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개척
은퇴하고 할 일 없어서 다니는 게 아니라
더 할 수 있지만 더 기뻐하시는 선교사로

이판석 선일교회
▲이판석 목사는 “교회가 선교지에 지교회를 세울 형편은 안 되지만, 제가 결단하니 이런저런 도움이 이어지고 있다”며 “개척 예배도 풍성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이대웅 기자
인천 부평 선일교회 이판석 목사(예장 고신)는 올해 말 지난 26년간 섬기던 담임목사직을 내려놓을 예정이다. 그의 나이는 62세. 아직 은퇴가 8년 남았지만 분쟁이나 여러 갈등 때문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선교지로 나가기로 했다.

선일교회는 대형교회는 아니지만, 지역에서 노인대학 등 여러 복지 사역을 통해 견실한 교회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관광지로도 알려진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지역 한인교회를 근거지로 현지인 선교에 나설 계획이다.

이 목사는 ‘선교 제일’이라는 의미의 선일교회 부임 후 선교에 열정을 품고 선교지 후원은 물론, 기회 있을 때마다 여러 선교지를 방문해 직접 복음을 전해왔다. ‘제2의 부르심’을 앞두고 분주한 이판석 목사를 선일교회 예닮카페에서 만났다.

-조기 은퇴와 선교사 자원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희 선일교회는 명칭부터 ‘선교를 제일(第一)로 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부임 26년째인데, 제가 비록 선교학과는 안 나왔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여기고 이름값을 감당하기 위해 여러 선교지를 많이 다녔습니다.

성도들과 단기선교도 많이 나갔고, 선교를 외치다 보니 비전이 생겨서 성도들과 선교지에 지교회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이슬람권인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 교회를 세우고 내년 3월 3일 개척예배를 드립니다.

누구를 파송할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다른 분들을 통해 협력선교도 해 봤고, 비전이 있는 다른 교단 목회자들도 파송해 봤지만, 색깔과 비전이 달라서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 구성원들 중에서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어느 청년을 통해 받은 책이 떠올랐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의 <나는 선교에 목숨을 걸었다>라는 책입니다. 그냥 꽂아놓고 읽지 않았는데, 그 책을 읽고 제가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저희 교회 청년들이 아직 준비가 안 됐기에, 하나님께서 제게 직접 하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조기은퇴를 하고 선교사로 쓰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게 됐습니다. 올해에는 어떤 설교 제목을 잡아도 사도행전 13장 속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처럼 선교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제가 올해 62세이고, 교회도 비교적 안정돼 있습니다. 청년들이 규모에 비해 많은 편입니다. 조금이라도 왕성하게 사역할 수 있을 때, 다음 세대를 책임질 만한 젊은 지도자를 세우기 위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간 어떻게 선교하셨는지요.

“그냥 방문하는 게 아니라, 그 지역 중에서도 산골짜기나 소외된 곳까지 들어가서 함께 어울렸습니다. 다녀오면 신이 나서 성도님들께 보고하지요. 저희만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오고 갑니다.

2년마다 축구 단기선교를 하고 있고, 청소년들과 단기선교로 필리핀, 대만, 베트남, 사할린 등지를 찾아갔습니다. 성도들에게도 선교 사명을 고취시키고, 의료와 미용 등 다양하게 준비시킵니다. 현장에서 직접 기도하고 선교할 수 있도록 하고, 선교사들도 격려합니다.

그렇게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성도들과 저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특별하다고 느끼던 차였습니다. ‘은퇴하면 선교지 와서 자유롭게 사역하겠습니다. 평생 목사로서 받은 은혜와 사랑, 목회의 경륜을 선교지에 쏟겠습니다’ 기도하던 중, 은퇴하고 하는 것보다 더 빨리 하는 게 어떤가 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은퇴하고 할 일이 없어서 다니는 게 아니라, 더 사역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선교사로 나가 그들을 섬기고 사역과 목회 노하우를 지도자들에게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사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재정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사도행전 13장을 통한 직접적인 파송의 부르심이 있기에 떠납니다. 후임을 통해 교회를 더 부흥케 하고, 저는 선교지에서 사역하는 것입니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담임목사가 선교하러 나가는 것이 당장은 아쉽고 섭섭할 수도 있지만, 청년들이 선교를 위해 준비되는 동안 먼저 터를 닦는 것입니다. 담임목사가 직접 갔으니, 선교비만 보내던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특별한 분위기로 이끄실 것을 기대합니다.

그곳을 찾는 난민들은 글도 모르고 학교도 다니지 못한 채, 산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말레이시아 교사들을 초빙해 가르칠 것입니다.”

-어떻게 선교 사역을 하실 계획인가요.

“3가지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인들의 신앙 회복, 현지인들에게 복음 전파, 난민학교 설립입니다.

30-40대처럼 현지어를 배우기 위해 학교를 다닐 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목회의 경륜을 전하면서, 26년간 후방에서 선교 지원한 노하우를 살려 교민들에게는 한국형 목회로 위로와 복음을 심고 그들과 더불어 현지 복음화를 이루려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코타키나발루는 가는데 5시간 정도 걸리고, 항공료가 비수기 때는 왕복 25-30만원 정도 하는 곳입니다. 치안이 안정돼 있고,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슬람권이지만 과격하진 않습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준비된 지역인 것 같습니다. 1주일에 한국 관광객만 1만명이 들어가고, 매 주일에 30-40명이 한인 교회를 찾습니다.

한인 성도들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에 사용하시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 동안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여러 가지로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아내는 화요일마다 스트레스와 혈관 측정 기계로 건강을 체크해 주고 침 봉사를 하는데, 현지인들에게도 봉사할 것입니다. 저도 이발 기술이 있습니다. 본질은 아니지만, 복음과 함께 이웃과 접촉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모색할 것입니다. 아내가 음식에도 은사가 있습니다(웃음).”

이판석 선일교회
▲선일교회 선교복지비전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판석 목사. 이 목사 뒤 간판에는 ‘한국노인대학 부평구지부’, ‘한국교회목자선교연합회’라고 쓰여 있다. ⓒ이대웅 기자
-성도님들은 섭섭해할텐데요.

“부목사 없이, 26년간 평신도들을 훈련시켜 함께 사역해 왔습니다. 안수집사와 권사를 전도사처럼 훈련시키고 함께 뛰었습니다. 이제 설교도 능숙하게 할 만큼 잘 자랐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후임자로 누가 오더라도 잘 뒷받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1월에 현지를 다녀온 후 12월 초에 이 사실을 교회에 발표했습니다. 평소 이런 이야기를 해 왔기에 훈련이 돼 있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갈 줄은 생각도 못했다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경위를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성도님들은 아직 은퇴가 많이 남았기 때문에 전혀 예상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베드로의 구출을 기도하면서도 막상 베드로가 찾아왔을 때 ‘설마’ 했듯이, 저희 성도님들도 그랬습니다. 우리 교회는 예외인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당장 떠나는 것도 아닌데, 일부 어르신들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셨습니다. 행정적으로도 후임 목사님이 편목을 마칠 때까지는 제가 담임목사여야 하는데 말입니다(웃음). 올해도 그랬지만, 내년에는 좀 더 바쁠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에 선교 열정이 약해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저는 전형적인 한국 목회자입니다. 어렸을 때 제자훈련을 받지 않았지만, 교회에서 제자 사역을 했습니다. 지금도 평신도 사역을 하면서, 교회 이름값을 감당하러 선교지를 다니다 보니 선교의 중요성을 알게 됐습니다.

전도사 때부터 지금까지 40년간 한국에서 전형적 목회 사역을 했다면, 이제 선교지 현장으로 나아갑니다. 저도 이제 선교사들의 말 없는 눈물과 고통을 느끼겠지요. 한국 경제가 힘들어지면, 선교지에 대한 지원부터 끊지 않습니까.

그러나 선교는 교회의 본질입니다. 평소에 성도들에게 ‘선교는 관심’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선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에, 선교하는 개인과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께서 결코 문 닫게 하지 않고 축복하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큰 부흥은 아니지만, 교회에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위기 때마다 평안을 주셨고,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여러 문제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교회 7대 목표에 ‘전교인 선교회원화’가 있습니다. ‘사랑의 동전’ 사역을 통해 3개월간 동전을 모아 선교지에 헌금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선교를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한국교회는 담임목사부터 선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단기선교 한 번 다녀오거나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선교하는 교회, 선교하는 성도들’을 만들어 세계 모든 열방에 복음을 증거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 내년 표어는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꾸는 해’입니다.”

-선일교회는 노인대학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교회나 그렇지만, 지역을 위한 섬김 사역입니다. 부평구 최초 노인대학을 만들어 교회가 많이 알려졌습니다. 노인정을 지속적으로 방문해 마사지부터 봉사활동을 합니다.

노인대학은 매주 목요일 열립니다. 1년에 어르신들 대상 경로잔치 있으면 지역 어르신들이 모두 오신다. 저는 지난 4년간 부평구 관내 22개동 동복지협의체 창립 때부터 위원장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봄에는 여전도회에서 바자회, 가을에는 청년들이 일일찻집을 엽니다. 큰 교회는 아니지만, 섬김이 자연스럽습니다.

이런 일들을 하다 보니, 20일 부평경찰서에서 상도 받았습니다. 노인대학을 하는 이유는 부모 공경 사상 전파를 위함입니다. 그동안 나라를 지키고 애쓰신 것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는 차원입니다. 또 어르신들의 치매와 우울증 예방해, 사회에서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바로 옆에 있는 청천중학교에서 급식비를 내기 힘든 학생들도 도왔습니다. 졸업을 앞둔 중3들의 경우 학교에서 관리가 힘든데, 각 반마다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청천제’ 장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350여명이 제발로 교회를 찾는 기회라, 성탄 선물을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나눠줍니다.

저희 교회는 365일 새벽기도를 드리고, 청소년들이 주일 낮예배에 이어 오후예배까지 드리고 수요예배와 수련회에도 다 참석하면서 다 대학에 잘 진학하고 있습니다. 공교회 예배와 봉사를 다 하고도 대학 진학을 잘 하는 것이 교회 전통인데, 하나님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음악성 있는 친구들을 중심으로 매년 연말 이웃주민 초청 음악회도 엽니다. 올해는 영아부부터 노년부까지 성도들이 무대에 섭니다.”

-목사님으로부터 평신도 훈련을 받으시고, 지금은 노인대학을 맡고 계신 김정순 전도사님께서 노인대학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신다면.

“저희 노인대학은 다른 곳보다 일찍 개강하고 늦게 방학을 합니다. 2월 셋째 주부터 12월 셋째 주까지 운영되지요. 5월에는 효 캠페인과 경로잔치, 9월 운동회, 10월 소풍 등이 큰 행사입니다. 9시 40분부터 몸 전체를 풀어주면서 마음 문을 열고, 10시 30분에 경건회를 드립니다.

자체 강사들로 모든 강의가 가능합니다. 성경, 한글, 노인음악치료, 노인생활건강, 레크 댄스, 컵타(컵으로 난타와 비슷한 활동), 일본어까지 7개 학과가 있습니다.

노인대학만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집에서 혼자 식사하시고 바깥에 나오기도 힘드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어르신들은 순간이라, 사기꾼 같은 장사치들에 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희 노인대학은 부평구청과 연계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 재개발 등으로 근처 몇몇 노인대학이 내년부터 몇 년간 운영을 하지 않기에, 더 바빠질 것 같습니다. 노인대학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소망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하고자 합니다. 믿지 않는 분들도 ‘아멘’을 따라하십니다(웃음).

저희 교회 노년부도 노인대학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추수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노인대학을 통해 많은 분들이 주님을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목사님이 조기 은퇴하시는 것에 대해 전도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목사님은 선교에 대한 비전이 크신 분입니다. 다른 대형교회들이 후임 승계 문제로 비판을 받는데, 선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말레이시아에 다녀오신 후 2주간 기도만 하셨습니다. 그땐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 후 장로님들과 이야기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평소에도 사명과 선교에 대해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다른 사람이 안 가면 본인이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시기가 좀 빨라졌을 뿐이라 생각합니다. 목사님이 길을 깔아 놓으셔야, 뒤를 따라갈 테니까요(웃음). 당장 함께하지 못하는 부분 때문에 섭섭하지만, 목사님은 아멘 하고 가시는 것이고 우리는 후원해아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