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과학, 신앙적 관심을 ‘과학적 관심’으로 치환
영적 전쟁의 적을 동성애, 페미니즘, 젠더로 확장
지성운동과 기독교세계관 네트워크 통로로 확산

창조 진화 포럼
▲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개신교 근본주의가 반진화론과 창조과학에 빠진 이유’라는 제목의 포럼이 28일 오후 서울 아현동 새물결아카데미 대강의실에서 개최됐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원장 김영주 목사)와 과학과신학의대화(대표 우종학 교수)가 공동 주최한 이번 포럼에서는 김현준 연구원(서교인문사회연구실)이 ‘한국 개신교는 왜/어떻게 창조과학에 빠졌는가’를 발표했다.

‘진화적 창조(유신진화론) 인정’ 또는 ‘자유주의 신학’ 진영의 시각을 엿볼 수 있었던 이날 포럼은 창조과학을 부정하는 듯한 입장에서 진행됐으며, 진화론을 포함해 공산주의와 동성애, 이슬람 등을 한국교회의 ‘혐오 대상’으로 전제했다.

김현준 연구원은 기독교인들이 창조과학에 ‘빠진’ 이유를 문화사회학·지식사회학적으로 접근해 분석했다. 그는 “창조과학은 현대사회 속에서 겪는 신앙적 위기에 대한 변증적 성격을 지니는 종교적 담론”이라며 “그 중핵은 과학이론이 아니라 신학이론”이라고 했다.

김 연구원은 “창조과학자들은 신앙적 관심을 과학적 관심인 양 치환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보수 개신교의 신학적·지적 행위자들(actants)과 ‘동맹’을 구축해 왔다”며 “교회 내 과학교육이나 창조과학자들의 강연은 지식 자체의 전달보다, 종교적 집합흥분을 통해 보수신앙의 유대를 강화시키는 ‘의례’로서 그 기능이 예배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먼저 문화·종교적 환경에 대해선 “극우주의적 정치 이념들처럼, 근본주의적 종교들과 창조과학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창조과학은 과학에 대한 불확실성(그에 따른 불안과 공포)과 신앙적 진리를 향한 진정성 있는 열정을 자양분 삼아 확산된다”며 “창조과학과 근본주의적 신앙의 확산은, 소위 자유주의 신학으로 통칭되는 모더니티와 과학주의, 역사비평학에 대한 저항”이라고 했다.

그는 “보수 개신교인들은 사랑이나 ‘창조-타락-구속’ 같은 거대서사보다는 ‘거대한 공포서사’를 만들어냈다. 이 공포서사는 영적(문화) 전쟁의 승리를 위한 전제로 작용한다”며 “최근 한국 우익 개신교 세력은 이 프레임으로 혐오 선동과 극우정치 국면을 전개하며, 영적 전쟁의 적을 동성애, 페미니즘, 젠더 퀴어 이론 등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인권 이론들과 운동들을 네오마르크시즘의 개신교 말살과 공산화 전략으로 호도하고 있다”고도 했다.

또 “창조과학의 발흥이 단지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의 탓만은 아니다. 오늘날 과학은 근대 사회의 지배규칙과 합리성의 표상이 됐고, 과학자는 모더니티의 ‘히어로’나 ‘사제’가 됐기 때문이다. 히어로는 항상 ‘빌런’을 부른다”며 “과학(기술)자들이 과학만능주의라는 신화와 부작용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과학 실천에 대한 세심한 태도를 취했더라면 어땠을까”라고 반문했다.

이어 국가·제도·교육정책적 환경과 관련해선 “국가 경제발전의 도구이자 기술로서 과학에 대한 강조가 과학교양을 약화시키고 비과학적 태도 확산의 토대로 작용했을 수 있다. 과학은 발전주의의 부속품이었던 셈”이라며 “이러한 정책기조 하에서 당시 미국 유학을 떠났던 이공계 학자들은 개신교로 회심했고, 창조과학을 접하고 돌아와 서울대와 카이스트 등에 자리잡으며 한국에 창조과학 운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창조 진화 포럼
▲김현준 연구원이 발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김현준 연구원은 “과학에 대한 철학적·사회적·공공적 이해가 결여된 채, (산업)기술로서 과학이라는 도구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유용성만을 강조하는 과학정책과 과학교육은 과학의 공적·대중적 상식과 신뢰의 토대를 침식할 수 있다”며 “과학지식, 과학교육, 과학공동체의 부실은 과학지식으로부터 과학자 자신의 소외를 가져올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종교/과학에 대한 아노미와 유사과학의 확산을 불러올 수 있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창조과학은 칼뱅주의-복음주의 지성운동과 그 일환인 기독교세계관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됐는데, 이는 반지성주의와는 다소간 결을 달리한다”며 “시작은 반지성주의가 아니었지만, 유통과 확산에 있어서는 지역교회/ 비전문가/ 평신도 대중의 반지성주의를 필요로 한다. 그렇게 종교적 교의가 과학적 진리로 변환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기독교세계관은 과학지식에 대한 상대화 전략을 사용했다. 진화과학을 비롯한 과학지식이 상대화될 수 있는 까닭은 모든 지식이 종교성을 갖고, 과학의 본질도 신앙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라며 “이를 지지하는 개신교 지식인들은 과학지식 역시 신앙 교리와 마찬가지로 믿음의 선택과 결단의 문제로 환원했다. 즉 창조과학은 기독교세계관이라는 방법론적 원리-반자연주의-에 입각한 ‘기독교적 과학’이 됐다”고 했다.

또 “창조과학(및 지적설계론)을 교육·전파하는 단체·기관들의 존재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며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 창조과학회 지부가 있는 한동대, 카이스트, 명지대 등 대학 및 동아리, 사랑의교회, 소망교회, 남서울은혜교회, 온누리교회 등 복음주의 대형교회들 및 지역교회들, CCC 등 선교단체, 두란노, 생명의말씀사, IVP 등 출판사, CGN TV 등 개신교 언론, 창조과학회는 답사 또는 여행 프로그램, 전시회 개최, 박물관 건립 등을 통해 대중적 저변을 확장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진화론, 과학적 무신론은 공산주의가 얼굴을 바꾼 것뿐이다. 진화론에 대한 반대는 사실상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이며, 창조과학은 반공주의 논리의 확장인 셈”이라며 “기독교인으로서 반공주의자이자 자유민주주의자라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창조론뿐이다. 이러한 공포에 기반한 창조과학 운동은 대중의 공포에 영합함으로써 세력을 확장하고 결과적으로 사회의 퇴행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랜드캐년 창조과학 탐사여행
▲이날 포럼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본, 그랜드캐니언 창조과학 탐사여행 모습. ⓒ창조과학회

지적설계론에 대해선 “창조론자들이 지적설계론의 논변과 학문적·사회적 전략을 적극 전유·활용하고 있고, 이것이 창조과학의 논지 강화와 확산에 기여했다”며 “지적설계론은 유신론-무신론 프레임을 설계자-자연주의 철학으로 바꿨다. 이에 고무된 창조론자들이나 기독교인 지적설계론자들은 자연주의에 대한 비판을 무신론에 대한 싸움이자 기독교에 대한 변증으로 인식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창조과학은 과학활동 자체보다는 성서무오설과 근본주의 신앙을 강화하는 효과를 갖는다. 과학의 한계와 창조세계(질서의 정교함)에 대한 경탄은 과학적 논리를 초월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창조과학을 수용하고 실천하는 동기로서 작용한다”며 “창조과학자 자신들은 우주자연에 대한 낭만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로 재현되는 반면, 진화론자나 세속 과학자들은 무미건조한 사람들로 재현된다”고 했다.

그는 “진화론자나 세속적 과학자들은 진화론으로 오염됐고, 오늘날 진화론에 오염된 학문과 갖가지 인본주의 사상이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불행한 인생을 살게 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창조과학자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 서사는 창조과학을 알기 전엔 과학을 맹신하고 교만했으며, 이성적·논리적이고 무미건조한 사람이었으나, 신앙을 갖고 창조과학을 알게 되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는 자기고백”이라고도 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앞서 신익상 교수(성공회대)는 ‘한국 개신교인의 근본주의 신앙관에 관한 인식 조사’ 발표도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