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북
양철북

귄터 그라스 | 최은희 역 | 동서문화사 | 648쪽 | 10,000원

소설 <양철북(Die Blechtrommel, 1959)>은 독일 작가인 귄터 그라스(1927-2015)가 자신이 겪었던 역사적 사실과 그의 고향인 단찌히를 배경으로 하여 만든 작품이다.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는 3살 때 스스로 성장하기를 거부하며, 어린아이의 상태로 남아있게 되었다. 오스카는 항상 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기를 원한다.

<양철북>은 단치히(Danzig)를 무대로, 독일 전쟁 이전 바이마르 시대와 나치스 시대,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격동기를 거쳐 전후 시대를, 세 살 때 성장을 멈춘 난쟁이 오스카의 삶을 통해 그려낸다.

<양철북>은 그 근본 바탕이 그라스의 과거 어린 시절 단찌히 현장에서의 체험을 담고 있으며, 소설의 소재라든지 인물의 형상, 언어의 뉘앙스에서 자서전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1961년의 중편 <고양이와 쥐(Katz und Maus)>, 1963년의 장편 <개들의 시절(Hundejahre)>과 더불어 ‘단치히 3부작’이라고 불린다.

이 소설 3부작에 대해 그라스는 “어느 시대 좁은 소시민계급의 온갖 모순과 부조리, 나아가 그 시대의 초차원적 범죄까지 포함하여 한 시대 전체를 문학적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그는 “작가의 원료로 쓰이는 사실성은 분할되어선 안 되며, 그것을 전체로서 파악해 그늘진 부분도 간과하지 않는 사람만이 작가라 불릴 만하다”고 주장했다.

작가 그라스가 청소년 시절을 보낼 당시는 전쟁 중이었다. 그는 10살에 나치의 ‘청소년 국민회’ 단원이 되었다. 14살에는 ‘히틀러 청소년단’ 단원이 되었다. 1943년 그가 15살 때는 공군 보조병으로 입대하였고, 17살 때에는 탱크 방위원으로 2차 대전에도 참전했다.

나치즘 시대에 소년병으로 살아간 귄터 그라스는 전후 서독으로 건너가 미술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신진 작가 모임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정치참여 작가로도 유명했던 귄터 그라스.

그는 흘러가는 시대의 단편을 희생자나 학대받은 자들의 시점에서 과거 및 미래와 관련지어 넓고 풍부한 구성 속에 표현해서, 현대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라스는 후일 타임지와의 대담에서 “나 자신도 1945년 말까지만 해도 우리의 전쟁이 옳다고 생각했었다”고 밝히고 있다.

작가로서 그라스의 출발은 바로 이 역사적 범죄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작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작품 속에서 과거를 들추어냄으로써 역사를 ‘과거사’로 내버려두지 않고, 생생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이다. 그라스가 청소년 시절 겪은 정치와 역사의 경험은 <양철북>의 1부와 2부에 잘 반영되었다.

그라스는 “‘굳건한 작품을 하나 내놓아 독일의 전후 문학을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고상한 의도가 나를 채찍질한 적은 없었다”며 “나는 독일의 과거 극복'이라는 그 시대의 저속한 요구를 만족시킬 생각도, 또한 그럴 능력도 없었다"고도 말했다.

1927년 태어나 갈색 제복 아래 소년 시절을 짓밟힌 그라스의 처지에서, 과거 극복이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양철북>은 1899년에서 1954년까지 반세기의 독일 역사를 담고 있지만, 그것은 물론 역사적 사건들을 순서에 따라 나열하는 연대기적 기록물도 아니고, 역사를 이끌어간 영웅, 또는 주역들의 이야기도 아니다.

소설에서는 단찌히 교외의 한 소시민 가족의 일상이, 그리고 난장이 주인공 오스카의 일대기가 이야기되고 있다. 이 소설에서 반 세기 동안의 역사적 사건과 변화가 바로 이들 가족의 일상 속에 투사되고 있다.

형식상 <양철북>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이것이 다시 46개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거의 같은 분량의 크기로 상응하는 소제목을 가지고, 마치 하나의 단편처럼 개별적인 가치를 지닌다.

양철북
▲영화 <양철북> 중 한 장면.
제1부는 주인공 어머니의 출생에서부터 시작하여 오스카의 탄생 및 그의 아동기를 서술하면서, 동시에 나치의 등장 과정과 정치적 상황의 파국을 보여주고 있다.

제2부에서는 단치히의 폴란드 우체국 점령을 발단으로 하는 전쟁 시절부터, 오스카가 마리아, 쿠르트와 함께 단치히를 탈주하기까지의 과정이 묘사되고 있는데. 시대사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몰락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전후 세대와 뒤셀도르프에서의 오스카의 운명과 전후 사회를 다루는 제3부는 오스카를 정신병원에 수감하는 계기가 되는 무명지 사건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20세기 전반의 독일 역사를 정확한 시간 순서에 따라 추적해 가며, 주인공 오스카는 자신의 가족사를 회고하고 있다.

표면상으로 주인공 오스카 자신의 가족사를 기술하고 있는 <양철북>은 철저하게 시대사적 사건의 시간적·공간적 질서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즉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몰락을 다루는 2부를 작품의 축으로 두고, 1부에서는 전쟁 전 일상적 사건과 3부에서는 전쟁 후 생활상이 역사적 사실에 통합되어 규정되는 것이다.

또 나치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사적 사건을 단치히의 소시민 사회라는 역사적 공간 속에서 철저히 파헤치고 있는 이 작품에서는, 오스카의 개인사 속에서 하나의 시대사를 밝히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다.

<양철북>은 제목이 말하듯 작품 전체의 줄거리를 이끌고 나가는 주요 모티브이며, 주인공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중요한 재료이다. 특히 북이라는 물체는 주인공 오스카의 행위를 추진시키는 제2의 화자도 되고, 스토리 속에 뛰어들어 사건을 좌우하기도 한다.

먼저 양철북과 오스카와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에 관한 언급은 오스카의 출생 때, 어머니가 “오스카가 3살이 되면 양철북을 사줘야지”라는 말과 함께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는 양철북에 대한 애착을 가졌다. 양철북을 그가 2세 생일에 선물로 받은 이래, 그는 북을 몸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학교나 교실, 병원, 해수욕장에도 가지고 갔다.

<양철북>에서 북은 곧 자아 표현의 도구가 된 것이다. 오스카는 내면세계를 비현실적이고 기이하게 표출시키는 도구로서 그의 양철북을 사용한 것이다.

오스카는 북에 의지한 이래, 고통과 괴로움을 당할 때면 더욱 더 북에 집착했다. 북이 소모된 숫자와 그의 고난은 비례하여 나타난다.

동네 아이들이 부당하게 그를 골렸을 때는 한 달 만에 북이 닳아 떨어졌고, 10살에서 14살까지는 1개의 양철북을 부수는데 단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양철북>이 나왔을 때 비평가들의 반응은 양분되었다. 즉 “힘찬 조형의지(造形意志)가 이 소설의 세부와 전체 질서를 다스리고 있다”는 의견과, “그라스는 세부 묘사에 집착하고 있는데, 노력에 비해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런 부정론이 나온 까닭은, 소설 속 온갖 기교의 이미지가 저마나 풍자적인 의미를 지닌 듯 안 지닌 듯 애매한 성격을 띠고 있어, 그 탓에 독자가 나무밖에 안 보이는 숲 속을 헤매는 기분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분명 숲이 존재하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오스카는 현대 인간의 찢겨진 한 인간상이며, 무의미하고 거칠고 현란한 세계에서 자신의 허약함과 콤플렉스로 희생된 인물이라 하겠다. 그는 자신을 그들 세대의 인간들에게 죄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현 세계의 부조리를 지적하고 타락된 질서 개념에 도전한 것이다. 그는 말 그대로 문학과 실생활을 살면서, 현대에서의 ‘반항’이 과연 무엇인지를 온 몸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작가이다.

귄터 그라스는 1999년에 독일 소설가로는 일곱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2002년 오십 년 넘게 금기시되던 독일인의 참사를 다룬 <게걸음으로 가다>를, 2003년에 시화집 <라스트 댄스>를 발표했다.

2006년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에서 10대 시절 나치 친위대 복무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해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2008년 그 후속편으로 여겨지는 자전 소설 <암실 이야기>를 출간했다. 2015년 4월 13일 여든 여덟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송광택 목사(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