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신앙 지형도 바꿔놓을 것
하나님의 은혜 강조하는 언약 신학
책상머리 신학, 강단 가르침 하나로

빌헬무스 아 브라켈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
▲전 4권, 총 4천여쪽이 담긴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 ⓒ이대웅 기자
“무인도에 갇혀 있고 성경 이외에 오직 한 질의 책만을 가질 수 있다면, 바로 이 책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조엘 비키 박사).”

이러한 평가를 받은 17세기 네덜란드 목회자 빌헬무스 아 브라켈(Wilhelmus a Brakel, 1635-1711)의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The Christian’s Reasonable Service, De Redelijke Godsdienst)>가 출간돼, 이를 기념하는 강연회가 16일 오후 서울 도곡동 강변교회(담임 이수환 목사)에서 개최됐다.

책을 출간한 지평서원이 주최한 이날 강연회에는 기독 출판계 행사로는 이례적으로 1백명 이상이 몰려, 책에 쏠린 관심을 짐작케 했다.

강연에 앞서 축사한 김준범 목사(양의문교회)는 “이 책을 2007년 1월 조엘 비키 박사님을 통해 처음 알게 돼 번역을 시도했지만 5년을 끌다 하지 못했다”며 “지평서원에서 7년간 번역과 제작을 거쳐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 바빙크의 ‘개혁교의학’과 다른 방식으로 기독교 신학의 체계를 알려주는 책”이라고 말했다.

임경근 목사(다우리교회)는 “이 책은 1700년대에 20쇄까지 찍힐 정도로 많이 읽혔다. 당시에는 스콜라주의와 경건주의가 각각 유행했는데, 이 책에는 두 가지가 모두 균형 있게 잘 정리돼 있다”며 “교리와 삶이 함께하는 책이 나와서 기쁘고 감사하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지탄받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라고 했다.

번역에 참여한 서명수 목사(여정의교회)는 “귀한 작업에 참여할 수 있어 감사드린다. 박사과정을 준비하던 중 번역의 기회를 얻게 됐다”며 “‘매일 칭의가 영혼에 적용돼야 한다’는 부분에서, 그리고 ‘목회자들의 소명과 이중성’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 부분에서 번역하다 울었다. 300년 전 이야기지만, 오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신호섭 목사(올곧은교회)는 “지평서원에서 책을 출간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교회에 필요한 개혁주의 서적들을 묵묵히 출간해 온 지평서원의 가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며 “이 책은 한국교회 신앙 지형도를 새롭게 바꿔놓을 것이다. 신자 개인의 영혼뿐 아니라 교회의 경건을 회복하고, 개혁주의 신앙과 삶의 일치와 그 진수를 여실히 보여줄 것”이라고 격려사했다.

빌헬무스 아 브라켈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
▲이상웅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이어진 강연회에서는 이상웅 교수(총신대)가 ‘빌헬무스 아 브라켈의 생애와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 ’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이 책은 저자가 만 65세였던 1700년 처음 발간됐고, 내용적으로는 1707년 마지막으로 손질한 제3판이 표준판이다. 이번에 나온 책도 이 표준판을 번역한 것”이라며 “이 책 발간은 ‘도르트 신경’ 400주년이라는 2019년의 대미를 장식하는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한국교회에는 아직 화란(네덜란드) 개혁교회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지만, 이 책은 화란 개혁주의자들의 책 중 가장 유명한 교의학 도서로 가장 대중적으로 읽혀졌고 지난 320년간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었다”며 “교리를 신앙과 삶에 연결시키는 방식에 있어 주목할 만한 책이라 할 수 있다. 1권을 미리 읽어봤는데, 무엇보다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아 브라켈은 49년간 개혁교회에서 목회하고, 노년에 이 책을 집중적으로 집필했다. 1750년까지 판본을 조사해 봤는데, 50년간 16차례나 인쇄됐다”며 “잘 알려진 아브라함 카이퍼가 개혁주의를 표방하게 된 것도 이 책을 비롯한 여러 도서들을 접한 뒤였다. 그리고 <개혁교의학>이 그랬던 것처럼, 2014년 중국어로 먼저 나왔다”고 소개했다.

빌헬무스 아 브라켈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
▲김효남 목사가 강연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번역을 총괄했던 김효남 목사(천호교회)는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에 담긴 몇 가지 흥미로운 신학적 이슈와 배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번역을 시작하면서 첫 고민은 말투에 있었다. 조직신학 책은 보통 반말투인데, 읽을수록 그냥 조직신학 책이 아니라 설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선택한 경어체가 적절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 담임목회 하면서 번역을 했는데, 마지막에는 사임하고 6개월간 번역에만 매달렸다. 졸업보다 번역이 우선일 정도였다. 교정하면서 읽는 데만 몇 개월이 걸렸다”고 회고했다.

김 목사는 “책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 관련 내용이 꽤 길게 나오는 이유는, 당시 네덜란드의 사상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이성 중심의 합리주의가 등장했고, 복고 사상인 바로크 문화가 한창 꽃피던 때였다. 이들과 기독교 개혁주의 사상이 충돌하고 있었다”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놓고, 이성과 계시라는 두 가지 주장이 대립하던 때, 푸치우스(Gisbertus Voetius)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아 브라켈은 성령 역사를 통한 계시의 영역을 강조했다. 그것이 1장의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전의 기독교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차용해 이성이 항상 계시와 믿음의 아래에 있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이성을 더 중시했다. 이러한 가운데 콕케이우스(Johannes Cocceius)는 데카르트적 방법론을 따르더라도 신학의 내용이 변하지 않으리라 봤지만, 푸치우스 등은 신학의 본질이 바뀔 것으로 우려하면서 절대적으로 반대했다”며 “이 책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은혜 언약적 신학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고 있다. 브라켈은 은혜에 인간적인 조건이 들어갈까 늘 경계했다”고 했다.

또 “브라켈은 칭의론에 있어 ‘매일 칭의를 받는다’고 표현해 율법주의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이는 이해하기에 따라 충분히 논쟁적인 주장이지만, 그의 의도는 ‘의롭다 하심(칭의)’의 경험을 매일의 순간마다 하는 것이 얼마나 신자에게 중요한가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며 “칭의와 성화를 연결하는 고리를 중시했던 것이다. 이 외에 ‘칭의와 믿음 중 무엇이 먼저인가?’에 대한 부분에도 관심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빌헬무스 아 브라켈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
▲김병훈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마지막으로 책의 구조에 대해 설명한 김병훈 교수(합동신대)는 “우리나라에도 개혁신학에 대한 소개가 상당히 이뤄졌으나, 지성적 엘리트주의처럼 흐르다 보니 경건적 실천과는 유리되는 아픔도 나타나고 있다”며 “브라켈은 이 책에서 조직신학의 각론처럼 성경 안에서 발견된 내용들을 하나 하나 조목조목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어렵지 않고, ‘책상머리 신학과 강단 앞에서의 가르침’이 하나로 모아지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저자는 먼저 교리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교리의 내용을 성경과 관련해 풀어주면서 교리의 중요성을 곁들이고 있다. 그리고 교리에 대한 반박에 논박하기도 한다”며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과 불신자의 삶에 각각 적용해 주는데, 여기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머리로 이해하는 납득의 즐거움에서, 가슴 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성경, 신앙의 표준문서들, 그리고 이 책까지 3종이면 ‘신앙의 알파와 오메가’를 다 가질 수 있지 않을까”라며 “바빙크의 <교회교의학>이 백과사전 같은 책이라면, 이 책은 내가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고 나아가 심장으로 내미는 일을 하게 하는 책”이라고 덧붙였다.

빌헬무스 아 브라켈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
▲이날 평일 저녁 열린 출판기념회는 이례적으로 100명 이상이 참석했다. ⓒ이대웅 기자
전 4권의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는 1권에서 신론과 인간론, 기독론을 다루고, 2권에서 교회론과 구원론, 3권에서 성화와 십계명, 기도와 주기도문, 순종과 사랑 등 신앙이 우리 영혼과 마음에 이뤄내는 것들을, 4권에서 금식과 고독, 영적 성장과 사탄의 공격 등 실천적인 부분들을 다룬 뒤 종말론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부록에는 ‘신약과 구약에서 은혜언약의 시행’이 들어 있으며, 1권의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저자 브라켈과 네덜란드 제2종교개혁에 대한 소개, 지은이 머리말 등도 담겨 있다. 한국어판 머리말은 리처드 멀러 교수(칼빈신학교)와 조엘 비키 교수(퓨리턴 리폼드 신학교)가 각각 맡았다. 이날 강연회에서는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 출간을 헤르만 바빙크의 대표작으로 지난 2011년 완간된 부흥과개혁사의 <개혁교의학>에 비견하는 발언들이 자주 나왔다.

지평서원 박명규 대표는 “이 책은 신학과 삶의 일치에 힘썼던 네덜란드 제2종교개혁(Nadere Reformatie)의 대표작이다. 이 운동의 기조를 그대로 반영하듯, 종교개혁 이후 개혁파 정통신학의 유산이 풍성하게 담겼다”며 “그리고 그 신학을 신자 개인의 삶 가운데 끊임없이 적용하고 드러내도록, 책의 모든 부분에서 일관되게 촉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이 책은 자칫 사변적으로 흐를 수 있는 오늘날 개혁신학에 균형을 잡아주고 따뜻한 온기를 전달해 주는 작은 매개체가 될 것”이라며 “이성적이고 스콜라주의적인 사고와 엄밀한 교리를 제시하지만, 저자는 어려운 논리들을 하나 하나 풀어서 논증해 결국 신자들이 삶의 자리에서 그 교리를 소화하도록 도와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