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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이미지 글의 보고(寶庫)다

성경은 이미지 글의 보석 창고다. 성경에는 생생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글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특히 아가서와 시편 같은 시가서 등은 이미지가 떠오르는 글이 많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가서 4장 3-5절은 전체가 이미지로 도배되어 있다.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네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방패 천 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구나.”

사람들은 아가서를 시(時)처럼 읽고 좋아한다. 이는 아가서가 잘 기억나게 하는 이미지로 쓰였기 때문이다.

시편도 동일하다. 청중들이 좋아하는 시편 23편은 그 자치가 이미지로 쓰여진 성경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1-6).”

시편 23편은 목자에 대한 이미지를 통해 목자가 어떤 모습인지, 목자가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리고 목자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상세하게 보여준다.

아가서와 시편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성경은 이미지의 글로 쓰여 있다. 이미지로 된 글이 청중이 받아들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설교자들도 설교를 이미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미지로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설교자들은 이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신학교에서도 쓰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저 원리를 배운 것만으로도 족할 뿐이다.

원리도 중요하다

최근 어떤 세미나를 참석했다가 들은 말이 있다. “그림을 그리듯 설교하라.”

설교에서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는 말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림을 그리는 설교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구체적인 방법은 듣지 못했다.

전부터 많이 듣던 말이 있다. “소설을 많이 읽어라.”, “시를 많이 읽어라.”

설교자라면 대부분 알고 있다. 세미나에서는 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저도 시를 읽고 싶다. 하지만 시를 읽기보다는 당장 그림이 그려지는 설교를 하고 싶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고 싶다. 이것이 대부분의 설교자에게는 막연하기만 하다.

결국 세미나에서도 원리와 당위성에 대한 이야기만 잔뜩 들어야 했다. 기대했던 방법은 듣지 못했다. 큰 기대감을 갖고 갔었는데 많은 아쉬움만을 간직한 채 그친 세미나였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 신학 자체가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성경 자체가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구원 원리만 담아도 차고 넘친다.

이미지로 설교 글쓰기,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

“원리!”

이미 많이 들어서 그만 들어도 될 정도다.

“어떻게”

알고 싶은 데 알 방법이 거의 없다.

가장 쉬워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결국 “어떻게?”가 문제다.

저는 “어떻게?”를 신학에서 찾고자 했다. 하지만 찾지 못했고, 결국 인문학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글쓰기는 신학 분야에서는 초보 단계였음을. 그러니 신학 글쓰기는 일천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인문학은 글쓰기가 큰 관심사다. 이미 엄청난 진보를 이뤘다. 그 결과 인문학을 통해 이미지의 글쓰기를 배울 수 있었다. 배운 방법을 설교 글쓰기에 응용했다.

설교자들의 관심사는 청중에게 설교가 이미지로 들려지게 하는 것이다. 즉 청중이 설교를 듣는 순간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그럴 때 설교는 청중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다. 들려지는 설교가 된다.

설교 글에서 이미지를 그려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섯 가지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 구체적으로 글을 써라.
둘째, 세부적인 묘사로 글을 써라.
셋째, 함축적으로 묘사하라.
넷째, 상상하게 만들라
다섯째, 영상과 예화를 적절하게 활용하라.

많은 작가들이 글을 이미지화하려면 아래와 같이 하라고 말한다.

첫째, 상상하게 한다.
둘째, 세부적인 묘사를 한다.
셋째, 오감을 활용한다.

위의 세 가지로도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많으면 더욱 도움이 된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미지 글쓰기 다섯 가지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작가들이 말한 세 번째 방법인 오감 활용법은 앞에서 ‘들려지는 글쓰기, 공감 있게 써라’에서 다뤘기에 다루지 않을 것이다.

설교에서 이미지로 된 글을 쓰려면 다섯 가지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 다섯 가지 방법은 아래와 같다.

첫째, 상황을 구체적으로 써라

추상적인 글은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데 한계가 뚜렷하다. 반면 구체적인 이야기는 마음을 파고들고도 남음이 있다. 이는 옛날 이야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어릴 적 가장 많이 듣던 이야기가 옛날 이야기다. 누군가 하는 옛날 이야기가 시작되면, 아이들은 잠을 쫓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옛날 이야기를 듣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구수한 할머니는 추임새도 넣어가며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면 아이들은 금세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어떤 것이든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관심을 갖는다. 관심을 갖는 이유는 쉽게 알아듣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말할 때 결론만 말한다.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다. 여자들은 어떤 이야기도 구체적으로 말한다. 구체적으로 듣는 순간 명확하게 이해가 된다.

남자들의 이야기는 들으면 마치 이빨이 빠진 것 같다. 반면 여자들 이야기를 들으면 소상하게 알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든지 구체적으로 해야 함을 말해준다. 설교는 하나님의 이야기다.

이야기뿐 아니라 ‘호소’도 구체적으로 할 때 효과가 있다.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과 석좌교수인 리처드 니스펫과 스탠포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리 로스의 책 《사람일까 상황일까》에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정부는 군사작전에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전쟁 채권 구매를 독려하는 대중 캠페인을 수차례 시도했다. 일반적인 호소(전쟁 채권을 사세요)에서 보다 구체적인 호소(채권을 100달러 더 사주세요)로 나아가고, 또 특별히 시간이나 장소(직장에 방문)에 가서 호소하면 채권 판매는 2배, 즉 전체 노동자의 25%에서 50%로 늘어났다.

직접적인 대면이 없는 상태에서는 임금 노동자의 20% 미만이, 누군가가 직접 대면해 부탁하면 그 자리에서 서명만으로도 구매를 결정할 수 있는 있을 때는 거의 60%가 자신의 이름을 신청서에 적어 넣었다.

이 책에서는 교회 이야기도 다룬다. 기독교는 경로 요인의 중요성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 결과 기독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파고들 수 있었다.

모호하고 일반적인 호소(예수님을 구세주로 삼으라) 대신, 바로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한 가지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오세요)한다. 이렇게 할 때 효과가 훨씬 좋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초청을 하면, 처음 나온 신자가 다음 주에도 훨씬 좋은 결실을 맺는다. <계속>

김도인 목사/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저서로는 《설교는 인문학이다/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개정 증보)/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CLC》, 《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좋은땅》, 《출근길, 그 말씀(공저)/CLC》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