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통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신정통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김용주 | 좋은씨앗 | 312쪽 | 13,000원

독자가 책을 선택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조정래 선생은 자기 소설이 출판되면 판매 걱정은 없다며 대작가의 위용을 뽐내기는 모습을 보았다. 독자가 조정래의 작품을 믿고 보아야 하는 위력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필자에게도, 조정래는 멋진 작가이다. 그러나 ‘사상’을 좋아하는 독자는 많지 않다. 특히 ‘기독교 사상’을 좋아하는 독자는 더 많지 않다.

그래서 기독교 출판계가 불황이라는데, 기독교 사상가의 출판은 더 심각한 난맥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상가들은 자기 사상을 펼치는 유력한 장인 출판을 피할 수 없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기독교 사상가들의 작품이 조금씩 출판되어 학문의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그 중 김용주 박사는 기독교에서 좋은 사상가 중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 정통하게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는 자체로 가치가 있다. 두 권의 루터에 관련한 저술, <칭의 루터에게 묻다>(좋은씨앗), <루터 혼돈의 숲에서 길을 찾다>(익투스)에서는 전문가적 모습이 가득하다.

그리고 탁월한 독일어 실력을 근거로 <자유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좋은씨앗)에 이어 <신정통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좋은씨앗)가 출판되었다.

자유주의나 신정통주의 신학을 소책자에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용주 박사의 저술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집필한 안내서로 평가하고 싶다.

그럼에도 주제 자체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러나 김 박사의 필체가 매우 부드럽기 때문에, 독자는 학자의 온유한 필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딴 길이지만, 필자가 하이델베르크에 거주하는 송다니엘 목사에게 독일 학자들의 글이 위력이 있다고 말할 때, 송 목사는 독일 학자들의 글쓰기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저자 김용주 박사도 매우 좋은 글쓰기를 한다. 글쓰기에 모범적 형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덕성 박사는 우리 글쓰기에서 문제점 중 하나를 ‘주어를 생략하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김 박사의 문장에는 ‘주어’가 반드시 있다. 간명한 글쓰기로 독자가 저자의 글을 오해하지 않도록 유도했다.

김 박사는 신정통주의를 냉혹하게 비평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유롭게 개방하지도 않았다. 그러한 상황은 저자가 바르트와 불트만의 글을 그대로 제시하여, 독자가 바르트와 불트만을 평가하도록 유도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매우 제약된 분량이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가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독자가 저자의 인도를 따라, 바르트와 불트만의 저술로 직접 연결해 가는 것이 저자의 성공일 것이다.

필자는 현대신학자를 칼 바르트, 루돌프 불트만, 폴 틸리히로 공부했다. 그런데 김 박사는 폴 틸리히가 영어 사용자라서 그런지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불트만보다 칼 바르트가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칼 바르트 비평’으로 기획했다면 하는 아쉬움도 느꼈다.

필자는 한국교회에서 보수나 진보 모두 현대신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 그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김 박사의 시도는 그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보수 교회도 현대신학자들을 자기 입장에서 분명하게 정립하고 다른 신학으로 확장해야 한다.

김용주
▲저자 김용주 목사는 “정통 보수 교회 목사들이 대표적 자유주의자로 뽑는 사람은 칼 바르트인데, 사실 그는 자유주의자를 가장 강력하게 비판했던 신정통주의자였다”며 “하지만 그들은 진짜 자유주의자들인 리츨, 하르낙, 트뢸치 같은 독일 신학자들에 대해서는 체계적으로 비판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대웅 기자
김용주 박사의 <신정통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술은 보급판으로 구성됐기에, 독자들이 조건 없이 읽어야 한다. 읽을 때 이해를 기대하지 않고 읽어야 한다.

독자에게 무리한 요구이지만, 그러한 독서 훈련은 사상 증진에 큰 기여를 한다. 처음부터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 안개 속 같은 길을 걷다가, 안개가 걷힌다. 안개 속을 걷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안개 속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독자는 이해되지 않지만, 꾸준히 읽어야 한다.

어쩌면 연구자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공부하면서 집필할 수 있다. 독자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독서를 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를 학도로서의 신뢰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암묵적 신뢰 관계를 형성해야 한국 신학은 발전할 수 있다.

<신정통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를 한 번 읽어보라. 두 번 읽어보라. 조정래의 소설은 싱거운 문학 작품이 될 것이다.

조정래의 소설이 밀리언셀러라면, 김용주의 작품은 몇 부 팔릴까?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김용주의 작품을 읽는 사람은 조정래의 무게가 그렇게 무겁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 사상가의 작품은 크리스천에게 놀라운 선물을 제공한다. 번역서가 아닌 한국인 연구자의 글에 대해, 매우 가치를 두어야 한다. 살리기 위한 헌신이 아니라 정말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의 외로운 정진이 빠른 시일에 종식되기를 기대한다. 구원을 사모하는 기독교 사상가들이 한국교회 강단에 가득하기를 소원한다.

고경태
크리스찬북뉴스 운영위원, 광주 주님의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