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회 실천신학회
▲조지훈 박사(오른쪽)가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좌장 김충렬 박사. ⓒ이대웅 기자
한국실천신학회(회장 김상백 박사) 제73회 정기학술대회에서는 정성진 목사의 주제발표 이후 두 차례 학술발표가 이어졌다.

‘예배와 설교를 통한 건강한 교회공동체’를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는 특히 제B발표 ‘복음을 설교하는 것에 대한 설교학적 함의’가 눈길을 끌었다.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를 좌장으로 열린 발표에서 조지훈 박사(한세대)는 ‘본문을 설교하는 것인가, 복음을 설교하는 것인가’에 대해 논증했다.

무(無)본문, 탈(脫)본문 설교도 필요?
‘설교란 무엇인가?’ 근본적 질문 필요

조지훈 박사는 “설교는 동시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에 의문을 제기할 설교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많은 설교자가 복음이 무엇이며 복음을 설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한 정의를 내리지 않은 채 설교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박사는 “설교자가 복음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한 설교자의 설교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설교자의 복음 이해가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설교 형식을 선택하고 선포하는 행위까지, 설교 활동의 전 영역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설교자가 복음을 ‘예수님을 통한 인간의 구원 메시지’로 정의한다면 그와 같은 메시지를 찾고 선포할 것이고, 설교자의 복음 이해가 ‘구원 메시지를 이해한 사람들이 체험하는 특별한 경험’까지 포함한다면 구원 메시지와 인간 경험까지 아우르는 좀 더 포괄적 내용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김경진·김병석 박사의 논문은 존 로스와 곽안련 선교사의 설교를 토대로 ‘무본문 설교’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모색했다. 성경 본문을 사용하지 않는 ‘탈본문(脫本文)’ 설교가 상황에 따라 필요하고, 선교 현장에서는 이미 사용돼 왔다는 것”이라며 “이는 기존 설교의 틀을 무너뜨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설교는 무엇을 선포하는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전했다.

조지훈 박사는 “설교에서 성경을 선포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하는 사람은 칼 바르트(Karl Barth)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설교를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이라고 정의했다”며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은 인간 설교자를 사용하시며, 인간 설교자는 성경 본문에 근거해 설교한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복음이 선포될 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설교, 하나님 말씀인 복음 선포
본문, 복음 발견하는 창문이자
복음 선포하기 위한 통로

이 같은 주장을 정면 반박한 사람 중 하나가 데이비드 버트릭(David Buttrick)이다. 조 박사는 “버트릭은 기독교 예배의 중심이 예수님의 복된 소식을 듣고, 그 분을 통해 기도하고 찬양하며 그 분에게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며 “즉 교회의 예배와 설교의 중심은 (성경보다)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분의 복된 소식, 곧 복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설교를 반드시 성경구절과 함께 시작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고 전했다.

버트릭은 ‘(성경보다)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의 권위 배후에 또 다른 배후가 있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확신했으며, 성경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 말씀을 ‘구술적’인 것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즉 성경을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조 박사는 폴 스콧 윌슨(Paul Scott Wilson)의 ‘본문을 설교하는 것과 복음의 설교하는 것의 차이’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도 소개했다. 그는 “윌슨은 성경 본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읽는 렌즈이고, 복음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비추도록 하는 창문이라고 했다”며 “그래서 그는 설교자가 성경 본문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고 했고, 초대교회 성도들의 순교조차 설교라고 정의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에드워드 팔리(Edward Farley)도 현대 설교자들의 설교가 초대교회를 거쳐 예수님의 설교 전통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의 설교가 임박한 하나님의 다스림을 선포했다면, 초대교회 설교는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복된 소식을 선포했다는 것”이라며 “다시 말해 현대 설교자들의 뿌리가 되는 예수님과 초대교회 설교는 성경 본문에서 온 것이 아니라, 복음 곧 ‘우리를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그리스도의 사건’으로부터 왔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이상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설교란 성경 본문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본문을 근거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임을 확인했다”며 “설교란 하나님 말씀인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성경 본문은 복음을 발견하는 창문이고,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통로”라고 정리했다.

실천신학회
▲기념촬영 모습. 앞줄 왼쪽에서 여섯째부터 정성진 목사, 양재철 목사, 김충렬 전 회장, 김상백 현 회장.
복음이란,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예수님의 사역과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의 모든 활동 아우르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관한 복되고 기쁜 소식이다

이후에는 ‘복음을 설교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살폈다. 그는 논의에 앞서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예수님의 모든 사역-탄생, 공생애, 죽음과 부활, 승천과 재림-과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의 모든 활동을 아우르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관한 복되고 기쁜 소식”이라고 정의했다.

복음을 설교한다는 것의 의미
1. 설교의 중심은 내가 아닌 하나님이셔야 한다

조지훈 박사는 “설교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설교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복음이 성령의 능력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기쁜 소식이라면, 그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의 중심은 당연히 구원자 되시는 삼위 하나님이 되셔야 한다”며 “그러나 오늘날 한국 강단에서 구원자 되시는 삼위 하나님이 설교의 중심이 되고 있는지, 설교의 중심에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세우지 않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조 박사는 “설교자가 사용하는 언어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설교가 교회에 위탁된 목회적 언어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 설교자의 언어 활동은 한 신앙 공동체와 그의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설교자는 설교의 종결어가 하나님인지 자신인지 면밀히 생각해야 한다. 설교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늘 지대한 관심을 갖고, 언제나 하나님 중심의 언어를 사용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2. 복음 선포는 기쁨과 희망의 소식이 돼야 한다

그는 “복음 선포란 설교를 통해 청중들에게 위로와 기쁨과 희망을 선포하는 것이다. 복음에 대한 가르침은 너무 현학적(pedantically)이어선 안 되고, 오히려 유쾌해야 한다(delightfully)”며 “이처럼 복음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청중들의 상상력이 자극되고, 그들의 마음이 유쾌함과 기쁨으로 가득 찰 때, 청중들의 마음이 설득된다”고 주장했다.

또 “어거스틴의 말처럼, 설교의 궁극적 목표는 설득이나 감독, 만족을 주는 차원을 넘어 마침내 그들이 마음을 돌이켜 행동 변화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라며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이처럼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한 기쁜 소식을 증거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희망을 품고 희망을 향해 걸어가도록 돕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3. 죄성을 드러내는 율법과 함께 선포해야 한다

조 박사는 “복음이 기쁜 소식인 이유는 단순히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그들의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실상 곧 죄성과 이로 인한 구제불능의 상황이 숨김없이 드러나고, 동시에 그런 인간들에게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 선포됐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라며 “그러기에 복음은 언제나 인간의 죄를 드러내는 율법과 함께 선포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바르트 역시 복음이 선포될 때 율법 역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죄가 분명히 드러날 때, 복음은 더욱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될 수 있다”며 “하나님 말씀으로서 설교는 언제나,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심판의 말씀인 동시에 은혜의 말씀이 돼야 한다”고 했다.

4. 설교 형식 다양화로 구원 활동을 보여야 한다

더불어 “현대 설교학자들이 성경의 다양한 형식에 주목한 것은, 형식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보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라며 “현대 설교학자들의 설교에 대한 새로운 정의는, 설교가 성경에서 발견된 복음에 대한 정보를 청중들에게 ‘전달(transfer)’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셨던 그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event)’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성경이 다양한 장르로 기록된 것은 1차적으로 인간에게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 활동이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원 활동을 다양한 형식에 담아냄으로써 하나님의 다양한 모습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라며 “성경의 장르가 다양하다면, 설교의 형식도 다양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인공인 성경이 다양한 장르를 통해 하나님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것은, 설교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했다.

설교자, 복음과 선포의 의미 파악하고
복음 높이고 귀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결론에서 조지훈 박사는 “설교가 이 시대에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라면, 설교자는 복음에 대한 분명한 정의와 복음을 증거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한다”며 “설교자의 임무는 성경 본문 설교 아니라, 성경 본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해내고 그렇게 발견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존 칼빈의 말처럼 복음이 선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도구라면, 우리 설교자는 복음을 높이고 귀중하게 생각해야 할 뿐 아니라 복음을 사랑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