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박진호 목사의 신앙문답]을 매주 1회 연재합니다. 미국 남침례교단 목사인 그는 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의 글은 박 목사가 운영하는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그가 직접 쓴 것으로, 본지는 박 목사의 허락을 받아 이를 게재합니다. 아울러 필자의 요청에 따라, 글이 그의 웹페이지에 게시된 날짜를 맨 아래 밝혀둡니다.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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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두 딸도 창녀 취급하는 롯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창19:8)

성경기록 전부가 하나님의 진리가 아니라고 말씀드렸듯이 이 구절은 롯이 소돔 백성을 향해 말한 것이지 하나님이 성경독자들에게 계시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도리어 천사들을 통해 소돔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한 후에 두 딸을 보호했고 다음날 그 악의 도성을 불로 심판했습니다. 본문은 사람들이 죄로 타락한 모습이 갈 데까지 갔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예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하는 롯을 야단치거나 벌주지 않고 오히려 구해주었다고 해서 그의 여성 비하의 생각까지 인정해준 것은 아닙니다. 당시 윤리기준으로 그런대로 의인이라고 할 만한 롯조차도 여성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관습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수용하고 실현했던 것입니다.

바꿔 말해 인간사회의 윤리는 상대적이고 일시적이며 불완전하고 심지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고 두려워하는 의인은 단 한명도 없으며 어떤 도덕적 의인도 하나님 앞에 심판 받아 마땅하다는 진리를 성경은 롯을 통해 후대 독자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그럼에도 롯은 이런 완악한 말을 한 대가로 나중에 그에 정확하게 상응하는 벌을 받습니다. 소돔에서 탈출하면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롯에게 아내가 없어져서 더 이상 후손을 이어갈 수도 없는데다 산지로 피해서 두 딸이 혼인할 기회도 없어졌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불 심판을 본 그들로선 그 땅의 사악한 거민들과 쉽게 결혼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두 딸은 아비 롯에게 술을 먹이고 각각 아비와 관계를 맺습니다.(창19:30-38) 두 딸로선 사라가 하갈을 통해 아브라함의 몸에서 날 자를 얻으려 시도했듯이 현실적인 대안이었을지 몰라도 근친상간이라는 사형에 해당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녀들도 소돔에 만연했던 성적타락에 이미 많이 물 들었는지 모릅니다. 아비 롯도 자기가 뱉은 말이 씨가 되어서 자기에게 그대로 돌아오는 벌을 받았습니다. 롯과 두 딸 사이에서 난 두 아들이 훗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두고두고 괴롭히는 모압과 암몬 족속의 선조입니다.

반면에 사라의 아들 이삭은 하나님의 백성은 물론 예수님의 선조가 됩니다. 살펴본 대로 인간사회 윤리로는, 특별히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사라가 의롭다고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서 그분의 약속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아무 공로 없이 구원의 선물을 받았고 모든 믿는 자의 어머니가 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성경은 윤리적 선악으로 판단해선 안 되며 오직 예수 십자가로만 해석해야 한다는 또 다른 예입니다.

여성과 노예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지금껏 구약성경의 여성비하와 노예제도가 하나님의 본래 뜻이 아니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오히려 여성과 노예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성경의 대표적인 예들 몇 가지만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생산이 불가능한 구십 세의 사라에게 은혜를 베풀어 열국은 물론 모든 믿는 자의 어머니이자 메시아의 선조가 되게 했습니다.(창17:16) 믿음이 좋은 리브가로 어머니를 잃어 상심한 외아들 이삭을 위로케 했으며(창24:67), 야곱의 네 명의 아내들은 일부다처제의 희생양이었지만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낳게 했습니다.(창29:31-30:24)

미리암은 출애굽의 구원자 모세의 생명을 기적적으로 살렸고(출2:1-10), 역사상 최대의 찬양집회를 인도했으며(출15장), 선지자로서 그와 함께 동역했습니다.(민12:2) 결정적으로 지금부터 약 3500년 전에 남성 상속자가 없을 때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여성에게도 동등한 상속권을 보장해주었습니다.(민36장) 드보라 선지자는 남자 사사인 바락이 그녀의 지휘가 없이는 전쟁을 치를 수 없다고 하며 그녀를 영적지도자로 섬겼습니다.(삿4:8)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족보(마1장)에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를 맺은 죄 많은 여인 다말, 가나안의 기생 라합, 모압의 이방 여인 룻, 다윗 왕과 간음한 우리야의 아내가 올라가 있습니다. 모두 구약시대의 여인들입니다. 예수님은 인종, 직업, 남녀는 물론 윤리적 죄와 상관없이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죄 많은 인간의 위치에까지 낮아지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당신의 백성들조차 물건 취급하던 여성을 사랑하시고 당신의 구속사역에 큰 역할을 맡기셨던 것입니다.

모세의 이혼증서처럼 율법에는 여성의 권익을 보호해주는 규정들이 곳곳에 나옵니다. 가장 먼저 간음은 남녀 모두 반드시 사형으로 다스렸습니다.(레20:10) 위생 때문이긴 해도 경도 중인 여인과는 관계를 갖지 말라고 했고(레20:18), 처녀와 관계를 맺게 되면 유부남이라도 반드시 아내로 삼으라고 했으며(출22:16 - 어쩔 수 없이 일부다처가 됨), 처녀성을 거짓으로 모함하여 아내 삼기를 거절할 수 없게 했으며(신22:14-19) 심지어 산모에게 육아 휴가까지 보장했습니다.(레12:4)

율법은 또 이스라엘더러 동족을 노예로 삼지 말라고 명했습니다.(레25:39) 빚을 져서 어쩔 수 없이 종으로 삼아도 노동으로 빚을 갚도록 했고 주인이 종을 엄하게 부리지 말아야 하며(레25:47-55) 안식년에는 빚은 물론 종의 신분에서 해방해주도록 했습니다.(출21:20) 만약 종이 그 가정에 남겠다고 하면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했습니다.(출21:5,6) 그만큼 평소에 종을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포로에서 자유하게 하는 십자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고아, 과부를 비롯한 여성, 이방인, 종들에게 유독 관심과 애정을 쏟았습니다. 당신의 백성들더러 그들을 우대하라고, 최소한 차별하지 말라고 계속 강조했습니다. 그 이유를 너희도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때를 회상해보면 다른 이를 함부로 종이나 물건 다루듯이 해선 결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신15:15) 이스라엘을 노예 생활에서 건져내어준 것은 오직 하나님이 은혜였습니다. 그들이 특별히 의롭거나 예뻐서가 결코 아닙니다. 죽음의 사자가 애굽의 장자들을 다 죽일 때에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를 문에 바르고 밖으로 나가지 않음으로써 그 피를 본 죽음의 사자가 심판에서 면제해주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도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으나 어린 양의 대속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오히려 타국의 노예로 고생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요셉의 은혜를 잊어버린 애굽의 죄 때문에 사백년, 두 번째는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한 죄 때문에 바벨론에서 칠십년 동안 노예가 되게 했습니다. 노예제도는 인간들이 탐욕을 채우려고 타국을 침략한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가 패전국민을 탈취물로 삼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완악함을 그대로 두되 당신의 백성을 그 관습으로 징계 심판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사61:1) 예수님의 십자가로 사탄에게 포로 된 죄인들에게 영적인 자유부터 회복시켜야만 여성비하와 노예제도 같은 다른 모든 죄에서도 깨끗케 될 수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거룩해지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예수 십자가 외에 다른 방안은 없었습니다.

현대 교회의 실상은?

그런데 오늘날의 인간사회는 어떠합니까? 여성비하와 노예제도가 잘못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과연 온전히 실천하고 있습니까?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인종 심지어 도덕과 종교 등의 측면에서 현대판 노예들이 이런저런 모습으로 더 교묘하게 많아졌지 않습니까? 미투(Me Too) 운동은 선진국에서조차 여전히 진행형이며 온전히 그에서 자유롭게 될 날은 요원합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마지막 날에 주님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이 두 악한 관습은 계속 남아 있을 것입니다.

박진호
▲박진호 목사
심지어 교회 안에도 알게 모르게 그 죄악들이 기생충처럼 숨어서 번지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약2:2-4) 이천 년 전의 야고보 사도의 이 경고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신자와 교회가 지금 과연 있겠습니까?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여성비하와 노예제도는 하나님의 뜻 안에는 태초부터 아예 존재도 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분에겐 인간사회에서 소외 멸시 박해 받는 자들을 향한 사랑만 충만했습니다. 그런 제도들은 인간의 죄에서 기원되고 발전 확장되며 인간의 이성과 도덕이 최고로 발달한 21세기 대명천지에도 번창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교묘하고 음흉하게 발전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긍휼만이 그런 죄를 깨끗케 하여서 인간을 살릴 수 있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주님은 세상에 통용되는 어떤 기준에도 전혀 구애받지 않고 모든 이를 외모로 차별하지 않고 사랑해 주십니다. 그런 십자가 은혜 안에 들어와 있는 신자더러 당신처럼 사람을 절대로 외모로 차별하지 않고 현대의 여성비하나 노예제도 등을 고쳐서 이 땅을 거룩하게 바꾸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또 다시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사항은 성경을 절대로 문자적으로 한 구절씩 따로 떼어서 보지 마시고, 반드시 문맥과 책 전체에 비추어 이해하시고, 무엇보다 윤리적 계명이라는 인식을 완전히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은혜로 죄인의 생명을 살리는 능력의 말씀이라는 관점에서 해석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끝)

2019/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