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성의만 있다면, 북한에서도 통해
남북 관계, 냄비처럼 흥분 대신 길게 봐야
화해와 평화와 통일 말하는 성경 기억을
정권 바뀌어도, 통일 정책 근본 유지해야

2019년 12월 김명혁 유관지
▲왼쪽부터 유관지 목사, 김명혁 목사, 사회 김철영 목사. ⓒ이대웅 기자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한복협 명예회장)와 교계 원로와의 2019년 마지막 대담이 12월 19일 오전 서울 도곡동 강변교회(담임 이수환 목사)에서 개최됐다.

김 목사는 매달 교계 지도자들과 신학자 등을 초청해 다양한 주제로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12월에는 유관지 목사(북한교회연구원장, 성화감리교회 원로)와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영성을 염원하며’를 주제로 발표 후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사회로 토론을 펼쳤다. 다음은 그 내용.

-두 분 다 북한과 인연이 많으신 것으로 아는데요.

김명혁 목사: 고향이 평안도 안주입니다. 아버님 목회지를 따라 신의주에서 9세까지 살았고, 평양에서 남으로 올 때까지 2년간 살았습니다.

유관지 목사: 김명혁 목사님께서 제일 중요한 걸 빠뜨리셨습니다. 김 목사님 아버님께서 북한에서 순교하셨지요. 저도 뿌리는 북한입니다. 아버님 고향이 함경도 영흥입니다. 저는 거기가 어딘지 전혀 모르지만요.

저는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나, 2달만에 서울로 와서 8.15와 6.25를 겪고, 초중고를 다 나왔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제 고향이 함경도라는 마음이 깊어졌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함경도 음식도 맛있게 느껴집니다(웃음). 냉면도 평양보다는 함흥식이 좋았지요. 사실 북한에서는 함흥냉면이 없다고 합니다. 그걸 아는 교인들이 북한 지역 음식도 선물하곤 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아버지가 일제에 의해 감옥에 가시고, 북한 공산당에 의해 결국 순교하셨는데, 평생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김명혁: 그래서 저는 반일과 반공이었습니다. 미국에서 12년간 양면적이고 포용적인 어거스틴과 프랜시스를 배웠지만, 총신대로 돌아와서 처음 강의할 때까지도 반공과 반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도 베드로와 바울에게 그들을 핍박하던 로마로 가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한 2년 뒤부터 예수님과 여러 선배님들을 바라보면서, 북한이든 공산당이든 일본이든 무슬림이든 타종교든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그런 부분을 비판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변화되었습니다.

-화해를 말하기 전에, 참상과 상처를 극복하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유관지 목사: 김 목사님 말씀에 덧붙이자면, 저도 반공 교육을 철저하게 받고 지냈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대북 지원 NGO 일을 하면서 북한에 자주 가면서 반공에 대한 마음이 많이 풀렸습니다. 북한은 ‘지원’이라는 말을 못 쓰게 해서, ‘협력 NGO’라고 합니다.

북한에 가서 실무자들 만나 일을 하면서, 진실과 성의만 있다면 통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갈등을 극복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발표하면서 에서와 야곱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에서의 원한이 얼마나 컸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 아래 갈등이 다 해소됐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남북이 다시 대결 구도로 회귀하고 있고, 교회는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유관지 목사: 2018년에는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작년에 ‘판문점 선언’을 하면서 기념비를 세우고 할 때는 저도 많이 흥분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짧게 보지 말고, 길게 봅시다. 너무 쉽게 흥분하지도 맙시다. ‘냄비’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은 반대 상황이지만, 쉽게 흥분하거나 쉽게 절망하지 말고, 길고 긴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봅시다.

그리고 교회가 증오를 부추기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요. 교회는 화해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유관지 2019년 12월
▲유관지 목사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평화를 강조하면 통일에 대한 열망이 강렬해져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평화를 강조할수록 통일에 대한 의지가 약해지고 있습니다.

김명혁 목사: 간단히 말하자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기신 십자가 복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치가 아닙니다. 내가 잘 되고 남한이 잘 되고 하는, 이기적인 정치로는 안 됩니다.

사실 올바른 정치라는 것이 이 세상에 있을까요. 신학도 완전히 올바른 것이 없을 정도 아니겠습니까. 십자가 복음을 지녔던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가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말하는 성경을 무시한 채, 반공과 반북만 외쳐서야 되겠습니까. 북한에서 온 사람들 대부분 반북과 반공인데, 그들도 십자가 복음으로 조금씩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한경직 목사님도 템플턴상을 수상한 다음 날, 북한동포 돕기에 쓰라고 상금을 내놓으셨습니다. 저는 종교인 대표로 북한에 두 번 초청받아 다녀왔는데,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면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밀가루 300톤을 가지고 개성에 갖다줬더니, ‘남한놈들…’ 하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고위 장교가 귓속말로 ‘어찌 이렇게 어려운 일 했어요. 다음에 언제 오세요’ 하더라고요.

유관지 목사: 1970년대까지만 해도, 통일을 말하려면 두 가지 단어를 붙여야 했습니다. ‘북진’통일, ‘멸공’통일이었습니다. 지금은 평화통일로 바뀌었지요. 교회에서는 복음통일이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용어가 전환된 것만 해도 큰 변화입니다. 이제 내면과 정신까지도 전환되어야 합니다.

-무력통일과 흡수통일, 김정은 정권 붕괴 등으로 통일이 이뤄질 수 있을까요.

유관지 목사: 1990년대만 해도 흡수통일론이 대세였습니다. ‘북한 급변사태’라는 말도 공공연하게 나왔습니다.

내년 2020년은 독일 통일 3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독일이 흡수통일이라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절차와 단계를 밟았다는 것입니다.

‘흡수통일’이라고 하기 전에, 북한 입장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한 신문에서 이런 칼럼을 읽었습니다. ‘교계에서 툭 하면 좌파로 모는 풍조가 있어 매우 염려스럽다’는 것입니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모습도 필요합니다.

-남북한이 상처받지 않고, 갈등하지 않으면서 통일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유관지 목사: 하나님의 초월적인 역사에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김명혁 목사: 구약의 니느웨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따지는 요나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아끼는게 무엇이 잘못인가’라고 하십니다. 성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길게 설교했겠습니까? 이러면 안 된다 정도 했을 것입니다. 몇 마디 했을 뿐인데, 다 회개했습니다. 동물까지 금식했다고 합니다.

사랑 앞에서는 다 녹아집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백부장도 딸이 치유받은 후 하나님께 영광을 드렸습니다. 백부장이 이후 돌아다니면서 그 이야기만 하지 않았겠습니까. 니느웨도 로마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그런 분들 12명만 있다면, 이 나라는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9장에서 의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아프간이든 북한이든 가서, 그들을 몇 명이라도 끌어안을 수 없을까 생각합니다. 종교인 모임에 갈 때마다, 같이 가서 해 보자고 권유합니다. 큰 방법이 아니라, 그런 몇 사람만 있으면 김정은도 바뀔 것입니다.

유관지 목사: 니느웨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대로 북한에 적용될 수 있는 모델입니다.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원인은, 요나가 다시스로 가다가 만난 풍랑 같은 것 아닐까요. 니느웨의 교훈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교훈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습니까.

-한국교회가 통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유관지 목사: 통일은 물리적 하나 됨이고, 통합은 마음과 마음이 하나 되는, 화학적 하나 됨입니다. 우리는 독일을 반면교사로 보고 배워야 합니다. 통합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하나 되는 통일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합니다.

‘통합’이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교회가 이를 준비해야 합니다. 통합 없는 통일은 오히려 혼란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명혁 목사: 자꾸 말씀드리지만 손양원 목사님이 아들을 죽인 한재선을 끌어안은 것처럼 하면 됩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독재자까지 끌어안았습니다. 그래서 비판도 받았지요.

그런 선배님들을 조금이라도 우리가 배울 수 없을까요. 이런 모범과 희생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남은 생애 1-2년이라도, 그들과 함께 살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입니다.

유관지 목사: 통일 후 준비에 대해 범위가 좁아지는 것 같지만, 저는 북한교회연구원을 운영하면서 해방 전 교회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 통일 선교도 상당히 전문화되고 세분화되고 있습니다. 각자 영역이 있습니다.

저는 해방 전 북한 교회가 있었던 자리에 표지석을 꼭 세우고 싶습니다. 예전에 북한 지역에서, 교회는 그 지역의 중심이었습니다. 지금 동사무소를 주민센터·행정복지센터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교회가 그 역할을 했습니다. 민족운동에도 앞장섰습니다. 이런 교회였고, 이런 분들이 다녔습니다.

북한 지역도 행정구역이 많이 늘어나고 바뀌었기 때문에, 주소록을 정확히 만들어야 합니다. 행정구역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중국 동북지역에도 옛날 우리 동포들의 교회가 300여곳 있었습니다. 지금 중국을 자유롭게 갈 수 있지만, 교회 터는 찾아가지 않습니다. 위치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인 윤동주가 다니던 용정중앙교회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 문화원이 된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서두르고 있습니다. 북한에도 꼭 세워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그런 일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명혁 2019년 12월
▲김명혁 목사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화해, 평화, 통일’의 영성을 염원해야 하는데, 한국교회는 과격한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김명혁 목사: 한국교회는 지금 너무 잘못된 길을 걷고 있습니다. 바로 설 가능성이 있을지도 부정적입니다. 극좌 극우로 갈라져서, 광화문과 서초동 여의도에 모이고 있습니다. 남북간 평화 화해 통일도 중요하지만, 우리 남남부터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일들을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모여서 해야 합니다. 함께 울면서 의논할 수 있는 일이 최우선 아닐까요.

유관지 목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남남 갈등입니다. 진영 논리와 양극화 현상이 참으로 문제입니다. 그 모범을 보이는 곳이 교회 아닌가요.

그러나 눈을 좀 돌려서 보면, 사회 풍조나 교회에 부정적인 면만 강조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교회에는 긍정적인 면들도 많습니다. 거기에 소망을 두고, 그런 일들이 확대되길 바라면서 일해야 하겠습니다.

-정부의 통일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명혁 목사: 정부도 포용력이 필요합니다. 북한에 가까이 가면서도, 비판할 것은 비판도 해야 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면을 포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 말씀처럼, ‘양극단을 서로 붙잡는 역동적인 포용성’이 필요합니다. 정치인들이 여기에 힘을 좀 쓰면 어떨까요.

유관지 목사: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일 정책이 큰 폭으로 바뀌는 것이 문제입니다. 통일 실무를 맡고 있는 일선 공직자들도 당황스럽습니다. 안 바뀔 수는 없겠지만, 근본 틀은 놔둬야 합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되고 단절되는 흐름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권자 되시며 민족의 흥망성쇠 주관하심을 믿고, 하나님 이름으로 한국 사회와 교회와 민족과 세계를 바라보면서, 통일의 그 날까지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기를 바랍니다. 두 원로 목사님들이 새해에도 한국교회 잘 지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