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박진호 목사의 신앙문답]을 매주 1회 연재합니다. 미국 남침례교단 목사인 그는 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의 글은 박 목사가 운영하는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그가 직접 쓴 것으로, 본지는 박 목사의 허락을 받아 이를 게재합니다. 아울러 필자의 요청에 따라, 글이 그의 웹페이지에 게시된 날짜를 맨 아래 밝혀둡니다.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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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윤리적 가르침이 아니다

앞 장에선 구약성경이 언뜻 여성비하와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것 같이 보여도 하나님의 본래 뜻이 아님을 살펴봤습니다. 구약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관한 지식을 갖고 접근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인간의 죄악상을 드러내어 회개케 하려는 진술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을 해석하는 법을 다시 간략히 정리해봅시다. 가장 먼저 본문이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 이차적인 진리, 단순히 부차적 설명인지, 혹시 이미 폐기된 구절은 아닌지 등을 파악해야 합니다. 본문의 문자적 표면적 의미에 묶여선 안 되며, 앞뒤 문맥과 그 책의 주제에 비추어서 그 배경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찾아야 합니다. 나아가 성경 전체에 흐르는 일관된 사상과도 연결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반드시 신약성경과 연관해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진리에 비추어서 해석해야 합니다.

질문에서 대놓고 여성을 비하하는 것 같은 창세기의 세 구절을 인용하셨습니다. 이브와 하갈과 롯의 두 딸들에 대한 말씀들이 과연 그러한지 바른 해석법에 따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는데, 그 전에 성경해석에 대한 또 다른 원칙 한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본 사이트를 통해 수도 없이 강조했지만 성경을 읽을 때에 가장 금해야 할 사항은 한 구절씩 따로 떼서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성경의 장과 절은 훨씬 후대에 단순히 편의를 위해서 붙여진 것입니다. 장절이 없이 저작되었기에 그 의미도 반드시 앞뒤로 죽 연결해서 따져봐야만 합니다. 일반적인 책도 그러한데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를 계시한 성경이므로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성경은 책별로 한 저자가 고유의 목적과 의도를 갖고 특정 주제에 관해서 저작했기에 그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인 맥락에 따라서 이어집니다. 말하자면 단순히 도덕적 격언이나 종교적 계명들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므로 한 구절씩 따로 봐선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장님들이 코끼리의 일부분만 만져봐선 그 실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것과 같아집니다.

앞선 글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란 당신의 인류 구원에 대한 계획과 그것이 인류 역사에서 실현되어진 모습과 장차 어떻게 완성될 것인지에 관해서 계시해 놓은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바꿔 말해 성경은 다른 종교처럼 윤리적 계명대로 따르면 구원을 준다고 구원의 방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직접 오셔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셨는데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믿고 받아들이면 그분이 구원을 선물로 준다고 하나님이 직접 선언 보장해놓은 책입니다.

요컨대 구원 얻기 위해서 신자가 행해야할 선과 하지 말아야할 악을 찾아내는 것은 성경해석의 일차적 과제가 결코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깊이 묵상하고 말씀을 통해 인격적인 대면이 일어나는 책입니다. 신자는 예수를 믿은 후에 하나님이 구원을 선물로 주신 뜻을 각자 믿음과 형편에 따라서 각자의 현실 삶에 적용 실현하면 됩니다. 성경을 윤리적 가르침이라고 착각하니까 한절씩 따로 보는 습관을 끝내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질문하신 세 구절에서도 윤리적 측면에 시선이 먼저 가버리면 정작 하나님 그분이 독생자의 십자가를 통해 베푸신 은혜와 권능을 놓치게 됩니다.

아담의 다스림을 받아야하는 이브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3:16)

이 한 구절만 따로 떼어서 보면 성경이 남성우대 사상을 강조 내지 지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앞뒤 문맥에서 의미를 살펴야 합니다. 한 저자가 한 책에서 갑자기 앞에서 설명한 내용과 다르거나 앞뒤가 서로 연결되지 않는 생뚱한 말을 할 리는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꾐에 먼저 넘어간 자는 이브였고 그녀가 함께 한 아담에게도 선악과를 먹게 했습니다.(창3:1-6) 그럼 하나님이 벌을 주어도 이브에게 먼저 더 강하게 주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먼저 아담을 불러서 경과를 따졌습니다.(창3:8-11)

그 이유는 아담을 가정의 대표자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 다 같이 한 장의 투표권을 가지고 회장만 번갈아가며 맡는 유엔(the United Nations)총회의 예에서 보듯이 부부가 연합하여 즉, 동등한 관계에서 가정을 가꾸라고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동등한 자격과 신분이라 해도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 뜻을 전달 실현할 가정의 대표자는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남자더러 부모를 떠나서 가정을 이루는 책임을 맡으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가정을 꾸려나가야 할 뿐 아니라, 가정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머니가 먼저 믿었거나 아버지가 없는 가정이라면 당연히 어머니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합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영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든 교회든 모든 신앙공동체의 각 구성원들은 하나님 앞에 동등하지만 질서를 세워서 교제 동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해서 하나님이 이브에게 더 큰 벌을 주거나 남자를 더 높여준 것이 아니라 가정을 제정할 때의 뜻을 더욱 강조한 것입니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의 고통도 새로 추가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크게 더한다"고 했으니 처음부터 있던 고통이 단지 더 늘어났을 뿐입니다. 이미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했을 때에, 그전에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었을 때에 여자는 임신하여 아이를 양육할 일을 맡았습니다. 임신과 출산 전후로 여성은 활발하게 일을 못하니까 당연히 남성이 가정을 꾸려나가야 합니다. 따라서 이 또한 타락 전에 이미 밝혀놓은 당신의 뜻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담도 하나님께 벌을 받았습니다.(창3:17-19) 같은 잘못을 범했는데 이브만 벌을 받았다면 여성이 차별받은 것이 됩니다. 그러나 창3:16은 최초 인간이 당신을 거역하고 타락한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하나님은 세 당사자인 사탄, 이브, 아담에게 순차적으로 벌을 내린 것입니다. 말하자면 남성우대는 남자와 여자 사이 인간관계의 문제이나 이 말씀은 이브와 하나님의 관계를 말하고 있기에 여성 비하는 그 주제는 아닌 것입니다.

타락 후에 수치와 공포에 휩싸여 동산 깊숙이 숨은 아담을 하나님이 찾아와서 처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네가 어디 있느냐?"(창3:9)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느냐?"고도 묻지 않았습니다. 왜 네가 반드시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엉뚱한 곳에 가서 숨었느냐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의 품을 벗어나면 수치와 공포 나아가 죽음뿐임을 상기시킨 것입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그 내리신 벌도 두 가지 의미를 지님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첫째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창조 때에 이미 계획해 놓은 남녀가 각기 맡을 역할을 더 확장해서 설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역할을 타락 전에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 기쁨과 감사로 즐겁게 행할 수 있었으나 타락 후로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의 밖에 있기에 같은 일을 해도 많은 힘과 고통이 따를 것이라는 뜻입니다.

둘째 의미는 하나님이 내리신 형벌이긴 하지만 사실은 인간들의 죄가 발전 확장됨에 따른 필연적 결과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땅에 죄로 타락한 인간끼리 서로 자기만 높이려 무한경쟁을 할 것이므로 온갖 수고 고난 분노 저주가 만연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컨대 남자들이 여성의 지위를 무시 천대할 것인데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완악함 때문에 모세 이혼증서법을 제정할 것입니다.

사라에게 학대 받는 노예 하갈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창16:9)

이 구절의 의미도 마찬가지로 앞뒤 문맥에서 찾아야 합니다. 사갈은 여주인 사라에게 이미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태가 닫힌 사라가 먼저 하갈더러 아브라함과 동침하여 아들을 가지라고 부탁했습니다.(16:2,3) 하갈은 임신하자 이제 그 집안의 안주인은 자기 차지가 되었다고 믿고 아이도 낳기 전부터 사라를 멸시하기 시작합니다.(16:4) 자기 주인에게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으니 여호와의 뜻이 어디 있는지 잘 살피라고 추궁했습니다.(16:5) 하갈이 잉태하자 아브라함이 너무 귀하게 대우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사라로선 남편에게 당신이 받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려고 내가 양보해 주었지 않느냐, 이 가정의 영적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잘 판단해보라고 따진 것입니다. 사라의 말이 타당하다고 여긴 아브라함이 당신이 제안했으니 당신의 뜻대로 하갈에게 행하라고 답했습니다. 사라는 하갈에게 잉태했다고 안주인의 자리는 절대 넘보지 말라는 뜻으로 자기가 당한 이상으로 가혹하게 앙갚음했을 것입니다.

학대를 견디다 못해 광야로 도망간 하갈이 광야 샘물 곁에 쉬고 있었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말을 건넸습니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16:8) 숨어있던 아담에게 던진 여호와의 말씀과 같습니다. 하갈 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 사라의 수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사라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두 사람의 관계를 원상으로 회복시키는 명령입니다.

사라에게 다시 학대 받으며 고생하라는 뜻도 당연히 아닙니다. 귀환 명령에는 엄청난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먼저 하갈은 비천한 여종으로 일생이 끝나지 않게 하고 그녀의 아들 이스마엘을 통해 아랍 족속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녀의 출산과 양육경험으로 나중에 아이를 갖게 되는 주인 사라를 잘 보살피라는 것입니다. 그녀가 낳을 약속의 아들인 이삭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로 풀어야 한다고 말씀드린 까닭입니다.

박진호
▲박진호 목사
이 사건은 또 엄밀히 따지면 일부다처제와도 무관합니다. 남자인 아브라함이 첩을 두었어야 일부다처의 죄가 성립되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본부인 사라가 권해서 하갈을 첩으로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사라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몸에서 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했지만 기다리다 못해 자기는 아이를 가질 수 없으니 그 뜻을 이루려고 나름의 지혜를 동원한 것입니다. 이왕이면 자기 수하의 하갈을 통해 아이를 갖도록 하는 것이 낫겠다고 섣불리 판단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녀는 하나님이 아들을 준다고 했으니 그렇게 즉, 집안에 첩을 두어도 된다고 용인해준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을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라나 아브라함이 인생의 노년이 되어서도 영적으로 참 어리석었던 것입니다. 구약 인물들의, 사실은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가 신구약성경을 통해 확고히 계시된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믿음의 수준이 보잘 것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물론, 창세기의 사건들은 율법을 받기 훨씬 전이긴 해도, 그분과 직접 맺은 언약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분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이성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으로선 당신 쪽에서 주도적으로 당신의 택한 백성에게 당신을 알게 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적인 천재란 없기에 천천히 그 믿음이 자라도록 범사에 하나씩 순차적으로 간섭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이전까지는 당신의 온전한 뜻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 과정들을 기록한 것이 구약성경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노예제도도 앞선 글에서 밝혔듯이 하나님의 본래 뜻과는 무관합니다. 인간사회에 이미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던 악한 관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구속이 완성되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그 죄가 더 이상 확장되지 않도록 하는 관련규정을 주셨습니다. 제사장 나라로 세움 받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들의 관습과는 전혀 다르게 종들을 긍휼로 대우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말입니다. (계속)

2019/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