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세례를 받고 '문지방에 선' 이 시대의 '지성' 이어령 박사와 영인문학관에서 만나, 교회와 기독교, 성경 읽기, 부쩍 다가온 인공지능(AI) 시대 등에 대해 대담을 나눈 현장.

-건강은 어떠신지요.

알다시피, 저는 지금 (치료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냥 암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약도 안 먹어요. 왜? 제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죽음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발자국 소리로 오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죽음에 관한 것 아닙니까? 백 마디 말 해도 소용 없습니다.한 번밖에 없는 사건이 탄생과 죽음입니다.

종교만이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다 사라지게 하지요. 그러니 나의 종교는 이제 시작하는 것입니다. 맞닥뜨리는 것입니다. 우리 딸은 훌륭히 그걸 해냈지요. 암이 숨었을 정도로. 죽기 직전 한두 시간까지 말입니다. 암이 우리 딸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죽음은 그의 신앙에 있어 하나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제 딸은 처참하게 마르고 끝까지 고사해서 처절하게 죽어가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부로서 빛나는 얼굴로 서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얼굴이었어요. 암도 그의 사랑과 신앙을 부수지 못했습니다.

저도 닥쳐봐야 알지만, 초연하게 글 쓰고 할 것 다 하면서 마치 영원히 사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성경의 말이 아니라, '까마귀 죽으려 할 때 그 소리 슬프지 아니한가. 사람이 죽으려면 그 말이 착하지 아니한가' 하는 증자(曾子)의 말입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언이 진실한 것입니다. 살아있을 때부터 유언하듯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많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선 거짓말을 안 합니다. 지금 말하려는 것은, 죽음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 되든 안 되든,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은 종교뿐이라는 것입니다. 문학이 할 수 있나요, 경제가 하나요? 다 살아있는 것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예수님, 죽으셨으니 부활... 종교만 죽음 다뤄


삶과 죽음은 맞닿은 동전 같은 것인데, 그걸 몰랐습니다. 죽음을 몰랐다는 것은 생명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은 죽음이자 생명입니다. '죽을 수 있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이 없지만, 예수님을 따라가면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육체를 따라 부활한다는 게 아니라, 내 삶이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도 다시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시라고 하니, 그제야 베드로는 바다에서 뛰어나왔지요.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하신 예수님, 성육신하신 인간으로서의 신이지만, 부활 후에는 신이면서 지상에 머무르셨습니다. 우리와 전혀 다른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의 문제는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그러니 누구든 종교가 없을 순 없습니다. 죽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죽음이 뭔지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죽음은 종교에서만 다루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