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권 삭제
▲아동단체들과 정의당이 아이들과 함께 민법 내 명시된 친권자의 징계권에 대한 삭제를 촉구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최근 정의당과 함께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관대하게 여겨온 ‘체벌’을 전면 금지해야한다”고 주장하며 민법 915조의 ‘친권자의 자녀 징계권’ 삭제를 촉구했다.

‘체벌’이란 일반적으로 ‘학교나 가정에서 아동에게 가하는, 육체적 고통을 수반한 징계’를 의미한다. 때문에 이들은 ‘체벌 금지’를 강조하며 지난해 9월부터 ‘Change 915: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캠페인을 펼쳐왔고, 여기에 시민 3만 2천 여명이 캠페인을 지지하는 서명에 참여했으며 전국아동보호전문기관협회를 비롯해 아동·부모·법률 단체 109개가 뜻을 함께했다.

세계 각국은 점차 ‘체벌’을 금지하는 추세다. 이들에 따르면 가정을 비롯해 모든 환경에서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국가는 현재 58개다. OECD에서는 22개국이 모든 환경에서 아동에 대한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특히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2019년 학부모와 초중고생 자녀 2,187가정을 연구 조사한 ‘아동권리현주소’에 따르면, 체벌당한 경험이 있는 아동 15.3%가 ‘평소에 죽고 싶은 생각을 한다’고, 28.7%가 ‘슬프고 우울하다’고 응답했다. 부모의 체벌에 대한 이유를 납득하는 자녀는 37%에 불과해, 부당한 체벌에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자료를 통해 단체들은 “훈육 또는 징계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자녀에 대한 부모의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개인적으로 기자는 이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단체가 민법 915조 삭제를 촉구했다. 당연히 민법 915조에 ‘체벌’에 대한 내용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 민법 제915조(징계권)은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징계(懲戒)’라 함은 ‘허물이나 잘못을 뉘우치도록 나무라며 경계함’과 ‘부정이나 부당한 행위에 대하여 제재를 가함’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어디에도 ‘체벌’을 해도 된다고 명시된 부분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 ‘징계권을 삭제하라’는 말은 아이의 입장에서 ‘허물이나 잘못을 해도 부모가 뉘우치도록 나무라거나 경계해서는 안된다’고, 자칫 ‘방종’으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징계’의 범위에 ‘체벌’이 들어가는지 여부가 재판부의 판단에 따르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학대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결국 이러한 사태의 원인은 ‘징계’의 범위에 대해 설명하지 않은 ‘법의 모호성’문제에 있다. 실제로 재판부는 ‘훈육’을 이유로 감형을 하기도 한다. 2016년, 세 살, 다섯 살 딸을 상습적으로 폭행해 혼수상태로 이르게 한 20대 모친은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훈육 의도’로 1년이 감형됐다.

또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아동학대 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실정이다. 2014년 1만 27명으로 시작해 매년 증가한 아동학대 건수는 2018년 2만 4604명을 기록했다. 이 중 가해자의 76.9%가 부모이다. 자녀 양육 시 ‘체벌’에 대한 부모의 인식을 바꿀 필요성도 보인다. ‘아동학대’를 막음과 동시에 ‘방종’으로 흐르지 않도록 주의하여 구체적인 법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