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남궁억 보리울의 달
▲만화 <한서 남궁억> 中. 저자 김재욱, 그림 최현정, 제작 키아츠. ⓒ키아츠 제공

보리울에도 그런 독립만세의 함성이 봄바람을 타고 울려 왔다. 남궁억은 즉시 만세운동의 준비에 들어갔다. 제자들과 마을 사람들을 모아 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태극기를 만들었다. 시위 당일엔 모두 머리띠를 두르고 흰 옷을 입도록 지시했다.

준비가 되자 남궁억은 앞장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외쳤다.

“대한독립 만세! 무궁화 길이길이 꽃피리, 우리 삼천리 금수강산!”

그러자 모두 함께 따라 우렁차게 외쳤다.

“대한독립 만세! 무궁화 길이길이 꽃피리!”

마을 앞길에서부터 교회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태극기의 물결과 만세소리가 넘쳤다. 그리고 그 소리는 산골 곳곳으로 퍼져 나가 메아리쳤다.

한편 강원도 양양에서는 예전에 남궁억 선생에게 배운 현산학교의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현산학교와 배화학당의 옛 제자들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갔다는 소식을 들은 남궁억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제자들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나이 많은 몸으로 첩첩산중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3·1운동이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지자 총독부는 군경의 총칼에 의한 잔혹한 탄압으로 이 평화운동을 억누르려 했다. 전국 각지에 강력한 권한을 가진 헌병과 경찰을 배치시키고,새로운 무기로 무장한 정규 일본군 2개 사단을 주둔시켜 언제든지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들은 평화적인 시위를 하는 군중을 마구 학살하고 흡혈귀처럼 웃어댔다.
경남 진주에서도 만세운동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한 청년이 바윗돌 위에 올라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군중들에게 우리나라 독립의 정당성과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자, 일본 헌병이 시퍼런 닛뽄도를 뽑아 그의 오른팔을 베어 태극기와 함께 땅에 떨어뜨렸다.

청년이 왼손으로 태극기를 주워 들고 다시 만세를 외치자 이번엔 왼팔마저 싹둑 베어 버렸다. 청년은 두 팔을 잃은 몸으로 앞으로 뛰어 나가며 계속 만세를 불렀다.

격분한 헌병이 뒤따라가 그의 온몸을 칼로 마구 찔러댔으나 청년은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만세를 외쳤다.

신음소리와 비명소리 그리고 유혈이 낭자한 광경을 본 군중들은 불꽃처럼 타올라 독립만세를 외치며 성난 파도같이 헌병에게 달려들었다. 일본 경찰은 미친 듯이 마구 총을 쏘아댔다.

그들은 악마처럼 눈알을 번득거리며 웃어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붉디 붉은 피로 흰옷을 물들이며 쓰러졌다.
희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수원 제암리였다.

제암리의 청년들은 발안(發安) 장날에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을 짰다. 장터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 시간에 청년들은 태극기를 걸어 놓고 연설회를 개최한 후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장거리를 행진했다. 장터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독립만세를 따라 외쳤다.

당황한 일본 경찰은 주동자를 붙잡아 가혹하게 매질을 했다. 많은 청년들이 상처를 입고 마을로 돌아왔다. 그러나 청년들은 밤에 제암리 뒷산에 올라 봉화(烽火)를 올림으로써 주민들의 만세운동은 계속되었다. 이튿날 밤엔 주변 산봉우리 80여 곳에서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불렀다.

보리울의 달 한서 남궁억
▲소설 <보리울의 달> 저자 김영권, 제작 키아츠 <보리울의 달>은 한서 남궁억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한서 남궁억 선생의 소설화된 파란만장한 인생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통찰하도록 안내한다. 만화 <한서 남궁억> 저자 김재욱, 그림 최현정, 제작 키아츠 <한서 남궁억>은 남궁억 선생의 위대하고도 큰 뜻을 남녀노소 모든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만화로 표현한 책이다. 남궁억 선생이 여러 등장인물과 역사를 헤쳐 나가는 이야기가 실감나고 흥미롭게 담겨 있다.

열흘 후인 4월 15일 오후 2시, 일본 경찰의 계획된 음모가 시작되었다.

수원에 주둔하고 있던 보병 제78연대 소속 아리타(有田俊夫) 중위 등 일본 헌병 30명이 몰려왔다. 아리타는 강연이 있다고 속여 기독교와 천주교 신자 20여 명을 교회당에 모이도록 했다. 발안 장날 너무 심한 매질을 하여 사과하고자 왔다고 둘러댔다.

얼마 후 21명의 남자 신도가 모이자 헌병들은 밖으로 나가 교회 출입문에 못질을 하고 석유를 뿌린 다음 불을 질렀다. 삽시간에 교회 건물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일본 헌병들은 비참하게 죽어가는 남편을 살려 달라고 밖에 서서 애원하는 두 아낙의 목을 베어 볏짚으로 불을 놓기까지 했다. 그리고 불속에서 뛰쳐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거나 총검으로 찔러 모두 다 죽였다.

이 사건으로 교회 안에서 22명, 밖에서 6명 등 모두 28명이 살해되었다. 만행을 저지른 헌병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민가에 불을 질렀다. 그리하여 외딴집 한 채만 남고 32가구의 초가집이 모두 불탔다. 불길이 너무 어마어마해 멀리서도 훤히 보일 정도였다.

사건이 일어난 지 며칠이 지나도록 일본 헌병들의 감시가 심해 누구도 희생자의 유해를 찾아 장례를 치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보리울에서 남궁억은 다시금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마음을 기울였다.

시간이 흘러 만세운동의 불길도 차츰 사그라져 갔다. 그러나 한민족의 가슴속에는 뜨거운 불씨로 살아남아 있었다.

남궁억은 여러 경로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3·1독립운동에 관한 글을 썼다. 그 글은 나중에「조선 이야기」라는 책 속에 수록되었다. 남궁억은 그 책으로 모곡학교의 학생들을 가르쳤다.

 「조선이야기」는 남궁억이 전에 쓴「동사략(東史略)」을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쉽게 동화식으로 풀어 쓴 책이었다.

그 책을 쓴 동기는 학생들에게 우수한 한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알려 주고, 일본과 중국 등 외세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올바른 민족사를 가르치려는 것이었다. 책의 구성은 단군조선에서 3·1운동까지로 되어 있었다.

모곡학교의 학생들은 재미있는 그 책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아주 좋아했다.
남궁억은 초롱초롱한 학생들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3·1운동은 일본제국의 폭압적인 지배에 대한 우리 민족의 저항으로 일어났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강점한 뒤 군사력을 배경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모든 분야에서 폭력적인 억압과 수탈을 자행했습니다.

헌병경찰제를 실시해 수많은 항일운동가들을 학살하고 투옥했지요. 그리고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등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도 누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한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농촌의 땅과 곡식을 마구 수탈하고, 회사령 등으로 우리 민족 산업의 발전을 억압했지요. 이처럼 일제의 폭압적인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분노가 3·1운동으로 폭발하게 된 것입니다.”

남궁억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

“우리 만세운동은 처음부터 평화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총독부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서, 비무장으로 평화적 시위를 벌이는 군중에 대해 무자비한 공격을 가했어요.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투옥되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심한 고문이 뒤따랐답니다.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는 유관순이라는 이화학당 학생이 수천 명의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어요. 그런데 그 학생이 일본 경찰에게 어떤 고문을 당했는지 아세요?

먼저 머리에 콜타르를 바르고 마치 가발을 벗기듯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머릿가죽을 벗겨냈다고 합니다. 손톱과 발톱을 뺀치로 들어다 놨다 하면서 서서히 뽑는 고문도 했다고 해요. 또 밥을 정상적으로 주지 않고 모래나 쇳가루 등을 넣어 강제로 먹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머리를 뒤로 젖힌 후 고춧가루 섞은 물을 코와 입으로 들이부었다고 합니다. 아, 얼마나 악독한 짓인가요! 유관순 열사는 죽으면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는군요.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유일한 슬픔입니다.’
오, 여러분! 한번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는 이토록 어렵고 괴롭단 말입니까?”

김영권 남궁억
▲본지에 <꽃불 영혼>에 이어 <보리울의 달>을 연재하고 있는 김영권 작가.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걷는 동상>,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