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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에게 독서는 재미있어야 한다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에 있는 해군대학원(Naval Postgraduate School) 경영학과 교수인 케네스 토마스(Kenneth W. Thomas)는 그의 책 《열정과 몰입의 방법》에서 사람들은 4가지 조건이 충족될 경우, 일에서 재미와 열정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한다.

첫째, 자신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다. 둘째, 그 일을 할 때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느낄 때다. 셋째, 그 일을 할 만한 기술과 지식이 있다고 느낄 때다. 넷째, 실제로 진보하고 있다고 느낄 때다.

이런 것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독서다. 독서는 가치 있는 일이다. 독서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독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독서를 하면 큰 발전을 이룬다. 즉 독서는 재미와 열정을 충족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사람들은 독서를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독서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독서가 따분하고 지루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독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책을 읽을수록 열정을 품는다. 그리고 책의 내용으로 인해 흥분을 감출 수 없다.

설교자에게 독서는 흥분을 감출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독서를 대하는 자세에 열정과 흥분, 그리고 재미가 가득해야 한다. 그러면 행복한 설교를 할 수 있게 된다.

설교자는 매주 최소한 몇 편의 설교를 한다. 설교를 하려면 구성할 수 있는 자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글, 논문, 책을 쓰려고 해도 자료 뒷받침이 기본이듯이 말이다.

설교도 마찬가지다. 설교는 성경이란 자료가 이미 있다. 하지만 성경만으로 청중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에는 부족하다. 그것은 설교가 논증 중심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설교가 들려지도록 논증 중심의 설교를 하려면, 책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설교에서 논증의 자료들이 책이나 전문가 견해 등이다. 설교자가 논증 자료를 확보하려 할 때, 책에서 얻는 것이 가장 쉽다. 그리고 안전하고 완벽하다.

어떤 분이 제게 물었다. “성경을 하루에 얼마나 많이 읽느냐?”

필자가 되물었다. “하루에 책을 얼마나 많이 읽느냐?”

우리나라 설교자들 사이에서는 주로 성경만 많이 읽어야 하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경과 함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설교자들에게는 성경 읽기가 재미있을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재미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 바로 책 읽기다. 그럴 때 청중이 매 주일마다 설교를 행복하게 들을 수 있다. 설교자가 청중이 설교에 보이는 반응으로 인해 흥분을 감출 수 없게 된다.

독서가 가문과 나라 등급까지 결정한다

미국 뉴욕시 교육위원회에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가문을 5대에 걸쳐 조사한 적이 있었다. 한 사람의 영적, 지적 수준이 후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를 주제로 한 연구였다.

뉴욕시 교육위원회는 조나단 에드워즈 가문의 비교 대상으로 마커스 슐츠의 가문을 선정했다. 마커스 슐츠는 조나단 에드워즈와 동시대 사람으로서, 조나단 에드워즈와 같은 지역에 살았을 뿐 아니라 같은 수준의 경제력을 가졌고 같은 수의 가족이 있었다.

두 가문의 큰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후손에게 영적으로 <성경>을 지표로 삼고, 지적으로 인문고전 독서에 힘쓰는 전통을 물려주었다. 반면 마커스 슐츠는 <성경>에 무관심하고 인문고전 독서에 문외한인 전통을 물려주었다.

뉴욕시 교육위원회는 두 가문의 후손들을 면밀하게 추적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후손은 896명이었다. 여기서 부통령 1명, 상원의원 4명, 대학총장 12명, 대학교수 65명, 의사 60명, 목사 100명, 군인 75명, 저술가 85명, 법조인 130명, 공무원 80명이 배출되었다.

반면 마커스 슐츠의 후손은 1,062명이었는데, 여기서 전과자 96명, 알코올 중독자 58명, 창녀 65명, 빈민 286명, 평생 막노동으로 연명한 사람들 460명이 나왔다. 참고로 미국 정부는 마커스 슐츠의 후손들을 위해 1억 5000만 달러가 넘는 국가 보조금을 지출했다.

이런 예를 미국에서만 찾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을 찬란하게 빛나게 한 왕이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이다. 조선을 비참하게 만든 왕이 임진왜란의 선조와 병자호란의 인조 등이다. 이 왕들의 차이는 독서를 좋아하던 왕과 그렇지 않은 왕이라는 점이다.

현대 민주화 운동의 두 거인이 있다. 한 명은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또 다른 한 명은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독서가로 유명하다. 반면 김영삼 대통령을 독서가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김영삼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굴욕인 IMF 시대를 맞이하게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IMF를 멋지게 마치게 했다.

사람들이나 설교자에게 독서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독서 하는 사람이 리더인 가문이나 나라는 찬란하게 빛난다.

독서는 한 사람의 인생도 결정한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다음의 이야기는 고교생들이 SNS에 올린 글이다.

“1, 2, 3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4, 5, 6 등급은 치킨을 튀기고, 7, 8, 9등급은 치킨을 배달한다.”

물론 학교 성적이 전부는 아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는 유명한 말도 있다. 행복은 결코 성적순이 아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말이므로 고교생들이 위의 글을 올린 것이다.

어떤 사람이 치킨을 배달하고 싶겠는가? 누구나 치킨을 배달시켜 먹고 싶어한다. 당신이 치킨을 시켜먹을 위치에 있으려면,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책과 씨름해야 한다는 고교생들의 유머다. 하지만 뼈 있는 유머다.

독서의 정의를 내린 뒤 독서해야 한다

필자도 책을 읽지 않고 목회했었다. 하지만 독서의 중요성을 깨달은 뒤, 독서를 하면서 목회를 했다. 독서를 하기 전에는 ‘별 볼일 없는 목사’였다. 독서를 한 뒤 ‘별 볼일 있는 목사’가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독서를 바탕으로 한 글쓰기와 책 쓰기에 몰두하고 있다.

필자도 독서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까지는 독서가 단순히 읽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독서를 하면서, 독서의 선배들을 통해 독서에 대한 필자의 정의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됐다.

독서를 하고자 한다면, 독서의 정의부터 정확히 내린 뒤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읽기만 하는 바보’가 될 뿐이다.

독서란 읽기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읽기’라고 생각한다. 이는 잘못된 독서의 정의다. 독서는 읽기에 바탕을 둔, 쓰기는 물론 사색까지 해당한다. 의식화될 때까지 읽고 쓰고 사색하는 것이 독서다. 즉 반복 독서, 필사, 사색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중국의 구양수는 글을 쓰려면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는 삼다(三多)가 글을 잘 짓는 비결이라 말했다.

《태백산맥》의 저자인 조정래는 그의 책 《황홀한 글감옥》에서 다독, 다상량, 다작을 삼다(三多)라 했다. 아무튼 독서는 읽기에 그치지 않는다. 많은 생각과 많이 쓰기까지 가야 한다.

필자는 독서를 할 때 읽기, 생각하기, 쓰기를 했다. 쓰기는 두 가지로 했다. 베껴쓰기와 글쓰기였다. 책을 읽을 때 좋은 문장, 자신에게 필요한 문장, 필요한 정보 등을 베껴 썼다. 그리고 주제를 잡아서 글을 썼다.

독서를 읽기에서 그치면 안 된다. 적어도 쓰기까지 해야 한다. 생각은 읽거나 쓰면 저절로 하게 되어 있다.

독서하는 자세

독서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는 독서를 도중에 쉬지 않는 것이다. 다른 말로 독서하기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독서를 포기하면 더 이상 독서를 할 수 없다.

마라톤은 골인 지점을 통과할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 잠깐이라도 쉬면 도중 포기가 확실하다. 쉬면 결국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필자가 마음속에 품은 단어가 ‘지속’이다. 그 말은 끝까지 독서하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뭔가를 쉬지 않고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다.

독서를 ‘지속’해야 하는 것은 답이 나올 때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하는 결과의 답이 나오려면 멈추면 안 된다. 답이 나올 때까지 지속해야 한다.

이런 말이 있다. ‘마라톤은 완주가 목표다.’

마라톤은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한 번 시작했으면 끝까지 읽어야 한다. 도중에 하차하는 사람에게는 원하는 결과가 선물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은 명곡 〈메시아〉를 작곡할 때, 24일 동안 거의 먹지 않고 그것만 생각했다고 한다. 24시간을 쉬지 않고 생각했다는 증거다. 쉬지 않고 지속해서 명곡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독서도 쉬지 않고 해야 한다. 끝까지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그럴 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목회는 독서와 함께 가야 한다. 독서와 함께하려면 매일 책을 손에 집어 들어야 한다. 독서와 함께 목회를 해야 한다. 그럴 때 설교가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에, 하나님과 청중에게 기쁨을 주는 설교자로 살아갈 수 있다.

김도인 목사/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저서로는 《설교는 인문학이다/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개정 증보)/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CLC》, 《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좋은땅》, 《출근길, 그 말씀(공저)/CLC》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