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이명진 원장.
우연한 계기로 성산생명윤리연구소의 11대 소장 이명진 원장(명이비인후과)을 만나, 일반인에게는 아직 생소한 ‘전문직 윤리운동’의 개념과 그 가치에 관해 듣는 기회를 가졌다. 유용한 내용이 많아 이 르뽀 형식의 글을 통해 독자들께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명이비인후과 병원을 찾았다. 로비에 들어서자 점심시간 전이라 그런지 환자들 진료로 병원이 온통 바쁜 분위기였다. 환자들과 함께 대기실에 앉아 몇 분을 기다리다 드디어 지면을 통해서만 봐오던 환하게 웃는 얼굴을 대면할 수 있었다. 웃는 얼굴의 주인공은 필자의 이름과 자음 하나만 틀려 가끔 혼동이 되는 이명진 원장이다. 만나자마자 첫 질문을 했다.

-지면을 통해서만 뵈다가, 직접 만나니 반갑습니다. 원장님. 우선 지금 전개하고 계신 운동(movement)에 관해 소개해 주십시오.

“네. 보통 Professional Ethics(직업윤리)라 부릅니다만, 의사들은 목사님들과 마찬가지로 드레스코드가 있습니다. 가운을 입고서 진료를 하죠. 그 가운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전문적인 일을 맡기셨다는 뜻의 내포가 있습니다.

보통 전문직(profession)으로 알려진 이 직종은 단순 직업(occupation)을 넘어 특별한 소명을 갖는 천직(vocation)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일반 교육보다 상당 기간을 더 ‘도제교육’의 형식을 띠고 수학하는 이유이며, 또한 특별한 윤리 의식과 직결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윤리를 다른 말로 ‘전문직’이라 부르며, 지금 우리가 전개하는 운동입니다. 전문직은 하나님께 위임받은 권한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리하여 생명을 지키고 세상을 바르게 지키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 뜻합니다.”

곧바로 이어서 물었다.

-그렇다면 그 전문직 윤리는 의사들만의 윤리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의사의 경우는 ‘메디컬 프로페셔널리즘’(의학 전문직업성)이라는 용어를 주로 쓰지만, 그냥 ‘전문직 이념’ 또는 ‘전문가주의’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리말로 쉽게 표현하면, ‘의사다움’이라 할 수 있죠.

따라서 그것은 의사만이 아니라, 교수는 교수다운 면모를 갖추어야 하고, 법관은 법관다운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는 점에서 전문직 종사자라면 적용할 수 있는 윤리의식일 것입니다.”

이명진 원장의 첫 답변을 듣는 순간, 귀가 번쩍 열렸다. 사실 프로페셔널이란 의미가 사회에서는 단지 기술의 전문성으로 인식되다 보니, 그만 ‘상업적인 전문성’ 내지 ‘자격’ 정도로 이해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실상은 ‘직업윤리’란 한 마디로, 영적 의식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원장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 동안 우리가 봐온 원장님의 생명윤리 관련 여러 활동들이 단순한 사회 운동이 아니라 매우 근원적인 자의식 속에 전개된 운동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현재 가장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인 낙태 문제가 있습니다. 신문 지면에서 언뜻 보니, 프로라이프라는 용어로 대두되기도 하던데 좀 설명해 주시지요.

“네. 프로라이프는 흔히 프로초이스와의 대립 관계 속에서 언급하는데, 일반적으로 번역하면 ‘친 생명(pro-life)과 친 선택(pro-choice)’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친 생명과 친 선택’이라고 하면 우리에겐 잘 와 닿지 않죠. ‘반 낙태’(pro-life)와 ‘낙태’(pro-choice)라고 해야 금세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됩니다.

프로라이프는 낙태를 반대하는 진영의 슬로건으로서, 낙태를 허용하자고 주장하는 ‘프로초이스’ 진영과의 첨예한 대립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프로라이프는 단순히 ‘낙태금지’가 아니라 ‘생명권 보호’라는 원천적인 생명윤리를 진정한 의미로 갖습니다.

우리 프로라이프는 ‘낙태는 살인이다’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배아나 태아는 ‘태어나기 전의 어린이’이기 때문입니다. 임신한 여성이 태어난 자녀들과 마찬가지로 태아에 대해서도 동일한 의무를 가지기 때문에, 낙태는 태어난 아기를 죽이는 것과 도덕적으로 동일한 것입니다.

또한 프로초이스는 여러 가지 상황적인 이유로 낙태의 허용을 주장하지만, 생명권은 모든 다른 권리나 상황보다 우선되어야 하고, 태아는 수정된 그 순간부터 인간이며, 태아의 생명권이 다른 모든 행복추구권에 앞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프로초이스들은 사실상 창조의 원리에 반하는 유물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사람이 창조되었음을 직시하면 단순한 문제들인 것을, 사람이 진화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생명을 단지 살덩어리로 보는 오판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프로라이프는 ‘구속사’와도 연결된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프로라이프는 그 자체로 정위된 어휘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프로초이스는 다분히 위장된 용어라 생각되었다. 프로라이프에는 ‘생명’ 그 자체를 기호하지만, 프로초이스는 사실상 ‘죽음’을 은폐한 기호이기 때문이다. 유물론자들은 언제나 용어 선점에서 탁월하다 느끼면서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원장님. 원장님께서는 그와 같은 프로라이프 생명윤리를 위해 직접 현장에서도 큰 활약을 하시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 쉽지가 않으실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감당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네. 말씀하신 대로 쉽지 않았습니다. 기고문과 같은 글쓰기로 어필하는 것은 시간을 잠깐 내면 되지만, 구체적으로 ‘낙태죄 위헌 판결’ 같은 법제와 관련하여서는 사법기관뿐 아니라 입법기관에도 우리의 생명윤리 입장을 전달해야만 하는데, 현장을 꾸리는 것이 단지 물질과 시간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2019년 7월 8일 ‘낙태죄 헌재 결정에 따른 입법과제 정책토론회’를 우리 성산생명윤리연구소에서 주도하였는데, 실무적 입장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와서 들어줄 것인지…, 그런 점이 개인적으로 참 부담이 컸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사실 제가 얼마 전 암 수술을 받아서 금식은 무리가 있는데도, 금식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땅에서 무고한 피를 많이 흘리고, 생명을 죽이면서까지 행복을 찾으려는 입법이 자행되는데 저희는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움직여주십시오.’

그 결과 실제로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는 체험을 했습니다. 국회의 대회의실(450석)에 1,300여명이 참석해서, 복도와 강단까지 올라가 앉는 정도였습니다. 국회 개원 이래 제일 많은 참석자가 모이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함께 준비한 모든 동역자들과 참석한 분들이 모두 하나님께서 이 일에 함께하신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간증을 듣고 마음이 고무된 순간 갑자기 ‘아리마대 요셉’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대로 질문을 했다.

-원장님! 이것은 제가 개인적으로 느껴오던 것입니다만 근간에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 곧 ‘낙태 합법화’ 문제라든지 ‘동성애(혼)’ 문제라든지…, 우리가 과거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의 환경에 직면해 있는데도, 그동안 우리가 영적으로 기대고 의존해 왔던 목회자들은 정작 실망스러울 정도로 전혀 대응하지 못하거나 아예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공공연하게 회피하는 모습까지 보면서 저는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이 종말에 등장시킨 의로운 아리마대 요셉처럼, ‘장로’들을 들어 쓰시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장로님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네. 앞서 직업(occupation)이 아닌 전문직(profession)으로서의 천직(vocation) 개념을 말씀드린 것과 같은 맥락에서, 그것은 의사라는 전문직종에 임하는 자세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직무로서 임하기에, 장로라는 직임과 이원화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종교가 없는 비기독교인 의사와는 또다른 더 큰 무게감으로 임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쨌든 작금의 교회에서 감당하지 못하는 그 공백을 저와 같은 많은 분이 감당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가 어떠한 계기로 이와 같이 깊숙한 일에 관여하게 되었는지 동기가 궁금했다.

-원장님. 이와 같이 능동적인 활동이 있으시기까지는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입법기관에 호소도 하고 이런 적극적인 어필을 하시려면 필경 자극이 있으셨을텐데요.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우리나라 대형 촛불 시위 중 하나였던 일명 ‘광우병 사태’ 때의 일입니다.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약 2개월간 수십만 명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었습니다.

그 때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대한민국 국민이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를 보노라니, 그 보도에 전문직 의사들이 나와서 그 위험을 증폭시키는 장면을 보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반인들은 그렇다 쳐도 전문직 사람들이 저렇게 말하다니, 저건 아닌데… 아닌데…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어떤 지식적 체계를 갖추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또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읽고 공부한 것이 지금의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의외의 답변이었다. 그러나 사회 문제의 뿌리는 한 곳으로 모인다는 평소 생각을 확인해주는 분명한 답변이었다.

대화를 마쳐야 할 시간이 되어 마지막 질문을 준비했다. 앞서 대화에서 나타난 것처럼 사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상당 부분을 이와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신앙인이 자신의 전문성을 토대로 감당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뭔가 교회를 향하여 직설적인 몇 마디 해주기를 바라고는 이렇게 물었다.

-네 그렇군요. 원장님. 끝으로 교회에(목회자들에게도 좋습니다) 바라고 싶은 말씀을 가감 없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심탄회하게 부탁합니다.

“네, 현재 한국교회는 너무나도 개교회 중심으로만 뭉쳐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개교회의 이익에 반한 사태에는 교회에서 큰 목소리들이 나오지만, 사회적으로 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거나 이익과 부합하지 않는 문제에 관해서는 몸을 아끼고 있는 듯하니 아쉬울 따르입니다.

교회들의 그러한 소극적인 자세는 결국 세습이라는 문제로 집약이 되는 건데…, 그러나 아직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논하지 않겠습니다.”

교회를 향한 의외의 짤막한 답변으로 잠시 머뭇거리다 추가 질문을 급조해내고는 마무리했다.

-네 원장님. 말씀 안 하셔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자세히 말씀해주시고, 대신 끝으로 후배 의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십시오.

“네. 제가 얼마 전 책을 한 권 냈습니다(<이명진 원장의 의사 바라기>, 의학신문사). 그곳에는 오늘 제가 대화중에 시종일관 말씀드렸던 ‘전문 직업성’에 대한 구체적인 의식에 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곳에 드리고 싶은 말이 모두 들어 있는데, 한 마디로 줄이면, 모든 후배 의사들께서 부디 ‘굿 닥터(Good Doctor)로서 행복한 삶을 누리시라!’ 하는 바람입니다.”

모든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유독 교회에 관한 마지막 짧고 절제된 그 답변이 마음에 남아 울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도 그 절제 속에 그가 교회에서 겪었을 법한 수많은 상실의 경험이 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사실은 당초 생명윤리(프로라이프)를 지키는 전문직 가치와 그 현장 이야기를 들으러 갔던 자리가 교회를 지키는 요셉을 만나고 온 인상만 남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예수를 생명으로 잉태한 마리아를 보호했던 인물도 요셉이요, 예수의 주검을 무덤으로 들여보내 보호했던 것도 요셉이었다.)

오늘 이 만남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시대가 프로라이프(생명)와 프로초이스(사실은 죽음) 간에 벌이는 대전(大戰) 속에서 ‘생명 원리’를 수호하는 이야기 같지만, 실상은 교회가 상실을 입힌 자들에 의해 정작 그 교회들이 보호를 받고 있는 이야기 전개가 바로 이 ‘생명 수호 이야기’의 실체였다는 사실이다. ‘복음’의 개요이기도 하다.

들을 귀 있는 교회는 듣고, 볼 눈이 있는 교회는 볼 것이다.

이영진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