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어학사전에서 ‘부탁’을 찾아보면, 어떤 일을 해달라고 당부하거나 맡김이라는 뜻입니다. 또 청탁(請託)이란 청하여 부탁함을 말합니다.

신약성경 빌레몬서를 보겠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나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이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안에서 상관된 네게랴(몬 1:8-16)”

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의 ‘청탁 편지’입니다. 요즘 정치권에서 ‘청탁’이란 말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주로 자신이나 자신의 자녀 그리고 일가 친척 등의의 출세나 부귀영화를 위해, 필요에 따라 청탁을 합니다. 어찌 보면 세상에서의 청탁은 나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빌레몬서에서 말하는 바울의 청탁은 아름다운 청탁이란 이런 것임을 말해줍니다. 오늘 빌레몬서에 나오는 짧은 청탁의 편지가 당당하게 정경 목록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청탁인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 많은 사도 바울은 수감생활을 하던 중, 도망쳐 나온 오네시모라는 노예를 만납니다. 노예는 사도의 옥바라지를 하던 중,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그를 주인인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이 청탁편지를 써서 보낸 것입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나 바울은 늙은이인데다,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 이러한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체면과 권위를 버리고 빌레몬에게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그 이유는 도망친 노예가 잡히면 사형에 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너그럽게 받아줄 것을 부탁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 신앙의 힘으로 오네시모를 같은 형제로 대해 주라고 간청합니다.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그대가 만약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오네시모를 맞이 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을 합니다.”

사도 바울의 이 부탁이 오늘 빌레몬서의 핵심입니다. 도망친 노예를 자기와 똑같은 형제로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대해 주라는 청탁의 편지 내용에서, 사도 바울의 위대한 이웃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보잘 것 없는 노예 오네시모를 자기와 동등한 형제로 바라보았음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상대가 어떠한 사람이든, 모두가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로 삼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하는 모든 신앙인들 안에서는 더 이상 어떤 차별도, 불평등도 있을 수 없다고 바울 사도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유대인도 그리스도인도 없고, 종도 자유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모든 신앙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 믿음으로 빌레몬서를 기록한 바울 사도의 겸손과 사랑을 우리에게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우리 신앙인들에게 주신 은혜를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시기하거나 험담하지 않고, 힘 없고 약한 이들에게 진정으로 존중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 심정을 성령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늘 주님께 부탁하며 애원해야 하겠습니다.

도망간 오네시모를 위해, 바울은 그가 도둑질을 하고 도망간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이라고 부드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빌레몬이 도망간 오네시모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노예 오네시모는 주인으로부터 도망을 쳤으나, 하나님께서는 오네시모가 바울의 복음과 전도를 받고 변화되어 새 사람으로 거듭나므로 주인 빌레몬에게로 돌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빌레몬서를 통해 바울이 얼마나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존중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아름다운 청탁의 참모습을 보여줍니다.

교회 안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이웃들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청탁을 하고 부탁을 합니다. 교회 부흥을 위하여, 그리고 주님 주시는 사랑을 위하여, 전도를 위하여,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청탁을 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이겠습니까?

교회 당회와 노회, 그리고 총회에서 이뤄지는 금전 살포와 향응 제공은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버젓이 살아있는 나쁜 청탁 때문에 기독교의 정신은 점점 흐려져 가고 퇴색되어 가며, 신앙인으로서의 참된 모습 역시 사라져가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신앙인으로서 세상 어떤 힘에 억눌리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청탁하고 부탁하는 일은 사라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모를까,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섭리에 절대 순종함으로 나아가며, 하나님을 의심하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는 청탁의 말로는 반드시 화로 다가오며, 늘 불안하고 마음이 초조하며 하루도 편히 잠을 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옳지 않은 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에, 마음과 육신은 늘 괴롭기 때문입니다. 심판대까지 회개하지 않는 이런 신앙인들은 구원을 얻지 못하는 ‘영적 장애인’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청탁이나 부탁을 하려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 더 완전한 것 아닐까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헛된 시간과 물질을 낭비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 같이 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속이 상하실까요?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의탁하지 않고 세상을 의탁한 사울 왕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실패했음을 깨닫고, 지금 이 순간부터 마음을 정돈하셔서 하나님께로 향한 마음으로 전환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 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마 7:9)”.

오늘 바울 사도께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씀을 고요히 묵상하시고,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와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날 때의 그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자신을 성찰하고 오늘 하루하루를 세상적인 마인드에서 벗어나 주님의 마인드로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

나쁜 청탁은 물리치고 오늘 바울 사도가 보여준 청탁을 배우며, 소외되고 힘 없고 가난한 형제들을 위해 전심을 다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청탁의 신앙인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