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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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일서 2장 16-17절


본문은 사도 요한이 수신인을 특정하지 않은 편지 형식으로 된 글입니다. 수신인을 특정하지 않은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순교의 제물이 된 다른 제자들과 달리, 홀로 천수를 누린 사도 요한입니다. 그는 밧모섬에 유배를 다녀온 후에도 100세 이상 장수하며, 성모 마리아가 머물던 에베소 교회를 지켰다고 합니다.

그런 사도 요한이 인생의 체험에서 농축된 감회가 깊은 교훈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배경으로 ‘한 해를 보내는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지나가는 세상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17절)”.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이 세상은 가볍게 생각하면 희극이며, 깊이 느끼면 비극이 된다고 합니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는 “이 세상이란 모든 사람이 각기 하나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대”라고 했답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어떤 배역을 맡아서 연극을 하고 있는 배우라는 것이지요.

확실히 세상은 삶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행동은 그대로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의 삶은 시간으로 이루어졌고, 이 시간이 모여 세월이 되고 있습니다.

이 세월은 원래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계절이 갈 때마다 ‘세월이 빠르게 흐른다’고 느끼게 됩니다.

한 해를 지나면서 세상을 떠나신 분들도 많습니다. 올해도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몇 분의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참으로 모를 일이 인생이구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실로 세상이란 세월과 함께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천진난만한 유년시절이 지나갑니다. 꿈 많은 소년 시절도 지나갑니다. 정열에 불타는 청년 시절도, 성취하느라 분주한 중년 시절도, 모두 지나가는 주마등 같습니다.

그리하여 어김없이 머리에 살구나무 꽃 내리 덮이는 노년 시절이 잠깐 스치게 되면, 지나가는 것이 인생임을 상기하게 됩니다.

2. 정욕은 모두 채울 수 없다

17절에 나오는 정욕(情欲)이란 육체적 욕심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정욕을 모두 채울 수 없습니다.

정욕과 관련해, 16절에서는 세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육신의 정욕이란 쾌락을 추구하는 육체의 욕심, 안목의 정욕은 보이는 대로 가지려고 하는 소유하려는 욕심, 그리고 이생의 자랑은 대단하다고 드러내는 헛된 욕심을 의미합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인간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인간이 욕망의 존재여서일까요? 성경은 이 욕망에 대해 ‘모두 채울 수 없는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실로 인생은 정욕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도중에 그냥 가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산 이은상은, “차창을 내다보니 산도 가고 나도 가더니, 내려서 다시 보니 산은 없고 나만 왔네, 다 두고 저만 가는 게 인생인가 하노라”고 표현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집념이 질길수록 허탈은 깊어진다고 합니다. 사랑도 미움도, 이별도 아픔도, 그리고 온갖 번뇌와 고민도 지나놓고 보면 모두 모래 위를 스쳐간 물결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줄일수록 그만큼 편안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언젠가는 원욕이 그칠 때가 오고, 자랑도 곧 사라지게 될 때가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3. 주님께만 소망을 두어야 한다

17절 속 ‘거한다’는 의미는 ‘살 거(居)’에서 보듯, 산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산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인생이 금방 지나가는 것을 알고, 오래 갈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우리가 어디에다 희망을 두고 사는가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 링컨 대통령(A. Lincoln)은 “나는 한 가지 절실한 소원이 있다. 그것은 세상이 조금 나아졌다는 것이 확인될 때까지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소박한 소원을 갖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링컨이 조금 나아진 세상을 확인하고 죽었는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삶이어야 매우 의미가 있고, 주님께 소망을 두는 삶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주님 때문에 고난이 연속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수없이 매를 맞기도 하고 죽을 뻔 했습니다.

그래도 사도 바울은 늘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오직 주님께만 소망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정리

가는 인생의 길에 오직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감옥에서도 평안하고, 핍박 중에도 담대할 것입니다. 환란과 역경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주님,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는 것임을 깨닫게 하소서! 우리가 의지하던 것들이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때가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그러기에 “나의 소망은 주님께 있다.”고 고백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소서! 오직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을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