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 문제 어려움, 발병해도 치료 힘들어
한국 대사관이 도와줄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우한 폐렴)’로 진원지인 중국에서는 대중교통이 한시적으로 운행을 중지하고 도시가 봉쇄되는 등 강력한 ‘이동 제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중국은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북한 주민들의 주요 탈북 루트이다. ‘육로 탈북’을 위해서는 일단 중국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은 공권력을 사용해 난민 지위의 탈북민들을 강제북송하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탈북민들은 압록강을 넘어 북한을 탈출해서도 안심하지 못한다. 중국을 벗어나 대한민국 등 ‘제3국’에 도착할 때까지 불안은 계속되고, 현지 공안에게 붙잡히지 않기 위해 은밀하게 이동하고 있다.

서둘러 이동해야 하는 중국 내 탈북민들에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또 다른 ‘재앙’이 되고 있다. 북한 인권 운동가들은 중국 내 탈북민들이 이번 사태로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며 입을 모아 기도를 요청했다.

끝까지 간다
▲TV조선 ‘끝까지 간다’에서 아버지가 갓 탈북한 주성 군과 통화하는 모습. ⓒTV조선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끝까지 간다’를 통해 탈북민 구출 과정을 소개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김성은 목사(갈렙선교회)는 “민관군이 중국 내 이동을 총체적으로 막고 있다. 검문검색을 하고 도로를 통제하다 보니, 탈북민들은 이동할 수 없어 모처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의식주 문제가 당장에 필요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SNS에서 “중국 내 탈북민들이 안가(안전가옥)에서 우한 폐렴이 물러가는 동안 생활에 필요한 일체의 모든 것이 공급될 수 있도록 기도와 동역을 바란다”고 전했다.

탈북민 구출활동을 하고 있는 정베드로 목사(북한정의연대)는 “중국 내 모든 이동 수단과 도시 검문 경계가 강화됐다. 심지어 농촌 마을 입구에도 차단기가 설치돼, 탈북 여성들이 이동해 체류 지역에서 빠져나오는 모든 활동이 중지된 상태”라고 밝혔다.

정 목사는 “이번 사태가 빨리 진정되거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야 할 것 같다. 탈북민들을 보호하고 있는 현지 활동 단체들은 이번 사태가 끝날 때까지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는 등 2중 3중으로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며 “설 명절(춘제) 동안 이동하려던 이들도 힘들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그들이 움직이려면 차량을 빌리는 등 경비가 든다. 또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탈북민들이 마냥 숨어 지내야 할텐데, 얼마나 답답하겠는가”라며 “북한 국경 지역도 경계가 크게 강화돼, 탈북은 물론 북한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고 했다.

정 목사는 “시진핑 주석이 이번을 계기로 많이 회개하고 돌아서길 바란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탈북민 꽃제비 출신으로 최근 자유한국당에 영입된 북한 인권 운동가 지성호 대표(NAUH)는 “이번 사태와 함께 설 연휴도 있고 해서 탈북민들이 이동하기가 어렵다”며 “설 지나고 본격적으로 움직이려 했는데, 우한 폐렴 때문에 당분간 어렵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지 대표는 “각자 가정집에서 생활하는 탈북 여성 분들이 있는데, 이동을 시작하면 한번에 모여서 출발해야 한다”며 “다행히 최근 대기하던 분들은 다 출발해 안전한 국가들로 들어갔다”고 보고했다.

우한 폐렴 사태 mbc 보도
탈북민 출신 목회자인 강철호 목사(새터교회)도 “선교사 한 분이 중국에서 들어오기로 했는데, 이번 사태로 못 들어오고 있다”며 “저도 설 명절에 중국에 갔다가 주일을 지키기 위해 미리 출발해 돌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한국으로 와야 할 탈북민들 6명을 동남아로 이동시켜야 하는데, 이번 사태로 발이 묶였다”며 “각자 머물고 있는 집에 식사를 갖다주는 일들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상황이 너무 어렵다고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탈북민들이 이런 일 때문에 피해를 입은 것은 처음인 것 같다”며 “빨리 사태가 안정돼 탈북민들이 정상적으로 이동할 수 있길 바란다. 기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규호 목사(선민네트워크 상임대표)는 “중국 내 탈북민들은 난민 또는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도 받을 수 없다. 은폐된 곳에 있다 변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된다”며 “그래서 더욱 북한이탈주민보호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탈북민들이 중국에서 우리 대사관으로 신변보호 요청을 할 경우, 정부가 자국민으로 인정하고 적극 구호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내용이 법안에 포함돼야 했다. 법안 제정 당시 그 부분을 넣지 못해서, 법률이 국내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만 적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률을 개정해, 제3국에서 긴급한 구호 상황이 생겼을 때 현지 대사관이 적극 움직일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당사국과 외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서 동포와 혈육을 위험에 빠뜨리는 짓을 해서야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목사는 “긴급한 일이 생겼을 때, 탈북민들이 현지 대사관에 구호를 요청할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시스템이 갖춰지길 바란다”며 “지금은 현지 선교사들이 애를 쓰고 계시기에, 그분들의 활동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