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청빈
강요된 청빈

정재영 | 이레서원 | 160쪽 | 8,000원

필자의 사례

목사 안수를 받고 난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담임목사가 부재중인, 어느 지역을 대표하는 교회로 부임했다. 미래가 보장되고 조건도 좋고, 그 지역에서 인정받는 어떤 교회에서 오라는 청빙도 있었지만, 아픈 교회, 멍든 교회에서 먼저 오라고 했다면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불타오르는 사명감에 그렇게 했었다.

그러나 필자의 그 사명감은 한 순간에 우스운 것이 되었고 사명이 없는 사람처럼 순간 비춰졌다.

어렵게 부임한 사역지에서의 첫 사례가 강도사 때보다 못했기에, 이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으로 당시 행정목사님을 통해 수석장로님께 건의를 드렸다. 물론 교회 재정이 어렵다면 말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나의 건의는 받아들여졌고, 당회를 통해 교역자의 사례는 교원 연봉에 따라 상식적인 수준으로 모두에게 적용되었다.

이후 그 교회에서 소임을 다하고 사역지를 옮기며 유명한 교회에 부임하게 되었는데, 거의 95%의 교회가 그렇듯 구체적인 연봉을 듣지 못했고 한 달이 지나 행정목사님이 부르더니 연봉 서류에 사인하라는 것이었다.

이전 교회보다 연봉이 천만 원 넘게 절감된 서류를 보며 필자는 무척 당황스러웠고, 헤어나기 힘든 실망감이 들었다. 목회자는 당연히 재정에서부터 훈련을 받아야 하고, 부족한 것은 기도하며 채워가는 은혜를 경험해야 한다는 논리도 이해가 안 되었다.

결국 여러 가지로 보아 목회자를 낮게 보고 훈련시킨다는 명분만 강하지, 동역자로 소중히 여겨주며 보살펴 준다는 것은 약하다는 판단 하에 눈물을 머금고 나오게 되었다.

현실

가슴 아픈 사례를 적어보았지만, 필자가 적은 내용은 ‘새발의 피’일 뿐, 이보다 더 가혹할 정도로 대우받은 목회자들이 많이 있다. 생존을 걱정하고 이중직을 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그런 이들에 비해 필자는 부족한 것이 많은 사역자임에도 이 정도로 살아온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교계를 보면 전반적으로 기본 생계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다. 이 책은 그 현실을 여러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주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가 제기하는 목회자 빈곤의 원인은 목회자 수급의 불균형과 한국 개신교의 쇠퇴, 개교회주의와 ‘강요된 청빈’으로 발생한 비현실적인 사례비 등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공교회성 회복과 목회자의 수급 조절과 수준 제고, 그리고 목회자 이중직의 현실화와 공적 제도 활용과 교단차원의 노후대책 등을 든다.

책을 보면 우리가 익히 들었던 원론적인 내용들이라,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객관적 자료를 통해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고민해 보며,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목회자 빈곤’ 문제는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다. 당장 해결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어쩌면 근본적인 목회자에 대한 교회의 인식과 성도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이 사안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빈곤의 문제와 미자립교회에 대한 대책은 교단적 차원과 구조적 방법으로 해결할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본질적으로 목회자를 바라보는 성도의 생각이 개혁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고용인인가?

대부분 교회는 목회자를 돈을 주고 고용한 사람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대형교회이든 작은교회이든 모두, 목회자는 무조건 희생하고 손해보고 더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적 지도자이니 그에 따른 모범을 모든 면에서 보여야한다고 여긴다.

안 그래도 새벽부터 나와서 쪽잠 자고 다시 출근해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사람에게 충분한 보상과 부족한 것을 채워주려 하기보다, 더 일하고 더 뛰어야 인정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목회자에게 ‘영적 지도자’라는 그럴싸한 껍데기를 주고 호칭은 목사님이라고 하지만, 실제 운영되는 원리는 고용인에 불과하다. 목사는 기본적으로 행정적인 일만 하고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교회는 그런 일을 위해 목사를 부른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충분한 생명의 양식을 제공해 주고 바른 목양을 부탁하기 위해 청빙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들에게 돈을 준다는 이유로 가장 중요한 일을 망각하고, 과도한 헌신과 수고와 결과를 요구한다.

영화 성 프란치스코 루터
▲재산을 모두 내어놓고 성직자의 길로 나아갔던 ‘청빈’의 대명사 프란치스코. ⓒ크리스천투데이 DB
교회가 목회자에게 말도 안 되는 사례비를 주면서 ‘목회자는 좀 힘들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나쁜 양들’의 생각이다. 또 목회자를 일하는 사람으로 여기며 잠이 부족할 정도로 일하고 운전하고 여기저기 다 불려다니고 모든 면에 모범이 되어야한다고 부담을 주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 같다.

목회자는 목양을 위해 존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전하고 가르치며 기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잡다한 일을 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에 대한 이런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처우도 해결돼야 한다. 형편없는 사례도 문제이지만, 목회자를 ‘언제든지 부려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문제다.

책을 보면 노는 것이라 생각하고,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가거나 카페에 앉아 차 한 잔 마시거나 외출하는 것을 직무유기라 정죄하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다.

교회에서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하고 허점이라도 보이면 바로 도마 위에 올리는 위선된 태도부터 고쳐야 한다. 목회자에 대한 이러한 의식이 바뀌지 않고 마땅한 존경이 없는 한, 목회자의 생활고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빈곤해야 하나?

목회자가 교회에 자신의 재정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사명감 없는 사람이 되고 소명감마저 의심당한다. 목회자는 무조건 어렵게 살아야 하고, 힘들고 빈곤하게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자기들도 하지 못하는 것을 교역자들에게 접목시키고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태도는 이기적인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목회자라고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렇다고 부자처럼 살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기업 같은 대형교회 목회자나 귀족처럼 살지, 대부분의 목회자는 가난하게 살고 있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와의 사례 차이도 문제다. 기업이나 회사라면 이윤을 내기 위한 목적과 회사의 지분과 관련되어 있기에, 회장에게 많은 소득이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윤 공동체가 아니라 생명 공동체인 교회에서, 사례와 복지 등과 관련하여 박탈감이 들 수 있을 정도의 차이는 교회 공동체로서 부적절한 모습 같다.

(물론 지위와 책임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과 예우들은 고려해야 한다.) 더구나 남성과 여성의 사례 또한 많은 격차가 나는 것도 또한 합리적이지 못한 대우이다.

목회자는 누구인가? 가난한 사람인가? 하나님을 향해 심령이 가난해야 하는 사람이지, 물질적으로만 가난해야 하는 사람은 아니다.

교회는 물질을 가지고 목회자를 훈련시키고, 적당하게 살도록 조율해 주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목회자가 충분히 본질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생계를 책임져 주어야 하는 것이다. 상근 근무자라고 모든 잡무를 다해야 한다며 ‘노동자’ 취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목회자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것은 좋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차원이어야지, 그 기준이 ‘가난한 삶’인 것은 아니다.

결론: 한국교회의 수준이다

목회자는 존경받아야 하고 사랑받아야 한다. 성도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 성장하고 발전하며 깊어지는 존재가 목회자다.

그러나 목사라 부르고 영적 지도자라고 말은 하지만, 과중한 노동과 업무를 요구하고 가난하게 살아야 더 존중한다고 여기는 것은 목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필자는 목회자의 경제적 현실과 사례, 처우와 관련된 문제를 보면서, 한국교회의 민낯이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해본다. 물론 정말 목회자를 사랑하고 존중해주며 가고 싶은 교회도 있지만, 그런 교회는 소수이다.

성도들 대부분이 가난하고 어렵게 살기 때문에 목회자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것은 교회 사정에 따라 목회자가 자발적으로 교회와 함께 낮아지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지, 교회가 그렇게 하라고 강요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오늘날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가정을 여유 있게 꾸려나갈 형편에 있지 못하다. 목회자도 가정이 있고 부모가 있고 친구가 있으며, 자녀가 있고 인간으로서 도리를 해야 될 여러 영역이 있다. 또한 사회적 위치가 있으니 품위를 유지하고 지켜야 될 순간들도 있다.

그럼에도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기적이다. 목회자의 존경은 청빈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양들을 사랑하는 목양의 마음과, 말씀과 기도와 영적 권위에 있는 것이지, 그런 것으로 판단할 것은 아니다.

물론 과한 대우를 받는 일부의 목회자들을 향해서는 비판도 해야 한다. 아무튼 그런 소수를 제외한 목회자의 현실이 열악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가난한 목회자’는 한국교회의 현주소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통해 함께 고민해 보길 권해본다. 아울러 목회자가 무엇을 위한 지도자인지, 우리는 점검하고 답을 해야 할 것이다.

방영민
서현교회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