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포럼 18차 세미나
▲대표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남녀 관계에서 많이 통용되는 말 중 하나가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지만, 이는 사랑을 곡해시키는 말 중 하나다. 사람 사이의 사랑도 그렇겠지만, 이것이 하나님과의 사랑에 적용될 때는 신앙이 완전히 왜곡된다.

이는 하나님께 갸륵한 치성을 드리면 그의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율법의 열심으로 하나님의 환심(換心)을 얻으려다 실패했던 이스라엘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롬 10:2-3).

사랑에 대한 성경의 정의는 전혀 다르다.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 아닌 그저 단순히 ‘주고’, ‘받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대가를 지불하여 사랑을 쟁취하려는 것은 진정한 사랑의 방법이 아니다.

특히 영원 전에 기원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에 근거하여 택자를 부르시는(살후 2:13-14) 하나님의 사랑은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영원에 뿌리박은 하나님 사랑의 경륜이 간과된 채, 죄인이 자기 나름의 종교적 열심이나 열렬한 제스처로 하나님 사랑을 쟁취하겠다고 덤벼드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죄인은 하나님이 아들의 복음을 통해 부르기 전에는 절대로 그에게 나아갈 수 없다. 죄인은 다만 복음의 부르심에 이끌려 하나님께 나아갈 뿐이다.

성경이 인간의 하나님 조우(遭遇)를 말하면서,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른다(요 10:3-4)”는 수동태(受動態)를 취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이끌리지 않고 자연인의 종교심 발분으로 신(神)을 찾는, 소위 구도심(求道心) 같은 것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이런 구도자(求道者)들을 성경은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듣는 자(겔 33:31)’,‘예복을 입지 않은 자(마 22:11)’, ‘문이 아닌 담을 넘어온 자(요 10:1)’등으로 일컬었다.

자연인의 종교적 구도심(求道心)으로 만났다고 하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神)이다.

인간의 하나님 조우(遭遇)는 어딘가에 있을 하나님과 그의 궤적(軌跡)을 무한 추적하다가 운 좋게 맞닥뜨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혹은 망망대해의 조난자(遭難者)가 허공을 향해 ‘구해 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우연히 구조자와 맞닥뜨리는 것 같은 것도 아니다.

또는 청춘 남녀가 오다가다 우연히 옷깃이 닿아 서로에게 빠지는 부평초(浮萍草) 사랑 같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은 영원 전 그의 예정에 뿌리박은 의지적이고 선택적인 사랑이다. 그런 영원한 사랑이 한낮 종교적 구도심이나 ‘환심사기(Ingratiation)’ 같은 것으로 쟁취될 수 없다.

◈더할 것 없는 오롯한 사랑

하나님 사랑은 완급(緩急)을 조절하여 찔끔찔끔 주어지거나, 대상에 따라 사랑의 질과 두께가 달라지지 않는다.

또 누구에게는 이런 사랑을 누구에게는 저런 사랑을 주는, 사람 따라 사랑의 색깔이 다르지도 않고, 더 얹어줄 것도 더 뺄 것도 없이 모두에게 똑같이 오롯하다.

이는 하나님 사랑의 엑기스인 아들을 내어주신 사랑이기 때문이다. 택자 모두에게 단번에, 전체로 온 독생자의 사랑은 수납자 모두를 공평하게 만들어 불평할 것이 없게 했다.

간혹 자기의 주관적 경험과 해석에 따라, 마치 하나님 사랑에 차별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자기는 특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인데, 거기엔 뭔가 자기만의 남다른 것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물론 직접 그렇게 말하진 않지만 전체 요지가 그렇고, 듣는 이들에게 ‘하나님 사랑은 자기하기 나름이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잠 8:17)’라는 구절을 즐겨 인용한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들이 생각하듯, 하나님 사랑은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사랑의 조건성을 말한 것이라기보다, 사랑은 주고 받을수록 더욱 풍성히 교감됨을 말한 것이다.

이들과는 달리, 정말 겸비함으로 독생자의 사랑에 감읍해 하는 이들도 있으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러한 그들의 태도에서 ‘독생자 사랑도 사람마다 다 다르게 주어지는가? 왜 내게는 저런 절절함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이는 그가 독특한 사랑을 받은 때문이라기보다는 깨달음에서 온 차이이다.

비유컨대, 빵 한 덩이의 객관적인 가치는 동일 불변이지만, 배부른 자에게는 하찮고 며칠 굶은 이에게는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 것과 같다.

옥합을 예수님 머리에 붓고 눈물로 발을 씻기고 입 맞추기를 쉬지 않은 마리아는 우리와 동일하게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죄사함의 은혜를 많이 깨달았기에 그런 절절한 반응을 할 수 있었다(눅 7:44-48).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도록(엡 3:18-19)”기도한 것도 이미 받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의 기도 제목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목적도 독생자의 사랑을 더욱 깨닫고 확신하도록 하기 위함이다(롬 5:5, 고전 2:12).

◈믿음과 사랑

‘믿음’과 ‘사랑’을 조화시키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의 변증법적 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예컨대 예수님이 베드로를 향해 “나를 믿느냐?”라고 묻지 않고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15-17)”라고 물은 것을 보며, ‘사랑’이 ‘믿음’에 앞선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때때로 ‘믿는 것’을 ‘사랑하는 것’과 동일시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성 프란시스(Francis) , 어거스틴(Augustine) ,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같은 위대한 교회사적 인물들도 종종 그랬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고전 13:13)’라는 성경 말씀처럼, ‘믿음’과 ‘사랑’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또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다(고전 13:7)’고 했듯, ‘사랑’의 속성에 ‘믿음’이 포함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둘은 엄격히 구분된다. 하나님 사랑이 위대하지만 결코 그 사랑이 믿음을 대신할 수도, 믿음을 앞설 수도 없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사랑에 들어가도록 이끄는 향도(嚮導)가 믿음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믿음으로만 수납되고 일구어진다.

믿음 없이 하나님과의 사랑을 도모하는 것은 죽은 자가 사랑을 하려는 것과 같고, 사람 없는 빈 창문가에서 홀로 부르는 세레나데(Serenade)와 같다.

하나님에 대해 죽은 죄인은 먼저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로 살아나, 하나님이 그에게 알려진 후에라야 그를 사랑할 수 있다.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손이고, 하나님 사랑에로의 진입로이다.

믿음 없이 하나님 사랑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없다. 믿음만이 하나님의 사랑의 문을 열 수 있다. 믿음만이 영원에 기원한 하나님 사랑을 소환할 수 있으며, 하나님 사랑의 실체인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이끌어 가고, 성령의 부어짐과 가르침을 받게 한다.

물론 ‘믿음’과 ‘사랑’은 순환적(循環的) 관계에 있기에, 때로 둘은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서로를 북돋고 격려한다. ‘믿음’으로 ‘하나님 사랑’이 알려지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하나님 사랑’이 마음에 부어지므로 ‘믿음’이 더욱 견고하고 확실해진다.

아마 이런 둘의 순환적 관계가 오해를 불러 일으켜,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과 ‘사랑’을 동일시하거나 ‘사랑’을 ‘믿음’에 앞세우기도 하는 것 같다.

하나님 사랑을 받길 원하는가? 환심(換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쟁취하려고 하지 마시라. 그러면 하나님 사랑은 천리만리로 도망친다.

그저 믿으라.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롬 8:39)’을 취하라.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