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진 칼럼] 역겨운 정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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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죄인이란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범죄 혐의자이면서 법무부 장관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한 것이라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 모든 남자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으면서 불륜 목사들을 꾸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범죄 혐의자이면서 법 집행관’, ‘불륜하면서 불륜 목사 질타하는 자’, 사실 이들보다 경악을 금할 수 없는 것이 이분들의 후견인들이다.

한 유명 목회자는 놀랍게도 수사를 하는 검찰 중에도 비리가 있을 것이기에 무방하다는 논리를 편다. 교회갱신 윤리운동으로 유명한 한 원로 장로는 불륜에 대해 논평하기를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약점이다. 인간이 다 그런 약점이 있다. 그렇기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격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모든 사람이 약점이 있지만, 약점 있는 그 모든 사람이 남의 눈 속의 작은 티를 대들보로 극대화해 먹고 사는 것은 아니다.

자기 약점은 ‘모든 사람의 약점’으로 치환하고, 남의 약점은 ‘너만의 약점’으로 화인을 박아버리는 이들 후견인은, 이처럼 문제를 교묘히 회피한다는 점에서 상기 당사자들보다 더 불량한 숙주(宿主)라 할 수 있다.

이런 숙주 사회의 윤리를 이 분들이 좋아하는 윤리학으로 표현하면 ‘상대주의(relativism)’ 또는 ‘상황주의(situationism)’라 부른다.

상대주의란 한 마디로 자기 경험과 상황에 따라 가치를 판단하되, 심지어 진실의 기준까지 달라지는 준거 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상황주의는 단 하나의 절대 법칙만이 존재한다고 단언한다. 단일 절대 법칙을 고수하니까 뭔가 엄격하게 옳게 들리지만,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는 과정은 중요하지 않은 원리이다.

적폐를 쓸어내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기에, 내 눈의 대들보 따위는 참아드려야 하는 윤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공통점은 역설적이게도 ‘정의’를 누구보다 강조한다.

나만이 정의를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절대 법칙 아래 다른 모든 과정은 입을 다물어야 한다. 저 고명하신 후견인들이 바로 이 사멸할 윤리의 숙주인 셈이다.

이런 상대/상황주의는 그래서 대개 목적론적 윤리(teleological ethic)라 부른다.

이 숙주 속에서 남자와 남자가 결혼도 하고, 낙태를 피임이라 변용시켜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이 목적론적 윤리의 대척점에 있는 윤리와 정의가 있다. 의무론적 윤리(deontological ethic)이다.

의무론적 윤리와 정의를 가치로 신봉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세운 가치에 스스로가 묶여 살아간다.

얼핏 들으면 목적론자들의 가치와 비슷하게 들리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목적론자들은 자기들만의 정의를 한참 외치다 보면, 어느새 저만치에 가 있다. 남자를 여자라 부르기도 하고, 여자를 남자라 부르기도 하고….

평등한 사회, 공정한 사회, 그리고 무엇보다 평화를 사랑하다 보니 전쟁보다도 나쁜 평화가 목적이 되어 있고, 어느새 주적과 동맹이 뒤바뀌어 있는 것이다.

“이념은 피보다 진하다”인 것이다.

목적만 좇다 보니 어느새 목적이 뒤바뀌어 있는 이런 정의와는 달리, 의무론적 윤리는 과정으로 자기 정의를 식별한다.

그래서 데온톨로지(deontology)라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 데온(δέον)이라는 말은 ‘(사슬에) 묶인 상태’에서 비롯된 말이기 때문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했던 바울은 이 같은 사슬에 매인 자신을 기뻐했다(빌 1:12-18).

이것이 숙주사회의 후견인들과 결을 달리하는 정의의 진수이다.

저런 숙주들의 변화무쌍한 정의가 사회에서 먹히는 이유는 의식(αίσθηση) 스스로가 인식(ἐπιστήμη)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단 상태를 심리학적으로는 사회전염(Social Contagion)이라 부르고 신학적으로는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진…(παρέδωκεν...ἀδόκιμον νοῦν)’, 곧 유기라 부른다.

이런 유기된 숙주사회에서는 동성애 합법화, 낙태 합법화, 혁명과 개혁의 가치전도…, 따위가 횡행하고 그 가치의 파괴가 모든 과업의 선봉에 서기 마련인데, 이는 궁극적 파괴 대상인 (헌)법의 라티오(ratio/logos)가 윤리 의식에서 균열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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