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한 방울 생수 구원 물줄기 청량
▲ⓒ픽사베이
본문: 요한복음 4장 5-6절

주님께서 북쪽의 갈릴리로 가시던 중, 사마리아를 통과하게 되셨습니다. 사마리아는 종교적 문제로 왕래가 되지 않던 지역입니다. 마치 육지의 섬처럼 되어버린 사마리아에 당도하신 주님은 수가라 하는 마을에 당도하셨습니다.

이 수가 마을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수가 마을 속 야곱의 우물에 초점을 모으려 합니다. 본문을 배경으로 ‘야곱의 우물’이라는 제목으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1. 생명의 근본을 생각하라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5-6절)”.

야곱의 우물은 족장 야곱이 우물을 파서 대대로 생명을 이어가던 곳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생활하는 것이 삶의 중심을 차지했습니다. 우물은 그만큼 생명을 지탱하는 근본이었습니다.

야곱의 우물은 30m 깊이로, 오늘날에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다만 지금은 그 우물 위에 그리스정교회가 크게 들어섰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역시 1950-1960년대만 해도 우물을 중심으로 생활했습니다. 제가 여덟 살 되던 해, 어머니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밥을 하셨습니다.

‘아, 가을인가’라는 가곡 중 ‘물동에 떨어진 버들잎 보고/ 물 긷는 아가씨 고개 숙이지’라는 가사를 보면, 이런 모습이 낭만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전설처럼 되어버렸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우물과 관련되는 추억이나 속담이 많습니다. ‘함께 우물을 파고 혼자 먹는다’는 속담은, 여럿이서 노력을 함께해놓고 이득은 혼자 챙긴다는 뜻입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급한 사람이 서둘러 일한다는 뜻이고,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은 한 가지 일에 충실해야 성공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야곱의 우물을 생각하면서, 물의 중요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물은 생명의 근본이 된다는 교훈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 영혼의 우물을 생각하라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5-6절)”.

우리 몸 70%에는 물이 흐른다고 합니다. 몸 속을 순환하는 피는 거의 대부분 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지요. 물은 우리의 몸을 돌아다니며 세포에 산소와 영양분을 주고 찌꺼기를 받아 나릅니다. 이 찌꺼기를 밖으로 내보낼 때도 물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소변’이요 ‘땀’입니다.

육체에 물이 중요한 것처럼, 우리의 마음과 정신, 그리고 영혼에도 물이 필요합니다. 영혼이 힘이 들고 답답할 때, 그것을 뚫어주는 시원한 영혼의 물이 필요합니다.

이런 상태를 가리켜 우리는 ‘영혼이 목마른 상태’라고 표현하고, 이런 상태에서는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물이 필요합니다. 이른바 ‘시원한 해갈의 생수’입니다.

멕시코 속담에 ‘마실 수 없는 물은 그냥 흐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영혼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는 신경을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독일 소설가 헤르만 헤세는 이런 ‘정신적인 물’과 관련해 《싯다르타》에서 “물은 생명의 소리, 존재하는 것의 소리, 영원히 생성하는 것의 소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신에는 반드시 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영혼을 목마르지 않게 하는 영혼의 우물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의 영혼에 생명력을 공급해 주는 진리의 말씀이 그대로 영혼을 소성하게 만드는 생명수이기 때문입니다.

3. 구원의 우물을 생각하라

5-6절을 보면, 황막한 사막의 땅으로 이루어진 팔레스타인에서, 우물은 거의 생명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종족이 집단으로 이주하는 명분도, 종족 간 분쟁의 도화선도 흔히 우물 때문에 촉발되곤 했습니다. 그들은 거처를 정하면 어김없이 우물을 파고, 떠날 때는 흙으로 우물을 메우고 떠나곤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남을 당했던 하갈이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했습니다. 그때 하갈은 가죽부대의 물이 다해서 떨기나무 아래 극심한 고통을 겪습니다. 물이 없어 어린 아들 이스마엘이 죽어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하갈을 불쌍하게 보시고, 하갈의 눈을 밝히시어 우물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갈은 곧바로 우물에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길어다 마시게 하여 아들을 살렸습니다. 이런 우물은 말 그대로 구원의 우물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목마른 영혼이 해갈되는 구원의 우물입니다. 최근 교회는 세상적으로 쇄신의 대상이 되는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생명을 구원하는 우물입니다. 지금도 교회는 그 옛날 하갈처럼 목말라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억울하고 원통한 사람들에게 여전히 구원의 우물이 되고 있습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정리

오늘날 교회는 가지에 사랑의 말을 새겨놓고 있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찾아오던 보리수 그늘 아래 성문 앞, 그 우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래도 가는 인생 길에 ‘야곱의 우물’을 생각할 때마다, ‘구원의 우물’인 교회를 떠올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로 생명의 근본을 생각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영혼의 목마름을 해갈하는 영혼의 우물을 생각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구원의 우물인 교회를 생각하게 하옵소서! 그 어떤 경우에도 구원의 우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