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와 만나다
교부와 만나다

아달베르 함만 | 이연학·최원오 역 | 비아 | 380쪽 | 18,000원

교부는 개혁신학의 저수지다. 칠흑 같은 어둠이 짙게 내린 중세의 밤이 한참일 때, 한 사람이 교부들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무도 자신을 지지하지 않을 때 그는 교부들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곳에 이미 자신이 생각하고 고민했던 진리가 있음을 보았다.

암브로시우스, 어거스틴, 그리고 중세의 경건한 주교였던 캔터베리의 안셀무스도 그 진리를 설파하고 있었다. 그는 드디어 ‘화체설은 성경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름은 존 위클리프이다. 아직 종교개혁이 씨앗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때, 그는 그렇게 교부들을 통해 진리를 체득한 것이다.

루터와 츠빙글리, 칼뱅은 어떤가? 그들은 ‘오직 성경’을 외쳤지만 교부들의 전통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부들을 사랑했고, 교부들의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이것이 단지 개혁신학 안에만 머문다 해도, 그 가치는 가늠하기 힘들 것이다. 교부 신학은 성공회, 정교회, 심지어 가톨릭에 자양분이 되어준다.

교부들의 시대는 논쟁의 시대요, 변증의 시대요, 변혁의 시기였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대체로 니케아 회의(The Council of Nicaea, 325)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니케아 회의는 초대교회 교리를 니케아 신경을 통해 집약적으로 정리했다.

현대 교회가 사용하는 사도신경은 니케아 신경과 칼케톤 신경(The Council of Chalcedon, 451)이 합해진 형태의 신앙고백서이다. 물론 사도신경은 그 이전에 틀을 완전히 가지고 있었지만, 칼케톤 공의회를 통해 삼위일체가 교회 안에서 확정됨으로 사도신경은 공식적 차원에서 진정한 신앙고백의 권위를 지니게 된다.

교부들의 시대가 니케아 공의회 이전과 이후로 갈리는 결정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함으로 더 이상 핍박을 받지 않고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밀라노 칙령(Edictum Mediolanense 313) 이후 기독교는 수적으로는 폭발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순수했던 진리는 부패하기 시작했고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교회는 나오지만, 입술로는 예수를 주로 고백하지만 삶은 없고 진정한 의미의 ‘앎’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성경의 중요한 교리를 집약적으로 정리하고 교회에 입회하는 이들에게 바른 신앙고백을 받아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로 인해 교회는 급격하게 교리화 되어갔고, 생동감이 넘치던 교회는 화석화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일어났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칼케톤 공의회는 이러한 폭풍을 뚫고 초대교회가 진리에 정직하게 반응하여 남긴 교리의 핵심이요 교리 중의 교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비아출판사에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이 책은 원래 성바오로출판사에서 2010년 번역 출판된 <교부들의 길>을 비아에서 받아 전면 개편하여 새옷을 입힌 것이다.

현재 교부 문헌은 분도출판사에서 계속하여 출판하고 있다. 특히 성염 신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문헌들을 끊임없이 번역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간략한 개론서에 불과하지만, 좀 더 확장된 개요서는 H. R. 드롭너의 <교부학>이 있다. 2000년과 2001년 CH북스에서 헨리 베텐슨의 <초기 기독교 교부>와 <후기 기독교 교부>를 출간한 바 있다. 그 외에 김광채의 <교부열전> 상·하권이 있다.

놀라운 사실은 분도출판사에서 성경 본문과 교부들의 해석을 곁들인 <교부들의 성경 주해 신약성경>을 연이어 출간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부들의 문헌에 목말라 하고, 그들의 신학사상을 접하고 싶은 이들에게 단비와 같은 책들이다. 상업성이 극히 낮은 교부 문헌을 끊임없이 출간하는 분도출판사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인 아달베르 함만은 ‘교부학자’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입회하여 사제서품을 받는다. 2000년 9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 전까지 900여 편의 책과 논문을 남긴 위대한 인물이다.

그는 교부의 서적들을 현대화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했으며, 특히 사회적 필요에 따른 교부들의 주장과 문헌들을 현대적으로 다시 해석하고 풀어내는 작업을 했던 인물이다. 이 책은 그의 저작물 가운에 하나일 뿐이며, 교부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문서이다. 함만이 숨을 거두기 얼마 전,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써내려간 것으로 여겨진다.

가장 초기 문헌에 속하는 <디다케-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을 시작으로, 중세의 시작을 알리는 대 그레고리 이후 교부인 다마스쿠스 요한(650-750경)까지 다룬다.

교부
▲The Church Fathers, 11세기에 그려진 교부 사진. ⓒ정현욱 목사 블로그
1부에서는 ‘예루살렘에서 로마로’라는 제목으로 초기 교부들을 다룬다. 1-2세기에 해당되는 이 시기는 속사도 시대로 불리는 시기이며, 변증을 위한 목적으로 저술된 것들이 많다.

대부분 소아시아와 알렉산드리아, 시리아 지역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로마의 클레멘스, 헤르마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등이 있다. 우리가 종종 들었던 서머나 주교 폴리갑의 순교 이야기 등이 시기에 기록된 것들이다. 내용은 전체적으로 목양을 위한 서신이나 저술들이 대부분이다.

“편지는 공동체와 공동체, 지방과 지방, 그리고 목자와 신자를 연결하는 다리 구실을 했다. 각 지역 교회들은 서로의 일치를 돈독히 하기 위해 편지를 썼는데, 소식 교환에서 훈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포함한다(45-46쪽).”

초기 교부 문헌은 신약성경을 베껴 놓거나 해석해 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로마의 클레멘스가 고린도교회에 보낸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편지>나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의 <일곱편지>들은 바울서신을 닮아 있고, 신약 성경에 나타난 내용들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로마의 클레멘스는 1세기 말에 생존해 있던 인물이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아직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서머나의 ‘이그나티우스의 편지들은 그리스도교 문헌학의 진주(48쪽)’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 부활시키심으로써 다가올 우리 부활의 맏물로 주신 주님께서 미래의 부활에 대해 어떻게 끊임없이 드러내 주시는지를 살펴봅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해진 때에 일어날 부활에 대해 상각해 봅시다. 낮과 밤은 우리에게 부활을 보여 줍니다. 밤은 잠들고 낮은 일어납니다. 그리고 다시 낮은 떠나고 밤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열매를 예로 들어 봅시다. 씨는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어느 부위에서 생겨납니까? 씨 뿌리는 이가 밭에 나가서 땅에다 씨를 흩뿌립니다. 씨는 땅에 떨어져 마르고 벌거벗은 채 해체됩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 해체된 것에서부터 놀라운 섭리로 씨를 되살리시니, 단 하나의 씨에서 여러 개가 나와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의 클레멘스 <고린도인에게 보내는 편지(4:11-5)>”

초기 교부 문헌들이 실용적 관점에 지나치게 치우친 면이 적지 않으나, 이그나티우스의 편지들은 목양과 실용을 충분히 담지하고 있으며, 내면의 고뇌가 담긴 순교적 고백이 적지 않다.

노련한 저자는 명료하게 “이그나티우스의 핵심 가르침은 일치(48쪽)”라고 단언한다. ‘일치’라는 단어 속에는 교회가 분열의 상황 가운데 놓였으며, 이단으로 인해 바른 교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짧지만 명료하고 강력한 해석들은 교부 문헌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된다.

3세기는 박해의 시기인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 들어오는 시기였다. 교회는 시대적 요청에 대응하기 위해 더욱 조직화되었고, 체계화되었다.

먼저는 교계 제도는 세 단계로 정형화되었고, “예비 신자 기간은 3년으로 굳어졌다(101쪽).” 이러한 상황 때문인지, 3세기의 교회는 “비범한 저술가들을 배출하기 시작했다(102쪽).”

용어도 전문화되었고, 신학과 주석학도 탄생시켰다. 저자가 첨부한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에 나타난 성만찬에 대한 예전은 상세하고 신학적이다.

“아버지, 저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며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봉헌하나이다. 또한 저희가 아버지 앞에 나아와 봉사하시니 감사하나이다(106쪽).”

오리게네스와 터툴리아누스, 키프리아누스 등 3세기 교부들은 박해로 인한 순교적 열망을 강조할 뿐 아니라, 이단과 박해의 상황을 성경적으로 해석해야 할 책임을 떠안는다.

‘사람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우리가 믿는 예수는 육신을 입었는가? 그렇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등 쏟아져 오는 질문에 답해야 했다.

교부들의 저술들은 좀 더 신학적이고, 체계적이며, 변증적이 되었다. 신학은 점점 발전했고, 풍성해졌다. 황금기에 해당되는 4-5세기는 3세기 선배들 덕분에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다.

황금기는 공의회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가 창조되었다는 아리우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325년 니케아 공의회가 개최된다. 381년 아리우스 주의를 종식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열린다.

별다른 합의를 이루지 못한 에베소 공의회와 사도신경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완전한 조화를 다룬 칼케톤 공의회가 451년에 개최되었다.

이 책을 덮었을 때, ‘2년 전에만 나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먼저 들었다. 국민일보에 교부 문헌들을 소개하면서, 교부 문헌 소개서나 문헌들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던 탓에 애를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분도출판사에서 출간된 교부 문헌들을 샅샅이 훑어가며 읽고 또 읽었다. 개요서 몇 권을 참고하며 진액을 쏟아냈지만 만만치 않았다.

이 책은 시대적 특징과 교부들의 특징들을 명료하게 설명한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신자라도 충분히 소화할 만큼 쉽고 간결하다.

수십 년간 교부 문헌을 직접 읽고 분석하고 수많은 논문을 통해 해박한 지식을 쌓은 덕분에, 글은 간결하나 집약적이고 명료하다. 또 한 번 가톨릭 신학자에게 빚을 진다.

지금까지 읽은 그 어떤 교부 개요서보다 쉽고 명징하다. 진심으로 교회의 뿌리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정현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양구장로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