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은 목사
▲이영은 목사
아브라함의 집에 큰 잔치가 열렸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이 젖 떼는 날입니다. 아들이 없던 족장 아브라함이 100세가 다 되서 얻은 아들입니다.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합니다.

이 귀한 아들을 여종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희롱을 합니다. 그것은 심각하게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이것을 본 사라는 안되겠다, 싶어 아브라함에게 항의를 합니다. 조치는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쫒으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깊이 고민합니다.

사라는 당시의 관습대로 자기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여종 하갈을 통해서 자식을 얻었습니다. 그 아들이 이스마엘 입니다. 아브라함은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손에 받은 아들 이스마엘을 마음 깊이 사랑했겠지요. 아브라함이 얼마나 첫정인 이스마엘을 사랑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더구나 14년 동안 키운 아들인데 내어 쫒으라니요... 인간의 정으로도 끊기 힘들지만 아버지로서 하갈과 이스마엘 에게 면목이 없습니다. 사라가 너무한 게 아닌가요? 사라가 나쁜 여자인가요?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이 반전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아들을 위해 근심할게 없다며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고 하십니다. 사라의 말이 옳다는 것 아닙니까? 이유는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이다" 즉, 이삭에게로 부터 유업을 이을 것이기 때문에 종의 아들을 내어 쫒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이른 말은 무엇일까요? 단순한 여자의 시기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 말입니다. 사라는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받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잉태하지 못하는 여자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관습대로 여종 하갈을 통해서 아들을 얻었지만 후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을 낳으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곰곰이 돌이켜 보니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진 하나님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유업을 이을 자, 약속의 자녀들, 천국백성들...

사라는 이삭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이 비밀들을 어렴풋이 이해한 것 같습니다. 사라가 하갈을 내어 쫒으라고 한 것은 사람의 생각이나 윤리적인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라의 말이 옳다고 하신 것입니다(창 21:12).

인간의 역사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모든 인생의 기준입니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그는 '이 땅에서 잘되는 것'까지만 허용 될 뿐이며 그 후의 천국은 약속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창 21:13, 18).

이 본문을 후에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잘 해석해 놓았습니다. "여종에게서 난자는 육체로 태어났지만 자유로운 여자에게서 난자는 약속에 의해서 태어났습니다." 약속의 자녀는 천국백성의 약속으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도 약속의 자녀가 있고 아닌 자가 있습니다. '약속의 자녀'와 '약속이 아닌 자'는 육체의 사람과 성령의 사람으로 구분이 됩니다. 그런데 육체의 사람은 성령의 사람을 핍박합니다. 그들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내어 쫒으라"는 이유는, 그 둘은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육체는 성령의 길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성령은 육체의 길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습니다.

이 둘의 갈 길은 명확하게 다릅니다. 사는 방법도 절대 다릅니다. 교회는 약속의 자녀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들은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 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이영은 목사(서울 마라나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