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내 백성은 잃어버린 양 떼로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산에서 언덕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도다(예레미야 50장 6절)”.

이 말씀을 요약해 보면, 유다가 징벌을 당한 것은 그들의 지도자인 왕, 선지자, 제사장 등이 그들을 잘못 인도했기 때문이었으며, 그 징벌의 도구가 바벨론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도구로 사용된 바벨론은 하나님에게 부여받은 도구라는 사명을 망각하고, 스스로 자신들이 하나님이 된 것처럼 교만하게 유대를 학대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하신 것입니다(사 47:1-15). 바벨론은 권력과 부를 누리고 동방을 제패하였지만, 가장 보잘 것 없는 나라로 전략하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이 예언대로, 바사로부터 멸망한 바벨론은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사라져 버린바 되었음을, 신앙인들은 물론 이 나라 백성들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김으로,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았음을 고백하였습니다.

특히 솔로몬은 자신이 아직 미숙한 아이라고 인정하며, 이렇게 큰 민족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함을 시인하고, 민심을 듣는 마음과 나라를 정의롭게 이끌어갈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이에 어여삐 보신 하나님께서 “솔로몬아!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셨을 때, 솔로몬은 자신을 위해 힘 있는 장수를 구하지 않았고, 자신을 위협하는 원수를 멸해 달라고 구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만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요구사항에 흡족해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네 말대로 지혜롭고 총명함을 주겠다”고 약속하시고, “너처럼 지혜로운 왕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라며 많은 부까지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처음 신앙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치세 말기에는 많은 이방 여인들과 정약결혼을 하면서 그들이 가져온 이방신들을 숭배하고, 연로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젊은 사람들의 목소리만 청종하여 이스라엘 나라가 분열되는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비운의 역사는 우리 신앙인들 중 모르는 분들이 아마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현 시국은 두쪽으로 분열되어 점점 쇠약해져 감은 물론, 마치 삼국시대가 되살아나는 듯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듯 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전 국민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자신과 그 정파, 지지자들의 이익만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의 소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니, 다가오는 나라의 위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대통령을 보필하는 비서진, 그리고 대통령이 뽑은 총리를 비롯해 국무위원들, 여당에 속해 있는 국회의원들조차 “예”, “아니요”로 바른 소리를 내는 자가 거의 없습니다.

백성들의 목소리에는 아예 귀를 닫고 야당 탓으로만 돌리는 그 모습들은 참으로 한탄스럽습니다. 마치 이조 시대 적이 쳐들어오는데도 당파 싸움으로 얼룩져 나라와 백성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그 시대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바른 소리를 내면 다음 선거 때 공천을 못 받을까봐, 좋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까봐 자신의 몸을 사리면서 입을 닫아걸고,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우선 “곶감이 달다”고 빈대처럼 붙어사는 간신배들을 보노라면, 울화가 치밀기도 합니다.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의견은 달라도, 백성은 하나입니다. 서로 소통하는 가운데 합의점을 이루어내, 원만히 해결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어느 누구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이 나라 전 국민의 대통령입니다. 어느 한편에만 귀를 기울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교회가 발표한 담화문 3.1운동 정신의 완성인 ‘참 평화’에 깊이 공감합니다. 담화문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 한국교회가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했던 지난 잘못에 대하여 깊이 통감하였습니다.

그리고 말마다 ‘개혁, 개혁’ 하는데, 개혁은 한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부터 스스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인은 개혁하지 않은 채 하부 조직에만 개혁을 강요한다면, 세월이 많이 흘러도 개혁이 이뤄질 수가 없습니다.

개혁이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개혁의 참 뜻은 자신의 정신과 행동, 철학이 먼저 개선되어야 합니다. 자기관리와 과욕과 교만을 이겨내지 않는다면 결단코 개혁을 이뤄낼 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 신앙인들은 날마다 자신을 성찰하며 뜨거운 믿음 속에서 회개의 눈물이 마르지 않는 깊은 찬송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오, 대한 독립의 함성이 천국까지 들려오면 나는 기꺼이 춤을 추면서 만세를 부를 것이오.” 안중근 의사께서 순국 전 남기신 이 외침을 들어 보십시오.

독립운동가이자 참 신앙인으로 살다 고결한 죽음을 당하신, 안중근 의사의 나라 위한 그 마음을 우리 국민들이 뜨겁게 반성하며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16세기 터키 이슬람 교도들은 당시 그리스도교의 중심인 로마를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모든 기독교 국가들의 제왕들과 함께 공동 방어를 다짐하고 연합군을 편성했지만, 현실적으로 약세인 것을 인정하고 특히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간절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결국 1571년 10월 7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결과, 그리스도교 연합군은 대승리를 거두는 쾌거를 이룩하였습니다.

나라가 위기를 맞이했을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비록 수적으로 나 화력으로나 상대방보다 열세에 놓여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면 대승을 거둔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과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최대 위기의 순간이 닥쳐왔습니다.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하여 공직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에 무감각함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고집과 아집으로 일관하고, 상대방에 대해서는 소통과 포용을 허락하지 않는, 참으로 희한한 정치 논리로 나라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목격하노라면 ‘이건 아니다’ 싶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이념에 사로잡혀 나라와 백성을 망가뜨리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를 무심코 넘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얼마 전 광화문에서 기독교 신앙인들이 연합으로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가 좋았습니다. 우리는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이 땅은 반만 년 동안 지내오면서 숱한 외적의 침입과 모진 굴욕을 겪음은 물론, 엄청난 백성들의 고통과 희생을 겪으면서 굳건히 나라를 지켜왔습니다.

더구나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 많은 믿음의 조상들과 선배들의 피로 물들인 순교의 고귀한 나라이기에, 결코 하나님께서는 이 땅이 사회주의로 가는 것을 절대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할 당시 하나님께서 바로를 강퍅케 하셔서 10가지 재앙을 다 쏟으신 후에야 모세로 하여금 백성을 인도한 것처럼, 이 백성이 처음 복음이 들어와 하나님을 사모하며 사랑할 때의 믿음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환경과 시대에 노예가 되어 하나님을 잊고 자신들의 편리대로 믿음이 변질되어 타락해 가는 모습들을 보시며 한탄하시는 하나님께서, ‘대통령부터 시작해 위정자들의 마음을 강퍅케 하시어 수난을 겪게 하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나라를 분열케 만드는 사람들의 최후는 결코 아름답지 않을 것입니다. 의인 열 명이 없어 멸망당하는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을 그저 옛 이야기로 듣지 말고, 정의와 공의가 살아 숨 쉬며 정직한 질서가 춤을 추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 가는 이 땅 크리스천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