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목사.

西草公 윤석열

이어탁수(二魚濁水).

두 마리 물고기가 물 전체를 흐려놓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두 사람으로 인하여 국론 분열과 대립 양상이 극에 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 전체를 흙탕물로 만들고 있는 두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요지부동이다. 독선과 아집으로 국민과 대립하고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무슨 불치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국론 분열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방관하고 있다.

더군다나 사회에서 입방정 꿰나 떠는 사람들 또한 설상가상으로, 말도 안되는 괴변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사상적 사고를 드러내고 있으니 국론 분열의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닫을 수밖에 없다.

대립의 정중앙에 서 있는 한 사람의 이중적 삶의 오점들이 양파 껍질처럼 벗겨져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이 사람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한 군주는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있다. 국가를 이끌어가고 있는 지도층과 여당은 군주의 눈치만 살피는 간신들의 집단으로 전락한 채, 설상가상 온통 이원론적 삶으로 점철된 한 사람의 추잡한 도부도덕을 옹호하고 있으니 실소를 금치 못할 상황이다.‘에라 똥물에 튀길 놈들’ 울화가 치밀어오른다.

왜 이 모양들일까.

한 마디로, 삼권분립을 경험하지 못한 여당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여당이라 하면 검찰을 손아귀에 넣고 실력행사하던 기조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 검찰은, 삼권분립을 명확하게 실현하고 있다. 검찰의 중립적 행보는 민주주의의 유단자가 될 수 있는, 대한민국 삼권분립 실천의 새로운 이정표가 분명하다. 국론 분열의 근원은, 여당과 여당의 그늘에서 밥벌이 하던 패거리들의 안일한 마인드이다. 검찰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청화대 수석의 발언은, 검찰에 대한 현정권과 집권 세력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검찰 개혁?
집권 세력들이 입을 맞춰 검찰 개혁을 한다고 떠들고 있다. 검찰이 중립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시발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검찰의 수사에 항변하는 상황은 검찰개혁이 아니라 오히려 검찰개혁의 장애 요인이다. 적패 청산이라는 구호로 전정권을 심판할 때 검찰의 행보에 만족했던 현정권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사람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에 대하여 떼를 지어 항명한다. 정치적 중립은 물론 법과 원칙에 따라 범법자를 사행하고 있는 검찰의 고군분투가 못마땅하다. 검찰의 기득권을 잃어버린 현정권과 여당 패거리들의 입방정은, 과거의 정권들처럼 집권 세력으로서 검찰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기득권을 놓쳐버린데 대한 아우성이거나,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린 넋두리가 아니면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분명하다.

광화문에 역사 이래 가장 많은 국민들이 모였다. 개천절 벽두부터 박근혜 탄핵 때보다 더 많은 군중들이 대동단결하여 울분을 터뜨렸다. 야당은 물론 종교계와 대학생들까지 대규모 집회를 벌였다. 공통된 목소리는 조국 퇴진이다.

그러나 언론은 정권의 눈치를 살피며 실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직필정론을 수행하지 못하는 언론의 제한적 전파는, 정권이 독재화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징후이다. 국민들의 눈과 귀는 가려졌으나 국민들은 분연히 일어났다. 교도소에 수감되어야 할 피의자 조국의 퇴진을 더 이상 방조한다면 현정권마저 퇴진해야 할 국민들의 위대한 항거에 직면할 것이다.

모든 권력은 스스로 부패한다. 정치, 경제, 사회, 언론, 문화, 체육, 외교, 복지 등등 국정을 수행하는 과정에 비리와 불법, 편법적 기득권 행사의 유혹에 빠져들게 된다. 부적합한 인사나 국책 사업 등에 대하여 반국민적, 반이성적 결점이 드러나도 고집스러운 주관적 사고를 관철시키면서 스스로 부패한다. 똑같은 생각, 비슷한 이념의 인사만을 고집하면서 고인물처럼 썩어간다.

대한민국을 더럽히고 있는 두 마리 물고기는, 철면피 조국과 이 사람의 흠결을 끝까지 비호하고 있는 현정권이다. 이중인격과 이원론적 삶으로 후안무치의 세월을 살아온 사람과, 이런 사람을 고집하고 있는 정권은 국민으로부터 부여 받은 권력을 남용하고 있음이다. 천만다행으로 이런 부도덕한 자를 수사하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은 송광수 검찰총장 시절 그대로, 법대로 수사하는 것을 검찰의 존재 이유로 여기고 있는 신념과 정의의 사람이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어느 시대이든 임금의 눈을 가린 간신들이 득세한 오명의 세월은 다반사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인 1591년, 일본에서 돌아온 통신사 황윤길(黃允吉)은 반드시 병화가 있을 것이라 경고한 반면, 부사(副使)였던 김성일은 침략의 조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안심시켰다. 조정은 상반된 보고 가운데 더 믿고 싶었던 김성일의 보고를 채택했고, 조선은 무방비 속에 왜란을 당하게 되었다.

풍신수길의 야욕으로 발발된 임진왜란. 1592년 음력 4월 13일(양력 5월 23일) 고니시가 이끄는 왜군 선봉대 1만 8,700명이 700여 척의 병선에 나누어 타고 쓰시마 섬의 오우라 항을 출항하여 부산포로 쳐들어왔다.

초승달 외로운 그밤의 과거는, 지난 날의 수모가 아니라 오늘의 가르침이다. 선조 임금과 현정권, 김성일과 현정권 실세들, 고니시와 조국, 깊은 시름에 잠긴 한산도 누각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서초공 윤석열, 이런 퍼즐을 맞춰보는 창문 밖, 오늘따라 유독 초승달 외롭다.

웨민총회신학 하민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