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남궁억 보리울의 달
▲만화 <한서 남궁억> 中. 저자 김재욱, 그림 최현정, 제작 키아츠. ⓒ키아츠 제공
백발의 소년 같은 남궁억 교장은 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 들고 불기 시작했다. 흰 수염을 휘날리면서 흥취를 돋우면 아이들은 하모니카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둥실둥실 춤을 추었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 힘을 낼 필요가 있었다. 기가 죽어 움츠러들면 더 절망스러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다. 절망이란 건 그 속에서 헤쳐 나오지 않으면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무서운 병이었다.

그러므로 특히 한창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나쁜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가슴속의 꿈을 한껏 키우면서 활발해야 한다고 남궁억 교장은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글쓰기, 그림 그리기, 붓글씨 쓰기 등 예술적인 활동을 중시했던 것이다. 예술은 찌들린 마음을 정화시켜 기운을 북돋워 주므로 유익하다는 얘기였다. 언젠가 수업시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음악과 미술은 영어나 산술 과목에 비해 실용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느끼고 스스로 표현하게 해줍니다.

세상을 악의 무리가 지배하고 있다 해서 우리까지 추악해지면 안 되지요. 우리는 아름다움을 지키는 정의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은 부드럽지만, 결코 약하지 않고 아주 강합니다.

여러분, 가만히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아름다움은 정의와 서로 통하지 불의와 통하지는 않잖습니까? 불의한 것은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용기가 있을 때 나타납니다. 비겁한 아름다움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는 잠시 쉬었다가 계속했다.

“왜 아름다움이 정의로운 용기와 통하는지 살펴봅시다. 우리는 진선미(眞善美)를 서로 묶어서 말합니다. 그 이유는 참됨과 착함과 아름다움이 하나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것이 아름답게 보일 경우가 간혹 있지만, 일순간일 뿐이며 오래 가지 못하잖아요. 또 악한 것이 순간적으로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어도 결국은 정체가 밝혀지면 더욱 추악해 보이지요. 그러므로 참되고 착한 것이 아름다우며, 정녕 아름답기 위해서는 진실하고 착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울 때 마음 속에 참된 용기가 생겨남을 느낍니다. 정의로운 용기는 진선미와 서로 통하기 때문이죠. 일본은 참되지 않고 착하지 않고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거짓되며 악하며 불의한 짓으로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머지않아 멸망하게 되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아름다움은 진실하고 선하기 때문에 강한 힘이 있음을 명심합시다! 저 아름다운 우리의 꽃 무궁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예술 중에서도 특히 노래는 서로 감정을 통하게 해 공동체 의식을 높여 주므로 남궁억은 좋은 노래를 많이 만들어 보리울의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나아가 전국적으로 보급시켰던 것이다.

보리울의 달 한서 남궁억
▲소설 <보리울의 달> 저자 김영권, 제작 키아츠 <보리울의 달>은 한서 남궁억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한서 남궁억 선생의 소설화된 파란만장한 인생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통찰하도록 안내한다. 만화 <한서 남궁억> 저자 김재욱, 그림 최현정, 제작 키아츠 <한서 남궁억>은 남궁억 선생의 위대하고도 큰 뜻을 남녀노소 모든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만화로 표현한 책이다. 남궁억 선생이 여러 등장인물과 역사를 헤쳐 나가는 이야기가 실감나고 흥미롭게 담겨 있다.
하모니카 연주를 마친 남궁억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자, 여러분! 우리 함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할까요?”

“네, 좋아요!”

아이들은 퍽이나 좋아했다.

술래가 가장 큰 무궁화나무에 이마를 댄 채 크게 외쳤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아이들은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술래의 외침이 끝나자 그 자리에서 모두 그대로 동작을 멈추었다. 어떤 아이는 팔을 짝 벌린 모습, 또 다른 아이는 한쪽 다리를 든 채 달리는 모습, 어떤 아이는 웃는 눈으로 뒤돌아보는 모습 등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나 한쪽 다리를 든 아이는 딱 멈추지 못하고 한 발을 더 내딛고 말았다. 그 아이는 술래에게 걸려서 새로운 술래가 되었다.

이 놀이에는 남궁억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이 놀 때마다 자연스레 무궁화 꽃을 상기시키고, 또 적이 어디까지 쳐들어왔는지 늘 경계하는 자세를 몸에 배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5천 년 역사 속에서 시련을 이겨내고 우뚝 선 민족인데 어디를 쳐들어오느냐. 일본, 러시아, 미국, 중국 등 4대 열강은 우리를 만만히 보지 말라.’ 하는 더욱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곧 무궁화는 조선 민족을 의미했고 조선의 자주와 독립을 의미했다.

이 놀이를 가벼이 보지 않던 일본 관리는 남궁억 선생이 없을 때 아이들에게 “무궁화는 진딧물이 많이 끼어 지저분하다, 만지면 부스럼이 생기고 바라보면 눈에 핏발이 선다.”라는 둥 억지스러운 낭설을 퍼뜨리며 무궁화에 대한 애정을 차단하려 애썼다.

하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무궁화를 기르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아무도 일본 관리의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다시 가을이 왔다.

수탈당해 피폐해진 땅이건만, 그래도 하늘은 한없이 높푸르고 시원한 바람이 산들산들 불었다. 풀벌레 소리도 여전히 정겨웠다.

남궁억은 새벽이면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서 성경을 한 구절씩 읽었다.

“마음이 가난한 자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가 저희 것이요
슬퍼하는 자 복 있나니 저희가 위로 받으리라
온유한 자 복 있나니 저들이 땅을 받을 것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 있어 저희가 의롭게 되리라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 있어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마음이 깨끗한 자 복 있나니 저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
화평케 하는 자 복 있나니 저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 복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

그는 결코 습관적으로 성경을 읽는 게 아니었다. 그 뜻을 잘 음미하여 가능하면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성경이 비록 하나님의 말씀일지라도 그걸 기록하고 인쇄하여 펴낸 건 사람이 한 일이므로 혹시라도 현실과 괴리가 없는지 곰곰이 살피며 읽었다.

교회에 나가서도 그의 올곧은 성품은 나타나곤 했다.

그는 심한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관절염을 앓았다. 그래서 약으로 쓰기 위해 오가피, 우슬초뿌리 등을 넣어 담은 술을 아침저녁으로 한 잔씩 복용했다. 그러자 술냄새가 난다며 신도들이 항변을 했다.

“장로님이 술을 마시면 계명을 어기게 되지 않습니까?”

그는 굳이 변명하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그럽니다. 과음하지는 않으니 이해 바랍니다. 사실 밥도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날 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해이해지는 것입니다. 십계명도 지나침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지 꼭 필요한 것까지 억지로 금지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김영권 남궁억
▲본지에 <꽃불 영혼>에 이어 <보리울의 달>을 연재하고 있는 김영권 작가.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 원고 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