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은 목사
▲이영은 목사
복음은 능력이 있는데 왜 그리스도인들은 그 능력을 누리지 못하고 살까? 복음자체에 사람의 영과 육을 찔러 쪼개는 폭발적인 힘이 있는데, 복음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어도 불신자들 보다는 잘 살아야 맞는 게 아닌가?

 
논리는 맞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일까? 제 사역의 고민이니 저의 삶의 전체를 놓고 고민했던 문제입니다. 잘사는 것은, 부자로 사는 것만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풍요롭게 그냥 잘 사는 것을 말합니다.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 니라"(레 18:4~5)

복음이 무능력한 게 아니고 복음을 받는 우리 안에 죄가 가득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강팍한 마음 때문에 불순종이 가득한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유는 명백합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니 그분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못해서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과는 구별된 삶이 따로 정해 있습니다. 살고 있는 세상의 문화와 가치관을 따라서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살면 안됩니다. 세상문화와 가치관은 사람이 보기에 좋은 대로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진리가 아닙니다.

인생이 고통스러운 것은 진리가 아닌 것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진리 안에 들어와야 질서대로 바로 잡히고 진리 밖에 나가면 거짓과 속임에 끼여서 뒤틀리고 부서지는 것이 원리입니다. 그러니 진리 밖에서 사는 게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진리 밖에서는 잘 살 수가 없습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그 말씀대로 따르고 지키고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말씀대로 행하며 사는 진리가 무엇인가? 먼저 인간의 성적인 관계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그어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성적인 관계는 오직 부부사이에서만 이루어질 관계입니다.

부부이외의 사람이나 동성이나 짐승이나, 상대가 부부가 아닌 그 선을 넘으면 창조의 질서가 파괴되어 고통당하다가 죽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됩니다. 그때 땅이 질서를 깨어 더럽힌 사람들을 스스로 자기에게서 토해 냅니다(레 18;25).

먹고 사는 길마저 막히게 되니 더 고통당하게 되겠지요,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고 하나님처럼 의미를 두고 섬기면서 의지하면 하나님은 그에게 더 이상 하나님이 되지 못하십니다. 그런 자의 삶은 어떻게 될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 하나님은 추수할 때 곡식을 다 거두지 말고 조금 남겨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고 땅에 흘려 두고 포도원 열매도 깨끗이 다 쓸어 줍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눈동자에는 가난해서 먹고 살길이 없는 힘없는 사람들이 들어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살면서 손해보고 받을 거 다 못 받아도 억울할 게 없습니다. 나에게서 떨어지는 남은 것은 더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겠지요... 하나님을 정말 믿고 경외하는 사람은 그 인격이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예절 바르고 정갈한 성품이 꾸민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사람, 그가 그리스도인입니다.

"너는 센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 이니라"(레 19:32)

구체적으로 기록된 것을 묵상해 보니 얼마나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사는 소소한 하루하루의 일상생활입니다.

이영은 목사(서울 마라나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