마니스트는 자유로운 선거군주제의 기초 위에 구축된 프랑크 법의 담당자를 프랑스의 군주제와 프랑스의 귀족에서 찾아냈다.

이 대립은, 절대 왕제와 그것에 대항하는 귀족과의 대립을 나타내고 있다. 몽테스키외는 이 가운데서 게르마니스트의 입장에 입각, 귀족계급에 의한 왕권 제한에서 자유가 실현될 보장을 보아(“군주가 없으면 귀족도 없고, 귀족이 없으면 군주도 없다”), 초기 군주제에서 정치적 자유가 실현된 이상적 정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몽테스키외를 삼권분립의 주장자·근대 자유주의의 아버지로 보는 통설이 있다. 사실 프랑스 혁명 때 혁명가들은 몽테스키외의 사상을 절대 왕제 비판의 무기로 원용한 일도 있고, 이 사상은 미국 독립혁명의 이념격인 지주가 됐다. 입헌군주제나 연방제 합리화를 위해 원용된 것이다.

삼권분립론의 내용은 제11편 ‘정치적 자유와 국가 기구의 관계에 관한 법에 대하여’ 속 제6장 ‘영국의 국가 구조에 대하여’에 있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그 무렵 영국 국가 구조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영국에 대해 서술한다는 구실을 통해, 새로운 제도를 주장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권력분립론에 관해서는 영국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인 로크의 이름도 거론되지만,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론은 로크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몽테스키외는 집행권과 동맹권이 분리돼 있는, 로크의 이른바 대내적 및 대외적 행정권을 하나의 집행권으로 정리했다. 또한 로크가 집행권 속에 포함시켰던 사법 권력을 재판권으로 독립시켰다.

<법의 정신>에서 몽테스키외가 추구한 것은 결국 정치적 자유였다. 힘겹게 쟁취한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적 자유가 오히려 무관심으로 변질되고 있는 오늘날, 그의 주장이 여전한 생명력을 가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법의 정신>은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프랑스에서 판매 금지되었다. 2년 뒤, <‘법의 정신’을 옹호함>(1750년)이 출판되는 등 친구들이 애썼는데도, 이 명저는 로마에서도 판금되고 말았다.

그러나 몽테스키외는 <로마인의 위대함과 퇴폐 원인에 관한 고찰>과 <페르시아인의 편지> 재판을 찍고,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백과전서>를 위해 일했으며, <취향론>을 쓰기 시작하는 등 열정을 거두지 않았으며, 1755년 1월 20일 파리에서 폐렴으로 생을 마쳤다.

송광택 목사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