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남궁억 보리울의 달
▲만화 <한서 남궁억> 中. 저자 김재욱, 그림 최현정, 제작 키아츠. ⓒ키아츠 제공
무궁화 묘포는 한반도 전체를 통틀어 오직 보리울 한 곳에밖에 없었다. 남궁억은 심혈을 기울여 키운 무궁화 묘목을 전국 각지의 학교와 애국단체, 교회나 절 등으로 보급했다.

수십만 주의 무궁화 묘목이 우편배달부의 자전거에 실려 한반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일본 관리에게는 묘목을 팔아 학교의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둘러댔지만, 그의 진정한 뜻은 바로 삼천리 강산을 무궁화로 아름답게 수놓는 데 있었던 것이다.

보리울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의 백성들에게 ‘무궁화 할아버지’로 불린 남궁억의 무궁화 사랑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일본 관리들도 모곡학교의 무궁화 묘포에 주목하게 되었다.

무궁화는 이미 단순한 꽃이 아니라 한민족의 나라를 상징하는 꽃이었다. 그래서 각지로부터 주문받은 무궁화 묘목을 보낼 때는 생김새가 비슷한 뽕나무 묘목과 함께 섞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간혹 뽕나무로 알고 밭에 심었던 사람들은 후에 무궁화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집안의 화단으로 옮겨 심어 정성껏 가꾸며 사랑했다.

한편 남궁억은 “예로부터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았으며 어떤 꽃보다도 은근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지녔다. 그리고 점잖고 겸허한 선비의 풍모를 갖추어 우리의 민족성과 비슷하므로 이 나라를 상징하는 국화(國花)로 삼기에 충분하다”라고 설명한 인쇄물을 만들어 몰래 배포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윤치호와 함께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여보게 한서, 앞으로 우리나라가 독립하면 애국가도 있어야 하고 국화도 정해야 할 텐데 말이야.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남궁억이 대답했다.

“무궁화보다 더 좋은 꽃이 어디 있겠나.”

“음, 그래. 그리고 요즘 내가 애국가의 초안을 한번 지어 보고 있는데 말이네. 한서 자네가 자주 말하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구절을 꼭 넣었으면 해.”

“허허, 내 눈앞엔 이미 그런 모습이 선히 떠오르는군. 더욱 열심히 가꾸어 나가야지.”

그런 노력 덕분에 얼마 후에는 삼천리 강산 어디를 가더라도 무궁화가 환히 피어 아름다운 꽃동산을 이루었다.

식민지의 세월은 느리게 흘러갔다.

그 무렵 총독부는 모든 교육기관에 대한 수업시간을 줄이고 학생들을 각종 토목공사 등에 동원했다. 보통학교 학생까지 송진 채집에 동원하더니 마침내 중등학교와 전문학교 학생들을 학도병으로 강제 징병했다. 전쟁터에 끌려가 꽃다운 목숨을 잃은 학생들이 부지기수였다.

일본은 또한 수많은 조선인을 강제로 징용해 부려먹었다. 처음에는 조선의 값싼 노동력을 모집하여 일본의 토목공사장이나 광산에서 집단노동하게 했으나, 중일전쟁 이후부터는 국민징용령을 실시해 강제동원에 나섰다.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은 5백만 명이 넘었다. 그들은 주로 탄광이나 군수공장에서 가혹하게 혹사당했다.

강제로 징용된 조선인들은 공사 후 기밀유지를 이유로 집단 학살당한 경우도 있었다. 평양의 미림(美林)비행장 노동자 1천여 명과 지시마 열도(列島)로 끌려간 노동자 5천여 명이 집단학살되었다.

남양 지방의 섬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일본군의 후퇴와 함께 동굴 속에 가두어져 무참히 학살당했다.

또한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에 의해 땅과 집을 빼앗기곤 북간도나 만주 등으로 떠나야 했다. 괴나리봇짐을 메고 어린 자식을 업은 채 산 설고 물 설은 이국 땅으로 향할 때 이제 다시 못 올 조국을 생각하면 어찌 눈물이 흐르지 않으랴.

보리울의 달 한서 남궁억
▲소설 <보리울의 달> 저자 김영권, 제작 키아츠 <보리울의 달>은 한서 남궁억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한서 남궁억 선생의 소설화된 파란만장한 인생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통찰하도록 안내한다. 만화 <한서 남궁억> 저자 김재욱, 그림 최현정, 제작 키아츠 <한서 남궁억>은 남궁억 선생의 위대하고도 큰 뜻을 남녀노소 모든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만화로 표현한 책이다. 남궁억 선생이 여러 등장인물과 역사를 헤쳐 나가는 이야기가 실감나고 흥미롭게 담겨 있다.
남궁억은 그런 동포들의 아픔을 느끼며 ‘시절 잃은 나비’라는 노래를 지었다.

해는 져서 서산에 황혼이 되고
바다와 온 우주는 캄캄한데
옥토를 떠나서 어디를 향해
정처없이 어디를 향해 가느냐
애닯다 이천만의 고려민족아
너희 살 길 바이없어 떠나가느냐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을
누구를 주고 자꾸만 떠나가느냐
정든 산천 고국을 등지고
애달픈 눈물방울만 연이어 뿌리며
두만강 푸른 물결 건너서 가는
백의의 단군민족이여….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본은 여자정신대 근무령을 공포한 뒤 12세에서 40세까지의 여성 수십만 명을 강제로 끌고가 군수공장에서 일하게 하거나 군대의 위안부로 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들녘에서 쑥을 캐거나 집에서 일을 하다가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조선 여성들은 각 지역의 여관이나 창고 등에 감금되었다가 목적지로 수송되었다.

조선 여인들은 군병참부의 책임 아래 군용 화물열차나 수송선으로 목적지로 옮겨졌으며 하나의 화물로 취급되었다. 먼 남양군도로 끌려가던 조선 여인들은 수송 도중 미군의 폭격으로 수송선이 격침되어 수중고혼이 된 예가 부지기수였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남궁억의 머리카락과 긴 수염은 순수한 흰빛으로 변했다. 흰 눈썹 밑의 검은 눈동자만이 형형하게 빛났다.

보리울은 남궁억이 가슴속의 꿈을 펼치는 마지막 무대였으며, 지친 영혼을 기댈 만한 이상향이자 마음의 고향이었다.

그는 묘목장 주변뿐만 아니라 학교 곳곳과 강신재 언덕 전체에 무궁화나무를 심어 가꾸었다. 일본의 횡포가 점점 더 심해진다는 소식이 서울에서 들려오기라도 하면 남궁억은 유리봉이나 강신재 언덕으로 가서 자라나는 무궁화나무를 향해 얘기를 나누며 울분을 달래기도 하고 감정이 격해지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무궁화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하나의 고귀한 생명으로서 미래에 거는 희망 그 자체였다.

계절이 바뀌자 강신재 언덕은 제철을 맞은 무궁화 꽃으로 뒤덮였다. 보리울 전체가 분홍색 꽃과 하얀 꽃 그리고 초록 잎새의 물결로 출렁이는 것 같았다.

남궁억은〈무궁화 동산〉이란 노래를 지어 마을 사람들과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우리의 웃음은 따뜻한 봄바람
춘풍(春風)을 만난 무궁화 동산
우리의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또다시 소생하는 우리 이천만
빛나거라 삼천리 무궁화 동산
잘 살아라 이천만의 고려족이여

김영권 남궁억
▲본지에 <꽃불 영혼>에 이어 <보리울의 달>을 연재하고 있는 김영권 작가.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 원고 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