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 나니라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욥 1:1-3)”.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욥은 동방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요 거부로 등장합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말했던 친구 빌닷의 말은 전혀 논리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친구인 욥이 받는 고난이 어디서 온지도 모르고 잘못된 진단을 합니다. 그래서 욥은 친구로부터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수모를 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욥이 현재 당하고 있는 고통과 동떨어진 말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도들이나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이 가게나 사무실을 오픈할 때, 주로 이런 내용의 글귀를 번영의 뜻으로 축하 선물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욥의 형편과 전혀 무관했던 글귀임을 알고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경자년 ‘쥐띠의 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부터는 한국교회 성도들을 비롯해 온 국민들이 가정으로부터 시작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가정은 생명과 사람의 안식처요 요람이며,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터전이요 개인과 사회의 인간화를 이루는 첫 번째 공간이기도 합니다.

욥은 자녀들이 각각 자기 집에서 생일잔치를 하고 나면 자녀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인원 수대로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렸습니다.

혹시 자녀들이 죄를 범해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았나 싶어서 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만큼 욥은 자녀들과 가정에 대해 충실했던 인물입니다.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라고 할 정도의 인물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욥 1:5).

때로 우리 모두는 가정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가족의 존재를 단순하고 편리한 관계로만 생각하여,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거나 단정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순해 보이지만, 가족은 사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타래와 같습니다. 그리고 세상 누구보다도 서로간의 노력과 희생이 요구되는 존재들입니다. 가족 간에 아무리 가까워도, 자신의 감정을 쉽게 노출하거나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제 가족이라도 조건 없는 희생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가족 간에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관계를 추구하고 기대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렇지 못합니다. 가족에게 심한 상처를 주면서도, 무엇 때문에 상처를 주는지조차 모릅니다. 주님께서도 이러한 제자들을 보며 심히 안타까워하고 계십니다.

가정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가장 처음 접하는 사회입니다. 가족 구성원들 역시 처음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가정에서 맨 처음 시작됩니다. 가정에서 배우며 사회적인 관계를 시작하게 되는 아름다운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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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의 기본 교육이 원만하지 않으면, 사회에서의 인간관계와 학교에서의 교우관계도 그리 녹록치 않을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들 간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생각하고 삼가는 가족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가족이란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쉽게 생각하고 편한 관계입니다. 그러나 가족 간에서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행동이 있습니다. 삼갈 것은 삼가야 합니다.

둘째로 최선을 다해 가족을 사랑해야 하지만, 완전할 수 없음도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어려운 고난이 있더라도 절망하거나 쉽게 포기해서도 안 될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심을 확실히 믿고 신뢰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가정 예배가 중요합니다.

가족 모두가 함께 예배를 통해 하나님 안에 깊이 뿌리내리면, 어떤 시련과 고통이 닥쳐와도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깊고 깊은 믿음이 내 안에 항상 저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온 가족이 하나님을 마음 안에 모시고 함께 기도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새 시대의 청지기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 각자 맡은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종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새해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해 2019년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못했거나, 나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었거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충실한 삶을 살지 못했거나, 헛된 것들을 구하느라 온갖 거짓과 술수를 부렸던 모든 나의 죄악들을 낱낱이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은 작은 사회와 같습니다.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은 작은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요 큰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며, 오직 허황된 망상과 꿈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입니다.

하루 빨리 방향을 전환하고, 참된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 안에 머무는 사람으로서 새해를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가정에서의 예배는 신앙생활에서 참으로 귀한 참고서가 될 것입니다. 또 인생 여정에서 주춧돌과 망망한 바다에 등대가 될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기도하며 찬송하는 작은 사회, 가정에서의 참 교육은 부패되지 않고 늘 살아서 빤짝거리며 미소 짓는 밤하늘의 별빛이 될 것입니다.

계속되는 지난 잘못들을 뉘우치는 반성 없이, 죄는 갈수록 그 부피와 무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속도로 낭떠러지를 향해 굴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회개의 마음은 열려지지 않고, 계속해서 인간의 욕망에 사로잡혀 망가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참으로 애가 탑니다.

작은 천국이라고 말은 하면서, 작은 사회인 가정에서 참된 교육을 받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신앙으로, 교회와 사회를 향한 오해와 이기심과 탐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망가뜨리는 크나큰 오류를 범하는 현실들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난해 묵은 죄의 찌꺼기들을 모두 토해내는 뼈아픈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생활로 돌아가야 합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음부의 세계에서 근심, 걱정, 시기, 질투 없는 아름다운 낙원으로 옮겨가서, 찬송하며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씀처럼, 새해가 되어 세운 작은 소망들이 비록 보잘 것 없어 보이더라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크게 기뻐하실 것임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모든 신앙인들은 이전 것은 잊고, 새로운 부대에 나의 영혼을 싣고 이 세상에서의 삶을, 에덴동산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작은 천국 아닐까요?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