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갈대
▲갈대밭에 선 소강석 목사.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져선 안 돼요. 다시 꽃으로 만난 인생을 살아야죠.“

지난 화요일 늦은 밤에 교회 뒷산을 혼자 산행을 하였습니다. 진짜 오랜만에 하는 저녁 산행이었습니다. 나 홀로 저녁 산행은 봄철 이후 처음으로 한 것 같습니다.

그때는 봄철이라 저녁에도 진달래가 보이고 철쭉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겨울 저녁에 홀로 산행을 하면서 보니까, 꽃은커녕 풀잎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낙엽이 가랑잎이 된지 오래 되었고, 그 가랑잎도 밟혀서 짓이겨져 있었습니다. 모든 산들이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멀리 흐르는 강물들도 귀를 막고 있었겠지요. 달도 숨을 죽이고 별 몇 개 떠서 하늘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문득 지난 늦가을 여의도 한강변에 심겨진 갈대와 억새숲 사이를 걷던 생각이 났습니다. 바람이 스쳐가는 갈대밭 사이로 서 있었는데, 그때 인생은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는가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다시 꽃으로 만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혼자 산행을 했습니다. 모든 산들이 숨을 죽이자 산새 한 마리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저 혼자 걸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수많은 사람이 찾아왔지만, 또 수많은 사람이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몰려왔을 때는 꽃으로 만난 것 같지만, 어떤 이유든지 간에 우리 교회를 떠날 때는 갈대로 헤어졌던 것입니다.

그 분들을 생각하며 제가 이런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J 아름다운 여름날이 멀리 사라졌다 해도 / J 나의 사랑은 아직도 변함 없는데/ J 난 너를 못 잊어 J 난 너를 사랑해 / J 우리가 걸었던 J 추억의 그 길을 / 난 이 밤도 쓸쓸히 쓸쓸히 걷고 있네.”

몇 달 있으면 적막한 겨울산도 봄을 맞이할 것이고, 그때 다시 봄꽃들이 피어날 것입니다. 봄철에는 혼자 저녁 산행을 해도 야화(夜花)를 만날 것이며 달도 환하고 별들도 총총하겠지요.

겨울밤에 꽃 없는 산을 가니까 꽃이 그리운 것처럼, 저에게도 떠난 성도들이 있기에 그들이 더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물론 남아 있는 더 많은 성도들이 고맙기 그지 없고, 그들이 얼마나 저에게 소중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송구영신예배 때 본당에도 들어오지 못하고 비전홀과 교육관에서 예배드린 그 분들에게 너무 죄송하고 또 그 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꼈습니다.

봄이 오면 갈대는 사라지고 다시 꽃으로 만나는 것처럼, 저의 목회 현장도 갈대로 헤어졌지만 꽃으로 다시 만나는 날이 있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이따금씩 지방에 가도 이렇게 인사하는 분들을 봅니다. “아, 저 옛날에 새에덴교회 다녔습니다. 저는 대학강사였는데 지방대로 임용이 되어서 왔습니다.” 심지어는 해외에 가서 집회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저 옛날에 새에덴교회 다녔었는데 이민을 왔네요.”

이 역시 순간순간 꽃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저 영원한 천국에서 다시 꽃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도 갈대로 헤어지지 말고 순간순간 꽃으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