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날
예배의 날

라이언 M. 맥그로우 | 조계광 역 | 개혁된실천사 | 276쪽 | 14,000원

‘주일성수’라는 말을 아십니까? “주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일”을 가리키는 기독교 용어입니다.

보통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주신 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에 따라,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교회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이자 특권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주일성수’입니다(출 20:8).

일주일에 하루를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진리의 성령님을 깊이 묵상하고 그분으로 인해 온전히 기뻐하자는 것이 왜 문제가 되겠습니까?

하지만 캘리포니아 서니베일 제일 정통 장로교회 목사이자 그린빌 장로교신학교에서 조직신학 교수로 일하고 있는 저자 라이언 M. 맥그로우 목사가 <예배의 날>에서 한 이 말들이 어떻게 들리는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안식일은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다. 그 날은 일상적인 삶의 활동이 중단 없이 진행되는 날이 아니다. 일꾼들은 노동을 쉬고, 사업가는 업무 출장을 삼가고, 학생들은 공부를 중단하고, 가정주부는 집안일을 미뤄야 한다(80쪽).”

“우리를 즐겁게 하는 일을 일체 중단하는 것이 이사야가 강조한 안식일 준수의 원리다. … 안식일의 참된 즐거움은 휴식과 오락이 아닌 하나님과의 교제와 예배다(92-93쪽).”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주일에 잠을 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잠은 은혜의 수단이 아니다. 만일 주일에 낮잠을 자야만 은혜의 수단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166쪽).”

어쩌면 위에 인용한 문구만을 가지고 맥그로우 목사의 책을 ‘율법주의자’의 책으로 속단하려는 유혹을 받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책 <예배의 날>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받아들이기에 매우 높은 기준과 원칙을 제시합니다.

과연 당신은 노동과 출장, 공부와 집안일을 쉴 뿐 아니라, 당신을 지나치게 즐겁게 하는 일을 일체 중단하고, 잠까지 멀리하면서 주님을 기뻐해야 한다는 말에 온전히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저자는 우리가 안식일에 관한 성경의 기준과 원칙을 이렇게 어려워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영적으로 허약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세상의 것을 추구하려는 속된 마음이 근본적인 원인일 것이다. 안식일에 세속적인 일과 오락에 관한 불필요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중단하기가 어렵다면 이는 곧 교회가 세상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지나치게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102쪽).”

결국 맥그로우 목사는 오늘날 교회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지 못하는 이유에 관하여,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이런 면에서 율법주의자가 할 만한 이야기들도 ‘사랑’이라는 코드로 읽으면 이해가 됩니다.

여기 한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너무나 사랑하여, 매일 직장에 다니면서 아침 저녁으로 주님과 교제하는 기도의 시간을 갖습니다. 주일이 되면 모든 분주한 삶에서 쉼을 누리면서 일주일간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주님과의 시간을 풍성하게 가지려고 애씁니다.

성도와 교제하고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말하며 영원한 천국에서 날마다 경험하게 될 영적 충만을 기쁨으로 하루 동안 충분히 자기 영혼에 채웁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다시 일주일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 사람을 율법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를 너무나 사랑하여 다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살고 그래서 죽음도 오히려 유익하다고 말한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자였을까요?

결국 맥그로우 목사가 <예배의 날>에서 강조하는 안식일에 관한 계명은 계속해서 독자의 마음에 얼마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있는지 질문을 남깁니다.

‘왜 주일성수, 안식일에 관한 저자의 글이 부담스럽고 조금 과하다고 느껴지며, 심지어 율법주의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다 보면, 결국 자기 자신에 관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나는 주일에 그리스도로 온전히 만족할 수 없는가?’ 억지로 강요해서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자발적으로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그분 안에 있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를 얻기 위해 하루를 온전히 드리지 못하는가 생각하게 만듭니다.

저자는 도전하듯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천사들이 잃어버린 죄인들을 구속하신 어린 양의 사역을 찬양하는데, 어떻게 그 피로 깨끗해진 우리가 영원한 찬양과 예배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예배 외에 다른 것을 바랄 수 없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은 복음 안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경이롭고, 영광스러운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224쪽).”

저자 맥그로우 목사는 10장에 걸쳐 구약의 안식일에 관한 규정을 오늘날 교회에 적용할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특히 이 율법을 적용하는 것이 왜 율법주의가 아닌지, 어떻게 하면 율법주의가 되지 않을 수 있는지, 또 율법주의로 오해하는 경우는 무엇인지 해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온 성도가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이 매 주일 성도가 애쓰고 노력하는 주일성수, 안식의 날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설명합니다.

B. B. 워필드의 안식일 규정에 관한 글과 제이 애덤스가 “안식일은 오늘날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한 책에 대한 비평도 부록으로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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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는 일을 해서는 안 될까?. ⓒBench Accounting on Unsplash
어떤 분들에게 이 책은 너무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혹은 성경이 요구하는 것 이상을 요구하는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책으로 여겨질지 모릅니다. 특히 저자가 구체적으로 설명한 안식일의 적용 방식에 완전히 동의하지 못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예를 들면, 낮잠에 대한 것).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책이 제기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진지하게 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원한 안식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일주일에 하루, 그 날을 꿈꾸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그 이유가 위의 것을 찾아야 할 이들이 땅의 것을 찾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면, 하나님만 사랑해야 할 이들이 하나님의 원수인 세상을 사랑하려 하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이 책이 아무리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것처럼 보여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실 때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 사랑이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확인하고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계 2:4-5).

어쩌면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주일성수’를 외치며 그것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다 망가지는 것처럼 극단적으로 강조하면서도, 정작 맥그로우 목사가 강조하듯 왜 그것이 중요한지 그 중심을 다루지 않고 외형적인 모습만 강조하기 때문에 정반대의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주의자처럼 주일성수를 지키지만, 정작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 자발적인 기쁨, 영원한 안식에 대한 갈망은 빠져 있는 것이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책망을 받은, 입술로는 주의 법을 가까이 했지만, 그 마음은 주님에게서 멀었던 바리새인들처럼 말입니다.

오늘날 과감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바울과 같은 성도가 많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매일을 살아가는,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는 더 풍성히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기념하는 일에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시간을 드리는 주의 백성이 늘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주가 오셔서 그의 사랑하는 교회를 불러 모아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실 그 날, 밤낮 기쁨으로 찬양 드리고 그분으로 충만한 삶을 영원히 살게 될 그날이 점점 다가올수록, 세속에 빠지기보다는 더욱 더 그리스도에게 빠지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이 책이 그 아름다운 변화에 한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조정의 목사
유평교회 담임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