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음한 여인과 예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중 한 장면.
본문: 누가복음 5장 7-8절

주님께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실 때 게네사렛 호수, 또는 디베랴 바다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주님이 분부하신 대로 순종하여 고기를 엄청나게 많이 잡았습니다.

베드로가 생각을 뛰어넘어 기적처럼 많이 잡힌 고기를 보고, 엉겹결에 고백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에는 오늘날 우리가 다시 새겨야 할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이 본문을 배경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나의 존재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8절)”.

시몬 베드로가 주님의 위력을 체험하고 엉겁결에 한 이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 고백은 중요한데, 주님의 신성(神性)을 체험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전까지만 해도 주님이 그 당시 존경을 받던 랍비, 그보다 더 큰 지식과 권위를 가지신 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은 반드시 죄인이라는 신앙적 고백입니다.

이는 좁은 자기의 존재의 틀을 깨는 외침이었습니다. 자신의 경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던 그에게, 주님은 엄청난 위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실로 시몬 베드로는 홀로 삶을 꾸리기 위해 고군분투하여 그치지 않는 싸움을 해 왔습니다. 그는 삶의 굴곡이나 위험한 상황에서도 부질없는 싸움을 그치지 않는 피곤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던 베드로는 이제 주님의 위력을 체험하여, 오래도록 자신의 작은 소우주 안에서만 갇히어 살던 태도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는 보다 큰 대우주로 연결되는 지평을 여는 삶의 전환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도도한 흐름의 물결로부터 스스로 자신이 되라는 개인화의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특정한 공동체나 단체의 경계 밖에서 우리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새기게 됩니다.

2. 주님을 많이 오해했습니다

베드로는 이전까지 ‘선생’이라고 불렀는데, 고기를 엄청나게 많이 잡고 난 후 ‘주여!’라고 호칭합니다. ‘주’라는 호칭은 헬라어 ‘큐리오스’로,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에 대해 한 인간이라는 생각으로부터, 하나님이라는 생각으로 변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존재를 정확하게 인식하게 되면, 존재에 대한 대응과 태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무엇이든 간에 두 번만 반복하면 하나의 전통이 되는 삶에서, 베드로는 스스로 안전을 지향하는 본능을 고수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전통의 틀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드넓은 우주 속으로 나아가라는 놀라운 변화를 추구하며 도전을 촉구하십니다.

바야흐로 오늘날은 세속화가 확산되고 새로운 생활 패턴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에게 지향과 의미의 정박지를 제공했던 신앙의 이정표마저 사라지는 것 같은 현실입니다.

개인의 심리적 안정성이 상실되고 탈주술화와 함께 내적인 고향상실에 인간은 홀로 남겨진 존재라는 외로움을 경험합니다.

칼 융(C.G. Jung)이 표현했던 대로 “천둥은 더 이상 분노한 신의 목소리가 아니고, 번개도 신이 던진 징벌의 창이 아닌” 정신적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위력의 말씀, 그 능력을 더욱 힘입을 때입니다. 실로 주님을 더 깊이 아는 믿음과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3. 제가 너무 교만했습니다

교만은 스스로 자신을 높이어서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되거나, “나의 생각은 거의 틀리지 않는다”고 할 때 이미 교만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만한 상태에 이르면 대개 이런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알아보지 않고 결정한다, 상의하지 않고 통보한다, 배우려하지 않고 가르치려 한다, 남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운다, 스스로 자신을 겸손하다고 생각한다 등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지식을 최고의 것으로 알고 자신의 경험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주님의 명령도 무시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교만한 태도는 바로 “내가 할 수 없으면 주님도 할 수 없다”는 불신앙의 진수입니다. 이런 사려 깊지 못한 베드로의 태도는 그대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전체 기독교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교회만 잘 하면 된다는 개교회중심의 선교, 사회봉사, 그리고 목회가 모두 그렇습니다. “교회를 세습하지 않겠다”고 했으면 그것을 지켜서 본을 보여야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어느 대형교회의 모습이 꼭 그렇습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정리

이제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주님과의 관계를 확인해 가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없다면 주님도 할 수 없다는 불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물이 찢어지도록 풍성한 결실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주님을 깊이 알아가는 삶이 되도록 도우시옵소서! 나의 잘못된 생각으로 주님을 오해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그리고 주님 앞에서 삶의 자세를 낮추며 살아가는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을 올바로 알고 주님 앞에서 자세를 낮추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