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훈
▲백성훈 목사.
시편 46편은 우리가 의지할 분이 하나님 밖에 없다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를 찬양하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온’이라는 단어를 묵상하게 합니다.

우리 인생에는 늘 사단의 공격과 유혹이 있기에, 그 악함에서 벗어날 길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우리의 피난처인 곳이 바로 하나님이 임하시는 곳, 바로 시온입니다. 그래서 시온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아주 크고 중요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조금만 힘이 있어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려 합니다. 아주 조금만 일이 잘 되어도, 그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느라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습니다.

필자는 목회자로 살면서, 그런 성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던 분이 어느날 일이 좀 잘 풀리고 돈도 생기니까, 이제는 좀 편하게 살아야겠다고 놀러다니기 바쁩니다. 점점 예배는 오지 않고 목사님 말씀도 귀찮아 합니다.

그런 사람 참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다 언제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는가 하면, 다시 힘이 없어졌을 때, 다시 가난해졌을 때입니다. 조금만 힘이 생겨도 교만하던 사람들이,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또 금방 겸손해집니다. 마치 탕자의 비유를 실제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일들을 경험했다면 다음에는 안 그래야 하는데, 여지없이 또 반복한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은 참 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해도, 은혜는 고난을 당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도 우리에게 주옥같은 고백들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1절)”.

이 고백을 드린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고라 자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실 이 시를 노래로 부른 사람들은 그냥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에 자세히 보면 ‘1절’ 위에 작은 글씨로 ‘알라못’이라고 써 있습니다.

실제로는 어떤 특정한 곡조를 가리키지만 단어의 뜻은 ‘젊은 여자들’ 이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가장 힘이 없었던 부류가 바로 여자들인데, 그 여자들이 흔하게 불렀던 노래입니다. 성경을 보면, 가장 힘들고 낙심했을 때 이 말씀이 역사한 경우가 있습니다.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루터는 당시 너무 힘이 들고 낙심이 되어 몇일동안 집에 누워 있었는데, 하루는 아내가 상복을 입고 방에 들어왔습니다. 루터가 누가 죽었는지 물었는데, 아내가 하나님이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루터는 ‘무슨 말이냐? 그럴 리 없다’고 했지만, 아내는 ‘당신이 낙심해서 누워있는 것을 보니 하나님이 죽은게 맞다’고 했습니다.

이 말에 큰 감동을 받은 루터는 책상에 앉아 말씀을 묵상하다, 시편 46편에 큰 감동을 받고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네’ 라는 찬양을 만들고 더욱 강한 어조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필자는 루터를 생각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할수 있지만, 은혜는 고난을 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든지 은혜를 구할 때면, 은혜는 여전히 풍성하게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힘이 납니다.

다시 내용을 잘 살펴보면, 시인의 상황이 풍요롭거나 안정되어 보이지 않습니다. ‘피난처’나 ‘환난’ 같은 단어들을 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정말 힘없는 사람들이 환난 가운데 고백했던 노래입니다.

이런 상황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위로가 됩니다. 지금 우리도 풍요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살면서 환난과 피곤과 문제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백처럼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환난 중에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환난 중에 큰 도움을 만납니다. 그들의 기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일이 잘 되어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못 되어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가지고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신다? 바로 고난 당할 때 도우시는 은혜!

시인의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고백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2-3절)”.

생각하면 할수록 감동이 되는 것은, 성경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모두 환난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시편은 다윗이 가장 많이 썼는데, 당시 다윗의 상황 자체가 도망다니고 있었던 때가 가장 많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환난 당할 때 낙심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그때 찬양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 신음에서 구원하여 주셔서, 환난이 감사의 제사 되도록 인도하십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환난 중에 큰 도움을 만난다고 했는데, 그러면 환난 중이 아닐 때는 도움을 못 만나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5절)”.

여기서 ‘그 성중에 계시매’라고 했는데, 이 말에 우리는 ‘아멘’이 터져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과 늘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원칙상 우리는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죄성과 약함은 잠시 흔들리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기도할 때, 하나님이 위로하십니다. 그 기도할 때를 ‘새벽’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라고 말합니다.

새벽은 이른 아침이라는 문자적 의미가 아니라, 하루를 시작하면서 가장 처음 시간, 인생에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 이제 한 걸음 땔수 있는 희망의 시간을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가 바로 새벽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새벽, 곧 고난 당할 때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새벽을 깨워 기도하러 왔지만, 새벽 시간이 어떤 특별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시간을 내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환난 중에 기도하는 자들을 향해 ‘새벽을 깨웠구나’ 하시는 겁니다.

은혜는 성공과 승리의 결과적 개념이 아닌, 임재와 동행의 존재적 의미입니다!

시인은 새벽을 깨우는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도 말합니다. 기도의 내용을 말하기보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어떤 것을 묵상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8-9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던 그 기나긴 여정을 말하면서, 지금 우리의 문제들도 동일하게 인도하심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땅들, 즉 상황들을 다스리는 분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전쟁들조차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이기고 지는 문제들이 모두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수없이 성경을 통해 증거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는 시인의 문자적 표현처럼 우리를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고, 실패에서 성공으로 이끌어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외적 표현 때문에, 은혜를 결과적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승리와 성공은 은혜의 결과가 맞지만, 시인의 주장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식으로 일하심을 신뢰함과 동시에, 그런 하나님이 나와 지금 함께 하고 있다는 굳건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있기에 승리와 성공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은혜는 우리 마음을 먼저 만지고 회복시킵니다.

주변 환경을 만지기 전에, 우리 영혼이 먼저 믿음을 가지고 일어나게 합니다. 그래서 시인처럼 우리도 아직 승리하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승리를 선포하게 됩니다. 성경은 선포자의 그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의 효과는 내 영혼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누리게 됩니다!

필자도 인생을 돌아보니 교회에서 받은 상처도 많았고, 목회자에게 받은 상처도 많았고, 교인들에게 받은 상처도 많았습니다. 아마 은혜가 저를 붙들지 않았다면, 벌써 울며 뛰쳐나갔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상처 속에 살았는데 어느 순간 회복된 나의 영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회복되었구나” 하면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돌아보니까 내 주변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크게 변한 건 없었습니다. 저를 힘들게 한 사람도, 상처를 준 사람도 그렇게 변한 것 같지 않습니다. 여전히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바로 제가 변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 안에 힘들 때마다 저를 붙들어주는 은혜가 있기 때문이고, 저는 그 은혜를 그만큼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의 위로
▲시편의 위로 백성훈 | CLC | 280쪽 | 13,000원
은혜의 효과는 내가 가장 먼저, 또 가장 많이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은혜를 사모합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방식대로 일하심을 신뢰하십시오.

스스로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다리고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렇게 고백하는 시인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곧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10절)”.

백성훈 목사(김포 이름없는교회)
<팀사역의 원리>, <시편의 위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