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서울병원 보구녀관
▲복원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여성병원 보구녀관(普救女館) 현장. ⓒ김신의 기자
이대서울병원 보구녀관
▲이대서울병원에서 보구녀관 관련 전시를 탐방하고 있다. ⓒ김신의 기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와 모자이크미니스트리가 16일 오후 이대서울병원에서 ‘하나님이 조선을 이처럼 사랑하사-로제타 홀의 선교와 여성의료사역’이라는 제목으로 복원된 '보구녀관'(普救女館)을 탐방하고 홀 선교사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보구녀'는 ‘여성을 보호하고 구한다’는 의미다.

세미나 사회를 맡은 박명수 교수(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는 “홀 가족은 한국사적으로 최초의 여성 병원을 만들었고, 로제타 홀의 남편 윌리암 홀은 다른 선교사와 함께 평양 선교를 시작한 사람이라는 교회사적 의미가 있다”며 “홀 가족의 사역은 평양 기홀병원으로 이어졌고, 맹아학교, 결핵병원, 여자의학전문학교 등 선교와 의료 부분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업적을 세웠다. 이들 모든 행동의 배경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깊은 신앙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했다.

또 박 교수는 “교회를 세우고 전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기독교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널리 퍼질 때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를 위해 손경구 목사님이 모자이크미니스트리를 만들었다”고 홀 가족 연구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하기도 했다.

손경구 목사 박명수 교수
▲모자이크미니스트리의 손경구 목사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의 박명수 교수. ⓒ김신의 기자

이날 ‘로제타 홀과 박 에스더: 여성 의학전문직업성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연구를 보고한 김신권 박사(아주대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는 서양의 역사 속에서 의사, 성직자, 법률가가 가졌던 ‘전문직업성’과 그것의 변천을 검토한 후 여성의사 전문직업성의 수립 과정이 남성에 비해 어려운 과정이었음을 기술했다.

김 박사는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가 배출 된지 120년을 맞이해, 여성의 의학전문직업성은 여성의료인력의 적극적인 양성, 남녀의 전문 분야를 구별하지 않는 차별 없는 헌신, 그리고 전인적인 접근을 통한 인간과 삶, 그리고 공동체적이며 사회적인 건강 회복에 그 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며 “로제타 홀과 박 에스더를 통해 우리는 의사로서의 전문성이 단순히 육체적인 질병을 낫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의 깊은 공감을 통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전인적으로 회복하도록 돕는 데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고 했다.

특별히 그는 ‘일년에 몇 명의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까를 알아보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몸을 치료하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영혼을 치유하는 분을 만나게 하려고 온 것’이라고 했던 로제타 홀의 일기와 평양에서 치료했던 환자 수와 함께 전도 활동을 함께 보고했던 에스더 박의 레포트를 살피며 “로제타 홀과 에스더 박 모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이며 동시에 생명을 구하는 의사로서의 정체성을 함께 갖고 있었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또한 ‘나의 사역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지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그녀가 억만금을 준대도 그런 일(낙태)은 절대로 할 수 없었다’는 로제타 홀의 일기 내용을 언급하며 “홀은 의사의 정체성이 생명을 구하는데 있지 결코 생명을 죽이는 것에 있지 않다는 신념에 철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활발한 활동을 통해 한국 사회에 중대한 기여를 하고 있는 수많은 한국 여성 의사들의 전문직업성을 재확인하고 미래적인 관점에서 여성들의 의학전문직업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망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논찬한 박종현 박사(한국교회사학연구원)는 “이 연구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여성의사의 전문직업성이 확립되면서 여성 의사들이 고유한 특성을 발전시켜왔다는 것이다. 여성의사들이 의학적인 전문성과 공동체의 교사로서 균형 잡힌 전문성을 추구하였다”며 ‘환자의 삶의 방식과 건강상태의 상호관계에 주목한 점’과 ‘예방의학의 강조’, ‘치료의 전인적 접근’을 그 특징으로 꼽았다.

또한 “한국 개신교 여학교의 교육 과정은 전통적인 교육 과정과 여성상을 거의 답습했고, 전문직업성에서 성직자는 더 여성들에게 엄격하게 제한됐는데, 여성의사인 경우에만 전문직업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며 “이 연구는 여성 의학이 한국에 도입되어 형성된 전문직업성의 이식과 발전 관계를 잘 보여준다”고도 평가했다.

방주교회 내부
▲홀 가족 연구 프로젝트의 연구 발표 현장. ⓒ김신의 기자
홀 가족 연구 프로젝트에서 자료 수집을 맡아온 윤은석 박사(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는 ‘초기 내한 의료선교사와 전도: 로제타 홀을 중시미으로’를 제목으로 연구를 발표했다.

윤 박사는 “한국 개신교 성장의 요소들 중 하나는 한국 교회의 개척자들의 수고”라며 “영적인 황무지를 복음의 옥토로 가꾸었던 그들의 활동이 없었다면 현재의 개신교를 목도하는 것을 어려운 일이 되었을지 모른다”고 했다. 이어 로제타 홀의 일기와 관련 서적 및 영어 자료 등 로제타 홀을 중심으로 간접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했던 의료선교사의 복음전도 활동을 살폈다.

그는 “로제타 홀은 전도 중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고, 의술은 복음 전도를 위한 도구였다. 그러다 1915년부터 의술에 대한 강조점이 나타났고, 1925년 사회 복음에 대한 언급이 나타났다. 이는 1920년 한국 개신교계에서 YMCA를 중심으로 사회 복음이 강조됐던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있던 것 같다”며 “본 연구는 1890년부터 1914년까지의 범위”라고 덧붙였다.

윤 박사는 “로제타 홀은 외국 땅에 간 최초의 독신 여성 선교사인 엘리자 애그뉴(Eliza Agnew)의 이야기를 들으며 선교사에 대한 마음을 갖기 시작했고, 리버티 노말 인스티튜트(Liberty Normal Institute) 등에서 교사 훈련을 받을 때 케너드 챈들러(Kennard Chandler)에 의해 선교사의 삶을 다시 한 번 다짐했다”고 로제타 홀에 대해 소개했다.

이어 “로제타 홀의 글에는 영혼 구원에 대한 강조점과 복음을 전해야하는 갈망이 내제돼 있다. 그녀에게 의술은 전도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고, 그녀는 의료선교를 통해 궁극적으로 복음 전도를 하려고 했다”며 “이처럼 전도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질 수 있던 것은 전도 대상자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전도자의 책임, 그녀의 전도에 대한 성경적 이해 때문”이라고 했다. 이밖에 사라와 황 유니스에 대한 사역도 소개했다.

이에 대해 논찬한 김경한 박사(서울신학대학교)는 “의료선교사의 전도활동에 관한 연구는 좀처럼 시도하지 못했던 영역”이라며 “로제타 홀의 전도활동은 마태복음 28장 18절부터 20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지상대명령에 근거한다고 여겨진다. 성경적 전도의 정의는 ‘가서, 세례를 베푸는 것’에 끝나지 않고 ‘한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증인, 일꾼)을 삼는 것”이라고 했다.

또 문서 전달을 넘어 지역을 순회하며 전도했던 로제타 홀의 활동을 언급하며 “복음전도에 있어 성령의 능력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데, 로제타 홀의 왕성한 사역의 근간에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있었음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한편 앞선 행사에서는 손경구 목사(모자이크 미니스트리)의 사회 아래 김혜순 교수(이화 로제타홀 의료선교센터장)가 인사하고, 최문영 목사(이화의료원 원목)가 “보구녀관을 통해 가난하고 병든 여성을 치료하고 복음을 전해 영육간에 온전한 치료가 이루어졌다. 헌신의 숨결을 이어받아 저희에게 주어진 소명을 재다짐하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도록 인도해달라”고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